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터키의 분노, 우리의 분노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터키를 지금은 터키 국민의 분노가 휩쓸고 있다. 재빨리 구조에 나서지 못한 무능하고 나태한 정부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군인들은 왜 구조 현장에 즉각 투입되지 않았는가. 건축에 관한 수많은 법규와 규정이 어떻게 되었길래 그처럼 많은 부실 건물을 가능케 했는가. 명색이 콩크리트 건축물이 어찌하여 모래성처럼 무너진단 말인가. 평소 지진이 없는 곳이라면 그래도 이해가 된다. 지질학적으로 지진 다발지역에 위치한 나라의 지진 대비가 그처럼 허술할 수 있단 말인가.

확인된 사망자만 1만 3천명에 아직 수천 명이 매몰되어 있다. 6천 5백명이 죽은 95년의 고베 지진과 54명이 죽은 94년의 로스앤젤리스 지진 때는 그나마 가벼운 지붕구조와 튼튼한 하부구조 덕택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터키는 여기서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가 선진국 보다는 개도국에서 더 큰 것은 주로 엉터리 건축물 때문이다.

우리 국민도 자주 분노했다. 삼풍 참사 때, 성수대교 붕괴 때 분노했다. 지난 여름 경기 북부지역의 물난리 때도 분노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수해의 근본 원인은 안이한 행정 때문이었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으니 내년에는 달라지겠지 하고 기대해 보지만 두고 볼 일이다. 시랜드 화재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무책임과 나태에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전 국가 대표선수가 훈장을 반납하고 이민을 결심했겠는가.

터키 지진과 관련하여 우리를 화나게 하는 일은 또 있다. 우리 정부가 내놓은 성금이 겨우 7만 달러다. 고관 부인들이 수천만원 짜리 밍크 코트에 정신이 팔려 있는 시점에 어려울 때 우리를 도와 준 이른바 '혈맹국'에 대한 성금이 고작 7만 달러란다. 겨우 17명의 119 구조대는 사고 5일 후에 파견되었다. 다른 나라 구조대가 철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허둥대면서 갔다. 터키가 어떤 나라인가. 6.25때 1만 5천 명의 군대를 보냈다. 그 중 754명이 죽고 2천 명이 부상 또는 실종되었다. 터키는 국제관계에서도 늘 우리를 지지했다. 당장에 이해관계가 없다고 해서 우방과의 관계를 소홀히 한 정부 처사가 한심하다. 한번도 지진 안전지대는 아니다. 우리가 언젠가 터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할 날이 올지 모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언론계와 사회 단체가 터키를 위한 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이에 많은 국민이 동참하고 있다. 어쩌면 정부가 낸 7만 달러보다 주한 터키 대사관으로 몰려오는 한국인들의 정성이 더 값질 것이다. 터키 대사도 이를 보고 한국인의 정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 국민은 아직 우리를 '형제'로 부르고 있다. 우리 정부의 성금은 일본의 20분의 1, 외국의 평균 성금액의 4분의 1이다. 우방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분단국인 우리는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우방국의 협조를 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터키 국민의 분노를 보면서 우리 정부의 단견에 덩 달아 분노가 치민다.

터키 국민의 분노가 과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을 아끼고 법을 공정하게 집행해 이번 지진을 전화위복으로 삼기를 기대해 본다. 대결관계에 있는 그리스가 구호의 손길을 보낸 건 그나마 터키에게는 위안이 될 듯 하다. 그리스의 반대로 터키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일이 잘 되어 EU에도 들어가고 그리스와도 우호적이 된다면 터키 국민의 지금의 분노가 결실을 맺는 셈이 된다. 터키인의 분노,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객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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