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표류하는 교육 개혁

두뇌한국 21도 나눠먹기 논쟁

글 / 李斗石 편집위원 (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집단간의 이해 갈등

교육개혁이 위기를 맞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들어 선지 1년 9개월. 그 동안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교육개혁조치들이 실패로 끝날지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가 적지 않다.

일선 교육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해 갖가지 파행과 부작용이 빚어지는 등 난맥상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 추진되는 개혁작업 마저도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학교구성원의 집단 이기주의와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갈등이 증폭되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질만 계속하고있다.

이른바 ‘국민의 정부’가 대학교육개혁의 간판으로 내건 두뇌한국 21(BK 21) 사업은 교수사회의 격렬한 반발로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방 국립대학을 민영화한 뒤 효과를 검증해 이를 확대하고 금년 2월까지 대학간 통폐합을 유도하려든 국립대 구조조정 방안은 손도 대 보지 못한 체 사실상 백지화 됐다.

대학교수 동종교배(同種交配) 규제안도 마찬가지다. 대학의 모교출신 교수 채용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이른바 학문의 ‘동종교배’가 우려 된다며 이 비율을 50%로 제한하려는 방안은 일부 대학의 반대를 이유로 67.7%로 올렸다. 호랑이 대신 고양이를 그린 형국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립대학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평교수의 교무위원회 참여 조치나 사학재단의 공익이사 의무화 등의 제도적 입법조치도 국회심의 과정(8월 임시국회)에서 물 건너가 버렸다.

또 사립학교의 투명한 운영을 위한 제도적 장치인 학교운영위 의결 기구화 조치도 없었던 일이 돼 버렸다.

게다가 지난해 4월 도입하겠다고 밝힌 교장 신규임용대상자 실질 심사제는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할 조치가 없으며 교육감 선거에 학교운영위가 참여토록 하겠다면서 입법예고 까지 했던 교육자치법 개정안도 철회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잇따른 백지화, 물 건너 간 교육개혁

이처럼 교육당국이 그 동안 추진해온 교육개혁안들이 백지화되거나 유보되는 상황이 계속되자 사실상 “교육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우려의 소리가 교육계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학생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키고 과중한 과외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한 대학입시제도 개혁 조치들이 일선 교육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상적인 방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떨어뜨리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

심지어 2천2년 새 입시제도가 적용되는 고1학생들이 ‘공부를 안 해도 대학에 간다’는 오해에 따라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교실붕괴’로 이어지는 ‘교육실종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진단이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길목에서 지식 기반사회에 대비한 고급인력을 양성하고 교육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출범한 ‘교육개혁 호’가 방향타를 잃고 표류, 자칫 좌초 위기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교육개혁’을 간판으로 내건 현 정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파행과 갈등 증폭시킨 ‘두뇌한국 21’

김대중 정부가 추진해온 교육개혁 조치 가운데 ‘두뇌한국 21’ 만큼 대학사회의 파행과 갈등을 부추긴 정책도 아마 드물 것이다.

BK 21( Brain Korea 21) 사업은 당초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대비, 향후 7년간 해마다 2천억 씩 총 1조 4천억 원을 들여 과학, 기술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학원을 육성하고 지역 우수대학을 집중 지원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금년 6월 사업계획이 공고되자 서울대를 제외한 대부분 대학 교수들의 집단 반발로 ‘나눠 먹기’ 라는 비난을 살만큼 전면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는 등 파행을 겪었다.

교수사회가 ‘두뇌한국 21’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 정책이 특정대학, 특정분야를 집중 지원함으로써 대학의 서열 화를 더욱 고착시키고 대학에 대한 관료의 지배를 강화하려는 반 개혁적 조치라는 것이다.

나아가 서울대 등 일부 명문대학을 지원하기 위해 다른 대학을 들러리로 내세워 ‘두뇌 없는 대학’으로 낙인찍는 행위라며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심지어 4·19후 처음으로 전국에서 모여든 교수 1천여 명이 서울도심에서 가두시위를 벌일 정도로 반발의 강도가 증폭되었다.

마침내 7월 들어 서울 명동성당에서 대규모 교수집회가 예정되고 정부 종합청사까지 가두시위가 벌어질 급박한 상황에 이르자 정부 여당이 서둘러 수정 보완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수정내용의 핵심은 인문 사회분야와 사립 대, 지방대 교수들의 불만을 무마하는 것들로 채워놓았다. 예를 들어 사립 대 교수들의 가장 큰 불만인 교수연구 업적평가제와 연봉제 계약제 등 교수 신분과 직결되는 제도의 도입이 일부 삭제되거나 시행이 연기된 것이다.

결국 두뇌한국 21사업은 서울대 등 특정대학 몰아주기로 끝났으며 대부분의 대학이 들러리만 선 꼴이 되어 극심한 반발을 사는 등 큰 후유증을 낳고 있다.

지원대상 선정 결과가 발표되자, 그 내용에 불만을 가진 대학교수들이 일제히 교육당국을 성토하고 나섰다. 이들은 심사의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지원규모가 가장 큰 과학 기술분야에서 서울대가 9개 주관대학 자격을 따내는 등 서울대, 과학기술원, 포항공대에 지원이 집중된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면서 이 사업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연세대 고려대 등 사립명문대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등 지방 국립대의 반발이 쉽게 가라앉고 있지 않다.

과학기술 6개 분야에 주관대학 신청을 했다가 2개 분야만 선정된 연세대의 경우 서울대 과기원 등 지금까지도 국가의 많은 지원을 받은 특정대학에 또다시 엄청난 규모의 지원을 하는 것은 교육개혁의 취지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전제, 선정경위를 납득할 수 없다며 교육부에 사업 심사서류의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교육 황폐화,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이 나라 교육의 고질적인 병폐는 대학입시 지옥과 과외열풍 주입식 교육 등이며 이를 더 이상 방치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현 정부가 추진중인 교육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런 고질적인 병폐를 치유하는 것이다. 과열화된 대학입시 경쟁을 완화해 입시교육에 맞춘 주입식 지식교육을 토론식 전인교육으로 정상화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해 1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과외교육비의 부담에서 학부모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천2년부터 대입무시험 전형을 시행키로 하는 등 다양한 입시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는 암기위주의 수능 성적, 줄서기 입시형태를 벗어나 자유롭고 창의적인 학교교육의 결과에 따라 대학자율로 학생을 선발토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의도도 좋고 방향도 옳은 입시개혁안이 교육현장을 황폐화시키고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는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 같은 부작용의 대표적인 사례는 일선 고교의 성적 부풀리기 작전이다.

수능시험은 자격시험으로 밀려나고 학교성적이 대학입시의 중요평가 자료가 되기 때문에 학교마다 점수 부풀리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긴급 장학관회의를 소집, 석차백분율을 반영토록 적극 권고하고 있지만 학교입장에서는 가능하면 쉬운 문제를 출제해 타교보다 좋은 성적을 내놓고 싶어한다.

게다가 학부모 성화가 예사롭지 않으니 점수 부풀리기 출제는 거듭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능 성적과 학교성적이 모두 차별화 되지 않는 다면 대학은 어떤 잣대로 학생을 선발 할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수행평가란 것이 있지만 교사 혼자 50명이 넘는 학생들의 적성과 품행을 어떻게 꼼꼼히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숙제를 내 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숙제를 대행해 주는 전문학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결국 학생들은 수능시험이나 학교시험, 수행평가에 별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놀기만 하면 된다는 일종의 ‘패닉 현상’ 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니 학교수업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놀아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데 교사의 지시대로 수업에 열중할 학생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이처럼 교실이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교육주체인 교사와 학생간의 불신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한국청소년 협회와 한국교총 등 4개 단체가 최근 전국 학생 학부모 4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공동체의 문제상황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절반에 이르는 49.6%가 “사제지간을 단순히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 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도 마찬가지 반응을 나타냈다고 하니 이젠 학교 학교공동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교육현장이 황폐화지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적인 하향식 방식 답습

김대중 정부가 그 동안 추진해온 교육개혁 정책이 성공적이지 못한 이유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하향식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탓이다.

한국교육개발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 ‘교육개혁정책 심층해부’를 통해 “많은 개혁 조치들이 교원집단이나 학부모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현장 중심이나 상향식 원리를 따르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나아가 교육적 철학적 논리가 결핍돼 있을 뿐 아니라 일부 개혁적 아이디어들이 사전 검증 없이, 이렇다할 비전도 없는 교육관료들이 밀실에서 성급하게 정책으로 채택하는 바람에 교육현장에서 거부감과 불신을 가져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두뇌한국 21 사업’의 파문도 교수사회와 협의 없이 현정권의 일부 개혁세력과 특정대학 관계자들만의 합의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빚어진 부작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권 따라 바뀌는 교육개혁

이보다 더 중요한 교육개혁정책 파행 이유는 정권을 잡은 최고 통치권자가 임기 내에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무리하게 갖가지 사업을 강행하려 하기 때문이다.

80년대 이후 정권이 바뀔 될 때마다 교육개혁을 위한 기구가 대통령 자문기관으로 구성되었고, 화려한 장미 빛 청사진도 나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5공 시절인 전두환 정권은 교육개혁심의회(85년)를 만들어 ‘교육개혁 종합구상’ (87년) 이라는 청사진을 내 놓았다.

노태우 대통령이 집권한 6공 때는 교육정책자문회(89년)가 구성돼 ‘교육발전의 기본 구상’ (91년)을 내 놓았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교육개혁위원회(94년)가 1백 20개의 개혁과제를 선정, 종합적인 교육개혁 보고서를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도 98년 집권하자마자 교육개혁위원회를 구성, 갖가지 교육개혁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교육개혁기구와 보고서들은 좀 특이한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성되었고 정권이 바뀌면서 해체되었다는 점이다.

그 내용은 모두 비슷하지만 그 어느 것도 앞의 것을 이어받아서 개혁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또 그 동안 논의되었던 한국교육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백화점 식으로 총망라하여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교육개혁 정책들이 ‘선언’ 되기는 했지만 교육현장을 개선하는데 전략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정권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다루어야 할 교육개혁 사업들이 단기적으로 통치권자의 업적과시를 위해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교육개혁에 정치논리는 배제해야

현정권이 남은 집권기간에 교육개혁 사업의 파행을 막고 효율적으로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치논리를 배제해야 한다.

우선 무엇보다 교육개혁은 정권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권의 인기와는 관계없이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추진될 수 있는 교육개혁사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모든 교육문제를 총망라하여 개혁하려는 것 보다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전략적인 문제나 가장 근본적인 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이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도 보다 교육현장을 개혁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핵심 개혁과제는 과열 대학입시와 과외비 문제이다.

더도 말고 이것 한가지만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풀어놓는다면 김대중 정권의 교육개혁사업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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