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올 국정감사를 평가한다

글 / 趙喜坤(조희곤) 편집 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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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행운영으로 끝난 국감

15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18일 막을 내렸다.

이번 국감은 당초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 부실 감사, 혹은 수준 미달이란 평가를 면키 어렵다. 감사가 국민의 복리증진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준비부족에다 당리당략 차원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본질은 제대로 파헤치지 못한 채 파행 운영됐다.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찾아내 건전한 대안을 제시하는 국정감사 본래의 기능과 역할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여당은 정부감싸기와 야당공세를 무력화시키는데 총력전을 펼쳤으며, 야당은 확실치 않은 자료를 들이대며 대 정부 공격에 발언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이번 국감에서는 특히 도·감청 문제와 보광 한진그룹, 탈세사건,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 언론탄압 시비 등 민감한 사안들이 대거 불거져 나오면서 국감장은 여야의 정치공세 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국정의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이처럼 민감한 사안으로 귀중한 시간을 소진한 것은 국력의 낭비이다.

정치권 스스로도 국감종료시 발표한 논평에서 정치적 공방으로 정책감사가 미흡했다는 점을 솔직히 밝혔으며 시민단체들도 이번 국감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고 있다. 혹시나 하며 예년보다 나아지기를 기대하던 국민들은 역시나 하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게 됐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정부정책의 오류를 시정하는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물론 20일이란 짧은 기간에 그 많은 정부 산하기관을 일일이 감사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전문성이 결여된 의원들도 적지 않아 전문 능력으로 무장한 국가기관을 효율적으로 감사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려웠던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매년 중점 감사 대상인 정책분야를 따로 정해 감사하거나 산하 기관 중 일부를 매년 선정, 감사하는 이른바 기획감사사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국회의원에 대한 정책보좌기능을 대폭 확충해 깊이 있는 정책판단 자료를 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폭로성 한건주의는 선거용?

이번 국감은 특히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먼저 폭로성의 ‘한건주의’와 민원성 발언이 판을 쳤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둔 의원들로서는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명확한 근거제시 없이 현안을 과대포장해 폭로하거나 자신의 선거구와 관련된 민원 해결을 촉구한 것은 속보이는 처사이다.

국감에 임하기 위해서는 보다 광범위하고 정확한 자료를 준비하는 등 사전에 철저한 준비자세가 필요하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이번 국감에서도 지난해 제기된 쟁점과 똑같은 질의가 있었고 언론에서 비판한 문제점을 그대로 복사해 거론한 것은 눈에 거슬렸다.

국정감사가 비공개로 진행돼 논란이 인것도 문제이다. 국회회의는 공개하게 되어있는데도 국회법에서 유독 국정감사는 비공개로 하도록 하고 있다. 각 상임위원회는 국정감사의 비공개 국감법 조항을 들어 비공개를 주장하고 있으나 단서조항을 보면 위원회의 의결로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위원회는 국회회의 공개의 헌법원칙에 따라 국가안전 보장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외에는 회의를 공개하도록 돼있다. 따라서 국정감사법상의 비공개 원칙은 위헌 소지마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일이다.

이와 관련, 40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감시민연대’가 16개 상임위원회중 국방위 등 10개 위원회로부터 방청을 거부당하자 몸싸움까지 벌이며 ‘닫힌 국감’이라고 비난한 점을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피감 기관의 불성실하고 책임회피식 답변 태도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고분고분했던 예년과는 달리 이번 국정감사에서 감사를 받는 기관장들이 의원들과 논쟁하는 사태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기관장들의 자세가 불성실해 진 것은 이번이 15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라는 점과 국회의원에 대한 냉소 감이 확산된 때문이란 분석이지만, 국민을 대표한 의원들의 질의에 위기 모면을 위해 책임회피에 급급한 것은 볼썽 사나운 일이다. 피감 기관의 이러한 태도는 국회 경시 풍조로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일부 국회의원의 질문 수준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피감 기관장들 앞에서 무조건 고함과 호통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려 한 것은 아직도 국감 수준이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재벌 증인 소환이 불발로 끝난 것도 국회 국감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생각된다. 국회는 정몽헌(鄭夢憲) 현대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의 출석 불응에도 고발 등 확실한 조치 없이 넘어갔고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회장과 아들 재용(在鎔)씨는 정무위의 증인명단에서 당초부터 빠져 ‘국회는 역시 재벌에는 약하다’는 사회의 인식을 실감케 했다.

국감의 주역이 되어야 할 야당의 전과(戰果)가 미미한 것도 논란거리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국정의 난맥상을 파헤치겠다고 별렀으나 여당측에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을 만큼 별 무소득이었다. 한나라당은 여당의 언론 등에 대한 방해공작을 큰 이유로 들었으나 정보력 부족과 뿌리깊은 여당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한데 근본적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책자료집 발간등은 큰 성과

그렇다고 이번 국감에서 전적으로 문제점만 노출된 것은 물론 아니다. 구태와 파행운영속에서도 활발한 정책자료집의 발간 등 변화의 싹을 감지케 하는 대목도 적지 않았다. 전체 국회의원의 80%가 정책자료집을 내는 등 정책개발에 힘쓴 점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 실제 국감에서의 활용도 등 질적인 면에서 진일보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회의 28명, 한나라당 20여명, 자민련 7명 등의 의원이 정책 자료집과 소책자를 발간했으며 10권 안팎의 자료집을 낸 의원들도 있었다.

특히 한나라당 김형오(金炯旿) 의원은 국감 최대 쟁점 사항이었던 도·감청 문제에서 논리정연하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이번 국감 최대의 스타로 떠올랐으며 김영환(金榮煥·국민회의), 김재천(金在千·한나라당) 의원의 활약도 돋보였다. 이들은 부실국감이란 오명속에서도 국감을 빚낸 진주였다.

여야는 전반적으로 부실했다는 일반적 평가속에서도 잘못된 정부시책을 바로 잡고 국감유용론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남은 정기국회 회기동안 쟁점화된 문제의 개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국회가 다시는 파행으로 얼룩진 민의의 전당으로 변질돼서는 안된다. 전국민이 부릅뜬 눈으로 항상 국회를 주시하고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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