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정부주도 규제 개혁

실적비해 효과 낮다

규제개혁의 경제적 효과와 남은 과제

글 / 姜應善 (강응선 매일경제 수석논설위원·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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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는 경제병의 근원

인체에 있어서 피로를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똑같은 이치로 볼 때 “규제”를 각종 사회 병리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정부패, 비리, 비효율 등 각종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 뒤에는 직.간접적으로나마 규제가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크게는 정경유착의 대형비리에서부터 작게는 말단공무원의 생계형 부정에 이르기까지 결국은 규제가 그 소지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 규제는 언제부터 우리사회의 병인(病因)으로 인식됐으며 그 이후로 없애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가 궁금해진다. 故 박정회대통령이 살아 있던 60-70년대, 흔히 말하는 개발년대에는 분명 규제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유는 두가지라고 여겨진다. 설령 지금보다 더한 규제가 있었을지언정 그것이 사익(私益)보다는 공익(公益)쪽으로 귀착됐다고 보아진다.

간단한 예로서 동네 파출소가 위생업소에게서 돈을 거둬 들이더라도 부족한 난방비나 방범요원 보조 등에 우선적으로 쓰곤 했다. 적어도 개인의 치부(致富)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또 그 때는 지금만한 규제라 하더라도 워낙 통제경제에 익숙해 있던 터이라 국민이나 기업들이 지금처럼 심각하게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시말해 워낙 자원이 빈약한 여건에서 모든 것을 정부가 배분하는 경제에 익숙해 있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끌어 올 때까지는 문제점으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 규제가 언제부터 우리에게 걸림돌로 느껴졌을까. 역시 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좋다. 5공화국 초기 때다. 두가지 이유 때문에 규제완화에 눈을 떴다고 생각된다.

먼저 79년의 2차 오일쇼크, 80년의 첫 마이너스 성장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도성장이 아닌 안정성장시대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챙기기 시작하면서 규제의 경제적 비용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그 당시 세계적으로, 미국의 레이건 정부로부터 불어닥친 규제완화 바람에 우리로서도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규제완화가 아닌 “경제법령 정비”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아마 본격적으로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것은 문민정부 때부터라고 보아야 옳을 것같다.

어쨌든 상당기간 추진된 규제완화 작업이 그동안 얼마나 성과를 이루었는지, 아니면 실패할 수준에 이르렀는지 하는 것들을 제대로 평가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게 유감스럽게도 사실이다. 기껏 한다는 게 정부차원에서 규제 몇 건이 없어졌다든가 하는 식의 홍보에 불과했다.

국민의 정부 들어서서도 총 규제 1만6백건 중에서 약 절반이 완화됐다는 얘기만 있을 뿐 그 결과 과연 어떤 경제적 효과가 있었는가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따르지 않았다.

규제완화는 양보다 질의 문제

이렇게 열심히 규제완화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행정서비스의 대상인 국민들이나 기업들은 아직 멀었다고 외치는 것일까.

이 대목에 전혀 정부의 신경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아직도 규제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거창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작업의 순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가지 측면에서다.

첫째 규제완화가 정부에 의해, 즉 공무원들의 손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이다. 요즘 민간기업들이 모든 것을 수요자 입장에서 제품 설계단계에서부터 제작과정, 판매 및 애프터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고려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얘기다. 그러나 규제개혁은 여전히 공무원들 위주로 결정되고 있기에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 민간인으로 구성된 규제개혁위원회가 있으니 그곳에서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어떤 규제가 얼마나 민간을 괴롭히고 있는가를 최초부터 확인하고 찾아내는 일에 민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은 이상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공무원들이 대부분 만들어 놓은 대안을 받아 들일까 말까 하는 기능은 민간인 중심의 규제개혁위원회에 있을지언정 그 이상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 시간상으로나 전문성 면에서 결코 소기의 역할을 해낼 수가 없다. 근 20 여년을 끌어 온 규제개혁이 이제껏 시원한 성과를 못 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심지어는 한번 개혁을 하고 나선 몇 년이 되면 또다시 규제가 늘어나 그것을 다시 대청소하는 모습밖에 안된다.

그래서 5공, 6공,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에 걸쳐 연례행사처럼 하는 것이라고 본다. 국민소득이 얼마가 되든 매년 여름만 되면 모기는 발생하고 또 그것을 없앤다고 연막소독 등을 하지만 쓰레기 제거 등 근본적 조치를 하지 않는 이상 “모기 박멸”은 연례행사처럼 돼버린 것과 같다고나 할까.

가까운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일본도 80년부터 임시행정개혁조사위원회(臨調)를 구성해 정부개혁과 규제완화를 폭넓게 시도한 적이 있다. 그것을 수 차례 거듭했지만 결국 일본이 규제완화에 성공한 나라라고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물론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기에 단명한 정권(주로 연립정권)이 좋은 대안을 받아 들여도 실행에 애를 먹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여전히 관 주도로 개혁안이 마련됐다는데 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96년에 들어서 일본 경단련(우리의 전경련에 해당)에서 민간이 중심이 돼 규제개혁의 대안을, 그것도 규제개혁 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하에 제시함으로써 지금까지 규제개혁의 기본서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개혁과제의 발굴보다는 5개년계획에 따라 얼마나 실천하는가와 그 효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신경 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일본에서 규제완화는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우리도 한 때 93년 문민정부 초기에 민간단체로부터 규제의 현황과 개선대안을 받아서 그것을 중심으로 실현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규제개혁을 단행한 적이 있다. 상당한 성과가 있었으나 결국 실현가능성을 공무원들이 판단하게 됨으로써 핵심적인 규제보다는 간단한 규제를 없애는데 그치고 말았다.

규제의 경제적 손실을 따져보자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진정 규제를 없애고자 한다면 민간이 중심이 돼 현존하는 규제도 찾아내게 하고 그것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를 판단케 해야 한다. 공무원에게는 마치 “거부권” 행사처럼 꼭 규제의 존치가 필요한 것만 항변하게 하면 어떨까 한다.

요즘 건축법 등 일부 법령에서 도입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인.허가로 시작되는 “포지티브 시스템”에서 반대의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규제 근거를 바꾸자는 얘기다.

다시 말해 모든 일상생활이나 기업활동이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하되 법령에 명시된 것만 인. 허가, 등록, 신고 등의 규제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말 우리의 경우 이렇게 180도 바꿔서 규제개혁을 접근하지 않는 한 규제완화는 다람쥐 채바퀴 도는 꼴이 될 것이다.

재미있는 비유를 하나 해보자. 미국에서는 자동차가 유-턴을 할 때 딱히 금지 표시가 없으면 자유롭게 하게 돼 있다. 이게 바로 네거티브 시스템이다.

우리는 어떤가. 정반대다. 원칙적으로 유-턴은 안되게 해 놓고 표시가 있는 곳에서만 하도록 돼 있다. 이것이 포지티브 시스템이다. 어느 것이 국민들의 자동차 운행에 불편과 편익을 야기할지는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둘째 규제완화를 건수 위주로 하면 안된다. 특히 경제규제의 경우 더욱 그렇다. 백건의 규제보다 한 건의 규제가 경제적 손실을 유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나마 정부가 말하는 규제개혁을 처리기간 단축이나 구비서류 감소 등으로 생각할 때는 더욱 규제개혁의 성과가 하찮아진다. 규제 한 건 없애면 일파만파의 효과가 나는 것들이 많다. 소위 규제의 덩어리라는 것들이다. 주로 금융부문과 건축, 건설, 유통 등에 많다.

이 점에서 민간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6월에 분석 발표한 자료는 매우 흥미롭다. 정부가 발표한 규제개혁의 성과를 중요도를 감안해 가중치 계산을 해 본 결과 정부가 지난 상반기까지 이룩했다는 70%의 규제개혁 실적이 실제 47%의 효과밖에 없다는 평가다.

그 진위 여부는 둘째로 치고 바로 이런 식의 규제개혁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만 규제개혁의 효과를 감안한 우선순위별 규제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 또 그렇게 되면 형식적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규제완화는 발을 못 붙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일본의 경우에서도 규제개혁 5개년계획서에서 1년에 경제성장률이 0.3%포인트씩 올라간다는 수치를 제시했다.

즉 규제개혁을 예정대로 하면 얼마마한 경제적 성과가 있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제시되야만 실행하는 공무원도 압박을 받을 것이고 그것을 지켜 보는 국민이나 기업들도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규제개혁은 반드시 계량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없애 나가되 그 진전 여부도 계량적 측정을 가미함으로써 실행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목표 없이 그저 몇 건을 없애고 하는 식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되겠다. 규제개혁 방식의 개혁이 필요한 대목이다.

규제개혁 성과로 성장률 올라간다

마침 산업연구원이 측정해 본 규제개혁의 성과가 최근에 발표됐다(99년 9월 산업연구원 간 규제개혁의 거시경제적 효과 분석). 뒤늦게나마 정부가 규제개혁의 효과를 측정하기로 눈을 떴다는 점에 무게를 두면서 그 성과를 논해 보기로 한다.

사실 말이 쉽지 규제 하나 하나를 계량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마련해 놓은 모델을 이용해 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우선 경제적 파장이 큰 전력, 유통, 건설, 도로운송, 통신산업 분야의 규제개혁 효과를 종합해 경제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생산성의 향상, 고용 증진, 가격 인하, 생산 증가(즉 경제성장)라는 측면에서 보기로 한다.

규제개혁의 효과는 장기간에 걸쳐 나타날 것이므로 약 10년간을 내다보면 분명 규제개혁의 성과는 크게 나타날 것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본다면 그 효과는 (+), (-)가 혼재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용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규제완화에 이어 생산성이 증가됨으로써 고용이 직접 감소될 수 있다. 분명 (-) 효과다. 그러기에 공공단체 등에서 그렇게 악을 쓰고 반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반면에 국내생산량 자체의 증가에 의해 고용을 증가시키는 측면도 있으므로 종합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단기에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에 따라 전체 고용의 기회가 늘어날 것이므로 고용증대 효과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쨌든 규제개혁의 성과를 10년간 내다 보았을 때 실질 경제 성장율은 8.6% 정도가 올라가고, 소비자 물가는 7.2%정도 하락, 고용은 0.9%정도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를 볼 때 그 규모의 여부는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적어도 규제개혁이 고용을 증진시키고 생산을 늘리며 물가는 떨어트린다는 확신만은 가질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연구.분석이 매번 규제개혁 때마다 이뤄지면서 좀더 정확한 규제개혁의 효과 측정이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개혁주체는 민간인이 맡아야

이제껏 규제개혁이 잘 되는 분야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었던 것은 무턱대고 추진했던 측면과 공무원들의 손에 의해 이뤄졌다는 게 주된 이유라고 본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규제개혁의 주체를 완전히 민간의 손으로 넘기는 게 낫다.

또 그 경우에도 좀더 과학적인 효과측정을 통해 영향력이 큰 것부터 해야만 한다. 이제껏은 그 방법이 개발돼지 않아 실천이 어려웠으나 마침 산업연구원 등에서 관련 연구가 착수된만큼 이를 보완 발전시켜 국가의 규제개혁 수단으로 채택해 볼 일이다.

아울러 더 중요한 것은 규제개혁이 이뤄지더라도 공무원들의 신상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 확신이 공직사회에 서도록 현 정부가 안심을 시켜 주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지금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않아서 문제이지 절대 숫자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치안이나 환경, 위생 감시, 세무집행 등에는 필요인력이 부족하고 대신 중앙부처의 인.허가 등을 담당하는 소위 “펜대 잡는”계층이 많아서 정부전체의 생산성도 떨어지고 국민의 신뢰도 잃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볼 때 규제개혁은 공무원 인력의 재배치와 같이 시도돼야 그만큼 저항이 적으리라고 믿는다.

또 한가지 규제개혁의 실효성을 높이는 일이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민간단체(NGO)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우리를 위하여 쓰여지고 있는가를 감독하는 차원을 뛰어 넘어 정부의 각종 행정행위가 국가경제의 이익이나 국민생활에 이로운가를 과감하게 따져야 한다.

이 점에서는 비록 법적으로는 정년에 달했지만 왕성한 의지와 건강한 체력, 그리고 풍부한 관련경험 및 지식이 많은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비단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내 자식,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 일한다는 기여정신을 발휘했으면 한다. 규제개혁의 최종적 효과는 정부의 발표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결국 어떻게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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