[1999년 10월호]

무거운 짐도 나누면 가볍다

가난할적 잊지 말고 자기일 미루지 말라

사진 / 金元烈(김원열) 전문위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물어봐도 소용없다. 알만한 어른을 만나야 다소나마 귀가 열리고 정신도 차릴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고명하신 원로 목사님을 잠시 뵐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은퇴 후도 바쁜 인간양심

유명하시다는 정진경(鄭晋慶) 목사를 한번도 뵌 적이 없다. 물을만한 사람한테 물어 볼 때마다 정목사님을 꼽지만 나만 모르고 지냈다.

교회나 절과는 담을 쌓고 살았으니 고명하신 양심을 알 턱이 없었다. 그러니 부끄럽게 생각하며 어렵게 만날 수밖에 없었다.

듣고 보니 정진경 목사는 은퇴 후에 더욱 바빠졌다고 한다. 신촌교회서 담임 20년을 근속하면서 뿌려놓은 복음이 대단했던가 싶다. 은퇴후 사방에서 물어오고 명예감투를 권유하니 사양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도 「어쩌면 좋겠느냐」고 한마디 묻고 싶었다.

“목사님은 은퇴가 없으시니 지켜보고 계시겠습니다만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보십니까”

“병든 사회라고 지탄하는 말이 많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는 조금씩 발전한다고 봐야 합니다. 소리가 난다고 망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야 있겠습니까”

예상대로 온건과 화목의 말씀이다. 설교란 응변이 아니고 진리의 힘이라는 말이 그대로 느껴진다.

정목사는 남보다 먼저 내책임을 생각한다. 물질은 풍요로운데 정신이 빈곤해진 세태를 걱정하면서 나도 예외일수 없다는 말을 앞세운다.

교회의 세속화 흐름을 걱정하는 원로목사의 걱정으로 들린다. 교회가 크기 경쟁을 벌이고 신도수를 자랑하는 것이 상업성의 표현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면 교회가 우리 사회를 구제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소용이 없지 않는가.

“세계적인 유명교회와 신도수가 많은 교회가 우리 나라에 있다는 것이 자랑 아닙니까”

“자랑일수도 있겠지만 지나치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외국언론이 보도한 것도 자랑이기보다는 문제의 제기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언제인가 뉴욕타임스가 세계 50대 교회 가운데 22개가 한국에 있다는 보도를 지적하는 말이다. 특히 아시아지역 6대 교회 가운데 5개가 한국에 있다는 보도가 우리네 기억에 남아있다.

“우선은 한국 교회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사실이 보도되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내부에서 판단해도 발전을 자축할만한 상황은 못 된다고 봅니다. 졸속이나 과욕도 없지 않다고 평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사회와 함께 걷는 길

정목사가 아직도 현역이라는 사실은 선교와 구호와 교육활동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명예직이고 소명의식이고 천성적 직업의식이고 취미로까지 이해된다. 호서대 이사장을 비롯하여 기독교학술원 이사장 그리고 아시아연합신학대 이사 등 목회자로서나 교육자로서 어느 누구보다 바쁘다.

정목사는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었기 때문에 할 일이 생겼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할 일을 다하라고 건강을 주신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정목사는 교회가 기본적으로 사회와 함께 걸어가야 한다는 소신이다. 사회를 떠난 우월적 지위를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문제를 걱정하며 그들을 선도하는데 교회의 힘이 달린다는 점을 고백한다.

“영상매체가 청소년을 버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언론의 역활부족도 덧붙인다. 역시 목사도 우리네 일반인과 유사한 사고영역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말이었다.

“부패추방운동이 한창입니다만 교회가 앞장서면 금방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교회에 책임이 있는 줄은 알지만 어찌 금방 해결된다고 속단하려 듭니까. 법률이나 권력으로도 부족하니 정신에 호소해야 할 일입니다.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면 하나님의 힘을 빌려야하지 않겠느냐고 봅니다”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어떤 소감이십니까”

“개혁은 빨리 해야 한다고 들었지요. 그러나 재벌이 몽땅 죽으면 안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정부가 잘해야겠지만 재벌도 스스로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정목사는 말을 퍽 아끼는 편이다. 특히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하다. 반면에 대담자는 정목사가 알러주는 신앙세계를 잘 모르니 솔직히 뜻도 모르면서 응대해야만 했다.

“기독교가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느낌인데 그럴 까닭이 있습니까”

“별로 그런일도 없는데 오해 하시는군요. 목표가 같고 걱정할 일도 같는데 서로 배척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융화의 길로 걷고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가 같고 내부문제와 사회문제를 함께 걱정하며 자정의 노력을 기울이는데 어느 종교와도 구분 없다고 말한다.

종교천국의 성직자 위치

신앙이 있는 이와 없는 이의 차이는 크다.

똑같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반응이 다른 것도 신앙의 유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신앙을 갖지 못한 사람이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종교가 성역이냐는 반문이 생긴다. 성직자가 특별한 지위에 놓여 있다고 오해하지는 않을까도 싶다.

이에 관해 정목사의 입장을 명쾌하다. 종교도 특별법이 없는 상황이니 모든 실정법 테두리 안에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종종 성역시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정부도 종교를 두려워하는 눈치이고 데모대도 교회로 찾아가야 투쟁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으니….

“종교가 법을 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잘못된 악법은 개정하도록 투쟁할 수는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너무 민감한 시사문제이기에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것이 비신앙인의 종교관이다. 잘못하면 종교탄압이고 또 잘못하면 종교자유의 남용인 것 같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비교해서 목회자의 신분이나 사회적 예우에 차이가 있다고 느끼십니까”

“구라파는 기독교가 생활화되어 있고 미국도 신분상 우대가 거의 제도화되어 있다고 비교됩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 짧은기간 양적 팽창으로 목회자가 많이 배출된 과정에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겠군요. 우리 사회는 발전단계에 비춰 소홀하게 예우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정목사는 한국 교회의 병리현상을 세 가지로 진단한다. 첫째 정직성의 상실, 둘째 영향력의 상실, 셋째 성장을 과신하는 현실에의 안주 등을 꼽는다.

구체적으로 교회가 가난할 때를 벌써 잊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목사는 흙바닥 교회에서 설교하던 시절을 회고한다. 얼마큼 경제가 발전했던 70년대 중반 신촌교회의 옹색한 살림 이야기도 말해준다. 지금이야 그때와 어떻게 비교하겠느냐고 되묻는다.

“결국 각자가 제자리를 이탈하고도 실감하지 못하고 사는 셈이지요. 세상이 떠내려가는 물길에 휩쓸려 그냥 지낸다는 뜻이 아닐까요”

정목사는 교회가 정치민주화에 기여하고 경제민주화에 참여하고 있지만 정신과 도덕의 확립에 얼마만큼 헌신했는지는 반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길을 묻습니다”는 질문에 “남을 꾸짖고 갈등을 조정하고 설득할 능력이 부족한 편” 이라고 응답한다.

짐을 나누는 사회에의 소망

정목사의 설교는 은혜를 갚는다는 말씀이 큰 줄기이다. 특별히 하나님 은총을 받았기에 이를 열심히 되돌려 나눔이 필생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정목사는 일제하인 1921년 평남 안주에서 종손으로 태어나 집안의 혈통승계에 전념해야 할 팔자였다.

그랬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교회에 발을 들여 신앙생활에 평생을 바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안주에서 기독교에 눈을 떴지만 신앙으로 성장하기는 신의주로 이사하여 동부성결교회에서였다고 기억한다.

그러다가 한창 나이인 18세에 병을 얻어 직장도 그만두고 상경하여 건강을 회복하자 신학교에 입학. 목사가 되었다. 건강을 되찾은 것이 바로 신앙의 힘이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6·25전쟁은 정목사에게도 혹독한 시련이었다. 수유리 산중에서 어느 판사와 숨어 있다가 인민군에 잡혀 죽을 고비를 맞았다. 꼼짝없이 총살을 당할 위기때 유엔기의 기총사격 소리에 놀란 인민군 군관이 풀어주어 생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해방 직후에는 소련군에게 40여일 구금 당했던 체험도 쌓은 터이기에 6·25때 반동으로 지목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정목사는 보수와 반공의 색깔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모두들 이북 땅을 가보고 싶어하는데 다녀오신 적이 있었습니까”

“별로 내키지 않아 움직여 보지 않았습니다. 만나보고 싶은 분들도 생존하고 있지 않을테니 굳이 나설 이유도 없었지요”

그렇다고 생존이 어렵다는 북한 동포들을 돕자는 운동을 외면하자는 뜻은 아니다. 반공과 동포애는 명확히 구분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사랑 나눔은 기적 낳는다

정목사 설교모음집에 따르면 나그네 인생편이 눈길을 끈다. 목회자의 눈에도 인생은 왔다가 가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숱한 이중인간의 모습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말의 책임을 지지 않고 입으로만 편리하게 행세하려는 사람들을 깨우쳐 주고 싶다는 말씀이다. 교회가 많은 헌금을 받아 적지 않게 사회로 돌려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회가 보기에는 모자라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 정목사도 좀더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짐을 나누는 사회가 소망스럽다고 강조한다.

무거운 짐을 나누지 않고는 나라가 부강하고 골로루 잘사는 복지사회건설도 어렵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정목사가 말하는 참 복지사회는 즐거워하는이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사람과 함게 우는 사랑이 넘치는 사회다.

그리고 무거운 짐이라고 표현하는 말은 자기자신이 져야할 짐과 자신이 도저히 질수없는 짐의 두 가지다. 자기가 질 수 없는 짐이란 남을 의지하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한 짐을 뜻한다.

여기에 사랑의 나눔이 절실하고 사랑을 나누면 기적을 낳게 되리라는 주장이다.

가난을 겪고 핍박을 견디고 사선을 넘었던 원로목사의 말씀에 우리네가 덧붙일 말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 의 은총을 받고 이에 보답하기 위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목사에게서 배울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우선은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를 미워하고 한탄하기에 앞서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분명 밝은 세월을 소망하면 밝은 세월이 오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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