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탈북자 강제 송환의 非人道性

글 / 金尙哲 (김상철 변호사·탈북난민보호유엔청원운동본부장)

박해와 처형으로 보내는 송환

어느 탈북 청년이 보내온 편지 사연에 의하면 그 아버지는 탈북해서 중국 온 땅을 헤매다가 한국으로 가려고 베트남 하노이까지 갔으나 경찰에 붙잡히게 되자 생을 포기하고 숟가락을 삼켜버렸다고 한다. 다행히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으나, 지금도 그는 중국 공안들이 탈북자들을 자꾸 잡아가니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탈북자들은 누가 신고만 하면 끌려가게 되는 운명이니 자연히 노예노동과 성적노리개로 전락하게 된다. 체포되면 야수적 폭력과 처절한 기근이 지배하는 북한으로 강제 송환을 당한다. 강제송환이 되면 가혹한 조사와 처형 또는 강제노역이라는 처참한 박해가 뒤따른다.

중국에서 기독교 신앙을 접했거나 체제 비판을 했다면 예외 없이 처형되고 사상이 ‘불순’하다면 지상 최악인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진다. 훈방되는 경우도 있으나 도중에 맞아죽고 병들어 죽고 고문과 성폭행을 당하는 온갖 참상이 다 일어난다.

탈북자들을 붙잡아 북한 땅으로 강제송환하는 것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사지(死地)로 도로 쳐 넣는 것이다. 물에 빠져 죽게된 사람이 간신히 물 밖으로 나오자 다시 물 속에 빠뜨리는 것과 같다. 무자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과연 중국이 문명국가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인권문제까지 가기 전에 우선 중국의 체면문제가 될 것이다.

탈북자가 송환되더라도 박해받지 않는다는 우다웨이(武大偉) 주한 중국대사의 말이 거짓이라는 증거는 무수히 많다. ‘조용한’ 해결책을 쓴다고 할 때 이러한 참상의 행진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 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작년 한해 동안 동북(東北) 3성의 지역에서만 탈북자 6300여명이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송환당했다. 그들은 누구인가. 북한 이탈주민은 우리 법률상 대한 민국 국민이고, 국제법상으로도 국적선택권이 인정되는데 그들을 한 인간으로서 보호해 주는 나라가 없는 것이다.

이런 견해도 있을 수 있다. “탈북자 문제를 아무리 거론한들 중국이 대북정책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탈북사태를 막기 위해 탈북자 강제송환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용히 있으면서 탈북자를 묵인하는 관대한 조치를 기대해야지 자꾸 떠들어 다 잡아간다면 탈북자 죽이는 것밖에 더 되느냐.”

이 같은 의견은 현실에 입각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중국은 대국이요 제 마음대로 하는 나라인데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하는 패배주의적 사고가 아닐까.

중국의 외교적 입장이 문제

그러나 악은 박해책동에도 불구하고 백일하에 이를 드러내야 비로소 사라진다. 동족이 이역 땅에서 나그네 되어 학대받을 때 돕는 것은 인간의 도리요, 자국민보호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구원을 절규하는 사람을 사지(死地)로 도로 끌고 가는 것은 극악한 처사이다. 이런 야만행위를 묵인할 것이 아니라 온 세계에 알려야 한다.

기본적으로 오늘날의 탈북현상은 인력으로 막을 수 없다. 또 탈북자 전원색출은 말이 쉽지 결코 용이한 문제가 아니며, 무수히 돕는 손길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하고 악의 퇴치과정에서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북한의 기아는 제도적 박해의 결과다. 생각해보면, 탈북자들은 단지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을 면하기 위해서 탈출했다기보다 기아를 가져오는 제도적 박해를 피해 나온 것이다.

북한은 2백만, 3백만명이 아사해도 농사할 자유도 주지 않고 식량배급도 해주지 않는다. 군사 ‘강국’을 과시하는데 돈을 쓰고 권력기반인 핵심계층만 먹일 뿐, 적대계층과 동요계층은 아사의 비극에 방치해 두고 있다. 따라서 탈북자들 대부분은 사회적 신분에 따른 박해의 피해자들로 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강제송환되면 처참한 박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그런 의미에서 탈북자들은 엄연히 국제법상 난민의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보호할 수 없다면 지상에서 과연 그보다 더 난민보호의 손길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 탈북난민들이 원하는 곳에서 거주하고 당장 생명을 부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해 주는 것은 난민보호협약에 가입한 각국 정부의 국제법상 의무이다.

현재 중국 정부가 하는 처사는 옳지 않다. 탈북자는 그 동안 러시아에서 국제법상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왔다. 또 베이징(北京)주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 일단 난민신청을 하는데 성공하면 난민지위 부여가 거부된 사례가 별로 없다고 한다.

끈질긴 국제 공론화 조치 필수

북한이탈주민은 실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우리 헌법과 국제법과 대법원 판례에 그렇게 되어 있다. 우리는 혹시 탈북자들이 겪고 있는 인간 이하의 천대를 외면하면서 우리들만 잘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나 남들의 눈에 북한 사람이나 남한 사람이나 다 코리안이다. 탈북코리안이 중국에서 천대받으면 코리안이 다 천덕꾸러기가 된다.

코소보난민에 대하여는 전 세계가 동정을 했으나, 탈북난민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것은 먼저 우리 자신이 냉담했기 때문이다. 탈북난민문제에 대하여 아직 국제사회의 여론이 충분히 조성되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도 동족의 곤경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과 세계160개국에 펼쳐져 살고 있는 한인들 모두의 책임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오래 위력의 지배에 길들여져 왔다. 조선왕조 500년간이 대체로 중국의 속국이었고, 이어 35년간 일본식민지였으며, 해방 후에도 국가안보와 외교의 골격을 미국에 의존했다.

자연히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대가와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잘 모르고 지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중국이 아무리 커도 세계 속의 한 존재이다. 국제규범을 마냥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탈북난민 강제송환 조치의 비인도성과 위법성을 국제 공론화한다면 중국도 마침내 소외집단 북한의 후견자로서 얻는 이익과 세계 여론이 한없이 나빠질 때 받게 될 손해를 저울질하게 될 것이다.

그 저울이 반대로 기울게 될 그 날까지 우리는 결코 쉬지 않고 끈질기게 이 문제를 국제공론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국 땅에서 강제송환의 위험에 떨고 있는 북한인들이 색출, 체포되는 것이 아니라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에 출두하여 난민으로서 보호받고, 원하는 대로 우리나라에 와서 살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은 바로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다.

독일 통일 전 서독 정부는 서독공관에 망명을 요청해온 모든 동독인들을 서독으로 후송 정착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외국에서 큰소리치는 것은 그들의 안전을 자국 정부가 반드시 책임져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수천, 수만의 북한이탈주민의 경우 베이징(北京)의 한국대사관을 아무리 노크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는 중국에 대하여 탈북자 강제송환의 즉각 중지를 요구하고, 국제법상 난민으로서 보호받도록 요청하며, 이를 위해 유엔난민고등판무실등 국제사회에 호소해야 한다.

또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요구되는 보편적 인류애에 소홀해 온 것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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