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사표 써놓고 개혁 추진

김성훈 장관. “퇴진하더라도 개혁은 해야”

글 / 裵秉烋 대표편집위원

농심이반의 주역 김 장관 고발

휴일 비상 근무명령은 집회방해

김성훈(金成勳) 농림부 장관이 농민단체들의 고발로 여론재판을 받고 있다.

전국농조 100만 농민조합원회 등 많은 단체가 “농심이반의 주역 김성훈 장관을 고발한다”고 신문광고를 통해 성명했다.

농림부 소관 구조조정이 어렵고 말썽이라는 소문은 있었지만 장관이 지상고발을 당하다니 뜻밖이다. 김성훈 장관은 학계에 있을 때 농업과 농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쏟은 학자였다. 장관 취임 후에도 농민 가까이로 접근하여 현실감있는 농정을 펴겠다고 열정을 쏟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농민단체들이 농심이반의 주역이 김 장관이라며 지상광고를 통해 직격탄을 쏘아 올렸다. 게다가 김 장관은 농협과 축협 등 통합추진과 관련 헌법재판소의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기도 하다.

농민단체들은 농·축·인삼협의 통합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 판결이 날 때까지 통합추진을 유보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회의 법안심의 과정에서 축협중앙회장이 할복자살을 기도했던 사건이 바로 통합법 제정이었다.

농민운동가들은 단체의 강제통합이 농민조직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결사의 자유와 직업선택의 자유마저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농조와 농조연 및 농진공 3개기관의 통합도 농림부장관이 이해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않고 추진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그래서 김성훈 장관식 불평등 통합을 거부하기 위해 지난 17일 서울역집회를 개최했다. 그런데 문제는 농림부가 지난 14일자로 당일 소나기 예보를 이유로 휴일 비상근무를 명령함으로써 직권남용에다 집회를 방해했으니 물러나야 한다고 광고한 것이다.

집회방해 아닌 재해예방 조치

기관통합 이해마찰은 적극조정

물론 농림부는 비상근무 명령이 집회방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명한다.

지난 14일자의 비상근무태세 확립지시는 농조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고, 기상청 예보에 따라 각 시도와 농진공, 농조연 등에 함께 지시한 통상적 예방조치라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지시는 금년 들어 7차례나 내린바 있는 정부의 고유한 책임이며 의무라는 입장이다.

농림부는 올해 집중호우와 태풍 등 기상여건의 잦은 변동에 시달렸다. 그리고 농민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농림부는 정기체육대회 행사도 취소하고 자방출장 등으로 수확작업 지원에 몰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림부가 산하기관 등에게 올 마무리 영농을 위해 비상근무를 지시한 것을 집행방해로 볼 수 있느냐는 향변이기도 하다.

또한 농조, 농조연, 농진공 등 3개기관 통합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한다.

문제의 3개기관 통합은 농업인에 대한 서비스강화와 부담경감을 위한 농정개혁의 핵심과제이다. 구체적으로 농업용 수리시설관리, 농업용수 공급, 농업토목사업 등 유사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기관통합은 바로 농업인들을 위한 개혁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농림부는 통합조직인 농업기반공사를 2천년 1월까지 설립토록 추진 중이다. 공사가 발족되면 지난 83년간 징수해 오던 수세(물사용료)가 폐지된다.

다만 3개기관 통합추진 과정에서 각 기관마다 이해가 다소 엇갈리고 노조간에도 마찰이 발생하여 이해조정 중에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요즘 농림부가 여러 가지로 쫓기고 시달린다. 모든 분야가 다 구조조정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왜 농림부 장관이 지상고발을 당하게 되었는지 안타깝다.

대체로 농민관련 구조조정이 기본적으로 어려운 정책과제라는 사실로서 이해된다. 그렇지만 직접 장관의 해명을 듣고 싶다. 취임 후 이동장관실을 운영하며 매우 정열적으로 뛰고 있다는 김 장관이 실수를 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장 차관이 사표 쓰고 개혁발표

협동조합 통합이익은 농민

국회에서 농업협동조합법이 통과될 때 농림부장차관이 사표를 썼다고 발표되었다. 배수의 진을 쳤다고 이해되지만 그토록 험악한 분위기 속에 법안을 통과 시켜야만 했던가. 더구나 통합법을 반대하던 단체장이 할복을 기도한 사건마저 터졌으니 아무래도 독소조항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개혁을 추진하면 퇴진하라는 주장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농민을 위한, 농민에 의한 협동조합을 만들어 농민에게 돌려주자는 각오가 앞섰습니다. 따라서 물러가더라도 협동조합은 개혁해 놓고 물러가는 것이 소임이라고 판단하고 사표를 쓴 것이지요.”

협동조합 개혁은 국민의 정부가 공약한 개혁과제이다. 그래서 98년 4월부터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협동조합개혁위원회를 설치. 상당한 논의를 거쳐 99년 3월 개혁방침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축협이 끝까지 반대한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개혁 주무부처 장차관이 사표로서 소신을 대신했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일부단체가 끝까지 반대하는 법안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개혁한다면 농민에게는 무슨 이익이 돌아갈까.

“협동조합이 위로부터 하향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조합과 농민이 하나가 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3개로 나눠진 중앙회를 통합하여 기구를 축소하는 대신에 일선조합은 조합원이 주인이 되는 협동조직으로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조합개혁이 완성되면 농민들은 생산에만 전념하고 조합이 농산물의 공동출하와 공동판매 등 협동조합 본연의 사업에만 주력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조합이 전문화되면 농산물은 제값을 받게되고 소비자는 유통단계 축소로 값싸게 구입할 수 있으니 생산자와 소비자가 다같이 실익을 누리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문제는 농산물의 유통과정이다. 정부가 수없이 약속한 사항이지만 아직도 별 성과가 없다.

유통구조의 고비용 저효율은 언제 고치겠다는 말인가.

“유통단계와 유통마진 절감대책은 분명합니다. 산지와 도매상과 소매상별 개혁과제가 추진되고 있고 물류비용절감 대책도 차질 없이 진행 중입니다. 오는 2천2년에는 농산물 유통비용을 19조원에서 13조원으로 30%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봅니다.”

농정개혁의 핵심이 바로 유통개혁이라고 지적할 만큼 긴급과제이다. 이 부문이 확실하게 성과를 이룩할 때 농민들은 개혁의 성과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11월말 또 쌀시장 개방 태풍

식량안보는 지역별 특수성

오는 11월말 시애틀 WTO협상에서는 농업분야가 최대 핵심이라는데 농림부가 또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UR협상 때 농림부장관이 물러난 악례가 생각난다.

이번 협상에서는 관세의 대폭인하, 농업보조금의 대폭 삭감이 불가피하리라는 전망이니 마치 태풍이 예고된 셈이다.

농림부가 특별한 묘수를 개발했을 것으로 믿을 수는 없다. 우리와 입장이 비슷한 일본 등과 사전에 공조하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외에 무슨 해답이 있을까.

“관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상대책반을 지난해부터 가동 중입니다. 또한 통상협상에 경험이 많은 전문가를 전진 배치하고 국내외 전문변호사도 고용하여 대응하고 있는 중입니다.”

김 장관은 정부 힘만으로는 부족하여 민간단체와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워낙 벅차고 난해한 협상이기에 모든 힘을 결집시키고 있다는 것이 농림부의 솔직한 고백이다.

“우리 농업의 존망이 걸린 이번 협상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농림부의 방침이다. 그렇다고 태풍을 피할 수 있다고 아직은 낙관할 수 없는 것이 WTO협상임을 숨길 도리가 없다.

김 장관은 과거 학계에서 쌀시장 개방에 반대했던 신운동권 교수였다. 그러니 이번 뉴라운드협상에서 논리상 공세에 쫓기게 되지 않을까 궁금하다.

“농산물협상의 주무장관으로서 논리가 궁할 까닭이 없습니다. UR협상이 수출국들의 이익위주로 타결된 것처럼 이번 협상도 수출국들의 주장대로 타결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농업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주무장관의 책무입니다.”

논리에 쫓길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하나는 농업의 다양한 공익적 기능(Multi-functionality)과 식량안보의 직역별 특수성(Flexibility)이 뉴라운드협상에 반영돼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익의 균형(Balance of Interest)이 반영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익의 균형이란 농민, 소비자, 환경단체 및 농산물수입국의 이익도 균형있게 조정돼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깐 일방적인 논리가 아니라 균형있는 이익논리가 당당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농업과 함께 살려는 각오다져

이동장관실 2만㎞ 주행기록

농림부 소관업무에 손쉬운 것이 별로 없다.

정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믿지만 농민들은 시큰둥하다. 농가부채에 대한 빚보증 해소대책은 어떤 반응일까.

“IMF체제로 농촌사회가 연대보증 부담에 허덕이고 있어 빚보증을 해소시키려는 대책을 세운 것입니다. 내년도 예산에 소요재원 4천2백여억원을 반영해 놓았으니 새해부터는 실제로 농가가 혜택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성실하게 영농에 전념하는 60만 농가에게는 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을 대신해 주게되니 채무자의 도산으로 패해를 입는 경우는 없어질 것입니다.”

내년 선거때를 겨냥한 선심이 아니라 IMF로 인한 농민피해를 정책차원에서 구제한다는 취지라는 해명이다.

김성훈 장관은 취임 후 열린농정을 약속하며 이동장관실을 운영하고 있다. 정책 입안단계에서부터 집행단계까지 농업인과 소비자를 참여시키고 농촌현장을 찾아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이다.

특히 이동장관실은 휴일이나 지방출장을 활용하고 있으며 재해현장이나 시위현장으로도 찾아가 문제를 듣고 보고 해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 동안 이동장관실을 통해 2만여㎞를 이동하며 4천3백여명을 만나 566건의 건의사항을 수용했노라고 집계된다.

옆에서 보기에도 김 장관이 열정적으로 뛰어다녔다. 그런데도 농정의 현안은 무겁게 느껴지고 중첩되어 있다는 소감이다.

김 장관 스스로는 평생을 일관되게 농업과 함께 살아온 인생역정을 먼저 앞세운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대를 나와 농업경제학자, 국제농업전문가, 농림부장관으로 일하게 된 것이 보람이자 사명이 아니냐는 말이다.

그리고 농정의 기본으로 “농촌이 잘 살아야 나라가 잘 산다.”는 신념에 한치도 벗어나고 싶지 않지만 농민단체로부터 지상고발을 받게 되었노라고 쑥스러운 표정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열의로 최선을 다하며 사후 결과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를 받겠노라고 다짐한다.

<김장관은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키 위해 이동장관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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