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유력지 발행인의 추락

중앙일보 사주의 구속파장

보광그룹 탈세사건을 수사한다더니 중앙 유력지 발행인이 구속되었다.

이런저런 관측이 많았지만 신문사 사장을 구속하는 전례를 남겼다. 당연히 뒷말이 나오게 되었다.

“언론이 성역이냐, 탈세했으면 구속할 수 있지 않느냐”는 첫마디가 원론이다. 반면에 “구태여 구속수사로 응징할 필요가 무엇인가, 탈세사건 발표만으로 모든 명예가 추락하지 않았느냐”는 반론도 없지 않다.

사실 홍석현사장에 대한 시중의 평가는 많았었다.

언론경영의 귀재라는 찬사도 있었고 삼성재벌로부터 독립도 여론을 수용한 결단이 아니겠느냐는 평가도 받았다. 반면에 언론 사주로서 보광그룹의 대주주 지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그룹분리 과정의 투명성이 검증되었느냐는 의혹도 제기되어 왔었다.

그래서 보광그룹에 대한 탈세사건의 세무조사때부터 초점은 홍사장이었다.

그리고는 홍사장을 구속이야 할 수 있겠느냐는 흥미본위의 말이 있었다.

이에 대한 정부의 공식입장은 명확하다. 성역은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 어떤 표적이나 언론 길들이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로지 개혁과 조세정의의 확립일 뿐이다. 시중에서도 탈세사건에 관한 한 별다른 이의가 없다. 정부가 강조하지 않더라고 정확한 세금없이 부의 이전이나 경영권 승계는 차단돼야 마땅하다.

그리고 언론계에서도 원론적 입장이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동업계 의식이 적용될 사건도 아니고 언론 길들이기라고 단언하기도 미묘하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중앙일보측의 입장은 물론 다르다. 섭섭하다는 감정이나 탄압받는다는 소감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우선 탈세사건의 과장 발표라는 항변이 있고 보광사건을 중앙일보 사건으로 비화시킨 의도가 언론탄압이라는 반론이다. 홍석현사장이 분명 보광그룹 대주주이지만 아무런 법적인 지위가 없다. 오직 중앙일보 발행인만이 법적인 지위이다. 그런데도 홍사장을 구속한 것은 현정부 들어 중앙일보의 편집내용과 상관없다고 해석할 방도가 없다는 주장이다.

긴장속 할 말 없어진 언론계

언론계가 독자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받고 있다고 자부하는 언론인은 별로 없다. 언론사 사주라고해서 사회적 신망이 특별히 높다고 믿기도 어렵다.

정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언론도 개혁대상이지만 자율개혁을 기대하고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한다. 못마땅하지만 5공식으로 개혁할 수도 없고 불공정거래나 편파적이며 무책임보도에 속을 앓고 있다는 심정을 간간히 밝힐 뿐이다.

이러다가 보광그룹 탈세제보에 따라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대주주를 구속하게 되었다. 모르긴 하지만 정부는 꼼짝없이 손을 보게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의 외로운 항변을 들으면서 동업계가 할 말이 없다. 평소 중앙일보가 동업계에 못마땅하게 비쳐졌던가 싶다. 재벌그룹의 금력을 배경으로 확장해 왔으니 인심을 잃었던 모양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반면에 동업계가 입장표명을 하려해도 마음에 걸리는 대목은 없는지 궁금하다. 시중에서는 중앙과 세계일보 외에 다른 언론사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첩보들이 난무한다. 그래서 바짝 긴장하며 사태추이를 관망하는 처지가 아닐까 짐작되기도 한다.

물론 과거에는 달랐다. 그러다가 세월이 바뀌고 시대여건이 달라지면서 언론도 개혁대상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왜 언론계가 역대정권에서 개혁과 길들이기 대상이 되고 또 국민의 정부하에서도 비슷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언론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이로 일단은 언론계 내부에 책임이 없지 않다는 소견이다. 언론인 스스로 개혁하고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게 뜯어 고쳐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또한 특정사건과 특정 언론사 문제가 중대한 쟁점으로 표출되었을때 활발한 논의와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긴장 속의 유구무언도 마땅치 못하다.

언론사 사주와 관련된 문제. 언론길들이기와 관련된 혐의에 관해 마음놓고 토론하고 시비도 가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언론이 남의 잘못을 질타할 때는 그토록 용감하다가도 자신의 문제에 관한 한 비겁하다는 여론의 질타를 모른척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솔직한 심정이다.

정치와 권력과 언론관계

국정감사 기간을 통해 국회에서 중앙일보 사태를 집중 논의한 것을 보면 정치문제이다. 탈세사건이 정치문제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이번 사건의 본질을 설명한다고 믿어진다.

구속된 홍석현사장과 관련된 문제라면 바로 삼성그룹과 연결되고 이건희회장과 장남 이재용씨에 대한 비상장 주식 상속문제와도 통한다는 인식이다. 그리고 국회는 국감을 통해 재벌의 상속과 증여문제를 열심히 다뤄야 유리하다는 것이 실제 상황이다.

게다가 중앙일보 문제라면 지난번 대통령선거때부터 여야간 이해가 상충되는 것으로 지목되어 왔었다. 이번 국회에서는 아예 편을 갈라 찬반의 공방이 벌어졌다. 그러니 중앙일보 사태는 탈세나 언론탄압 여부와 관계없이 정치와 권력과 언론관계로 규정되는 정치문제가 되고만 느낌이다.

집권당인 국민회의가 공개질의서를 띄우기에 이르렀다. 언론사주가 성역이란 말인가. 선거때 특정후보를 지지한 것이 올바른 언론인가. 재벌이익을 대변해 오던 언론이 갑자기 언론탄압이라 주장하긴가. 언론자유를 주창하며 내부 도청이 왠 말인가. 무가지를 무차별 살포하던 과당경쟁 선두주자가 공정한가.

국민회의로서도 중앙일보가 언론탄압이라 강경하게 저항하는데 분통이 터진 모양이다. 그리고 공개질의서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여론도 있었다.

그렇다고 중앙일보측의 반론이 무력해 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폭로형 기사로 처음 알려졌지만 인사와 편집에 대한 간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청와대 공보수석이 바로 중앙일보 재직시에 언론자유를 부르짖으며 퇴직과 복직을 거듭했던 전력이 있었으니 알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삼성그룹과 중앙간에는 사건이 잘못되면 정치문제화할 것을 경계하느라고 백방으로 노력했었다는 소문이있다.

재벌이 권력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권력에 접근하여 긴장관계를 풀어내는 솜씨도 대단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그런데도 이번 사건이 정치쟁점화한 것은 단순 탈세사건 이상의 중요사건이 아닐까 짐작해 보는 것이다.

언론길들이기란 격퇴의 대상

홍사장 구속에 대한 신문기자들의 여론은 다른 집단에 비해 명쾌한 것으로 비교된다.

한국기자협회 조사에 따르면 구속은 잘했다가 80%, 사주가 개혁의 걸림돌이라는 응답이 75%라고 보도되었다. 또한 중앙일보측의 대응자세가 부적절했다가 무려 84%로 나타났다.

정부로서는 기자들의 여론이 제대로 나타났다고 반가워할 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의 부당한 외압행사라는 응답도 62%로 높았고 문체부장관이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도 78%에 달했다. 이렇게 보면 다소 홀가분한 입장의 일선기자들이 정치적 사건화되고 있는 중앙일보 사태에 대한 뚜렷한 주관을 내보인 셈이다.

단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보광그룹 탈세를 중앙일보 발행인과 편집내용과 직접 연관시킨듯한 사건처리 방식이 떳떳하다고 할 수는 없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발표와 검찰의 기소 내용만을 비교하면 법적지위에 있지않은 대주주를 구속 수사할 사항으로는 미약하다는 반론이 나오게도 되었다. 또한 재벌관련 비리수사에 있어 오너와 전문경영인에 대한 문책방식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소지도 남겼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홍사장 구속이후 확대되어온 중앙일보 사태는 여러 측면에서 후속문제를 생산하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언론자유와 정부의 반론, 언론의 자율개혁과 사주의 책임. 언론시장 경쟁질서 확립 등 언론내부의 문제에서부터 재벌개혁과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범위등 논의돼야할 항목이 부지기수라는 소견이다. 그렇지만 권력과 정부와 언론계가 합의 실천해야 할 가장 큰 주제는 언론길들이기라는 말이 절대로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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