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지방자치제가 흔들린다

집단민원. 지역이기주의 극성

글 / 鄭世煜 (정세욱 명지대 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 명예회장)

분출하는 지역이기주의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우리사회에는 달라진 것들이 많다. 변화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정적인 면도 있다. 부정적인 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역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점이다. 민원인들의 집단적 이기주의와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밀실행정으로 꼭 필요한 공공시설 건설사업조차도 곳곳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것잡을 수 없는‘민원 도미노현상’앞에 행정력이 맥없이 무너지는 현상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이기주의가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 실로 우려되는 바가 크다.

이런 현상은 환경·교통·복지 그리고 지역개발분야에 걸쳐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시민생활에 필수불가결한 공공사업이 제때에 추진되지 못하여 사회적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전체의 부담이 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대구시의 위천국가공단조성에 대한 부산시와 경남주민들의 반대로 아직까지 손도 못대고 있다. 대구시는 위천공단 조성계획을 추진하면서 부산·경남주민들이 당하게 될 문제를 별로 고려하지 않았고, 부산·경남지역 주민들이 낙동강식수원 오염을 우려하여 극한적인 반대운동을 펼침으로써 갈등이 생겼다.

대구시는 위천공단이 조성되더라도 많은 예산을 투자하여 금호강수질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부산·경남주민들은 위천공단에 어떠한 업종이 들어오더라도 식수원오염은 불가피하며 따라서 이를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로 양측은 팽팽이 맞섰고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졌으며 위천공단사업은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이다.

상수원보호구역의 확대를 요구하는 서울시와 이에 반대하는 경기도 및 해당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진통을 겪기도 했다.

또한 경기도 군포시의 쓰레기소각장 건설계획백지화와 관련된 군포시와 수도권매립지운영관리조합 주민간의 갈등도 한때 심각한 상황을 빚었다.

군포시장이 선거공약사항인 산본쓰레기소각장 건설계획백지화를 발표하자 김포의 쓰레기매립지 주민대책위원회는 '95년 8월 7일부터 군포시 쓰레기반입을 중단시킴으로써 분쟁이 생겼다. 주민대책위원회는 군포시의 조치는 소각장을 짓지않고 다른 지역에 쓰레기를 버리겠다는 이기주의적 발상이라고 판단하여 군포시 쓰레기반입을 불허하였다. 군포시장의 무모한 선거공약과 군포시민들의 집단이기주의로 빚어진 분쟁이었다.

밀어붙이기식 행정도 문제

이러한 지역이기주의가 판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데에는 주민들의 책임이 크지만 정부나 자치단체가 그동안 밀실행정을 해오면서 무조건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행정패턴을 버리지 못한데에도 있다.

1년이상 끌어오던 철도청의 서울 이문동 차량기지건설계획이 지난 9월에 백지화됐다. 집단시위를 동반한 주민들의 결사반대로 사업추진이 어려워지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지난 9월 안건을 아예 철회해 버렸다.

서울시의 제2화장장건립계획도 시작부터 주민들의 거센 반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강서구 주민들은 오곡동이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자 지난 9월 초에 대규모 규탄집회를 열어 반대시위를 벌였다. 게다가 지역정치인들도 해결책을 찾는데 도움을 주기 보다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문제를 쟁점으로 들고나와 주민감정에 편승하는 작태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의 비밀행정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강서구 관계자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밀실작업으로 일백여 곳의 후보지 중에서 임의로 최종후보지 3곳을 선정했다면서 사실상 오곡동을 내정해 놓고 집행단계에서 형식적으로 주민의견을 듣겠다고 하니 주민들의 반발과 분노가 폭발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조건 반대심리 폐해 국민 몫

민원인의 무조건반대로 행정력이 힘을 쓰지 못하는 분야 중에는 쓰레기소각장, 폐수처리장, 신체장애인 복지시설 등의 건설사업이 있다. 서울시가 한 때 추진했던 구로구 천왕동소각장 건설계획은 지난해 광명을(光明乙)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치루면서 사실상 백지화됐다.

서울시는 중랑구, 송파구, 강서구에 소각장을 건설할 계획이지만 역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시는 사용기한이 지난 영등포구 대방동 노숙자들의 쉼터인‘게스트 하우스’를 남산의 옛 안기부자리로 옮기려 했지만 이를 뒤늦게안 주민들의 반발로 중단되고 말았다.

이와 같이 공공사업이 차질을 빚음에 따라 그 부작용은 매우 심각하다. 철도청 차량기지수요증가에 대처하지 못할 때에는 철도청은 경인 2복선과 구로 3복선화로 증차되는 차량정비에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

서울시의 제2화장장이 제때에 건립되지 못하면 현재 하루 적정처리능력을 초과하는 벽제화장장의 대기시간이 더 길어져 장례를 제때에 치룰 수 없게된다. 소각장건설이 차질을 빚으면 쓰레기대란이 일어날 것은 뻔하다. 노숙자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노숙자 수가 지난해의 2배로 늘었는데 겨울철에 오갈데 없는 노숙자들을 수용하지 못할 경우 사회불안요인으로 비화될 수 있다.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의 “무조건 반대하고 보자”는 그릇된 사고방식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반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공공시설이나 민간시설건설에 집단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히고 나서는 경향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손해이고 반대의 목청을 돋우어야만 돈을 뜯어 낼 수 있다는 천민의 행태를 보이는 예도 있다.

지역이기주의 원인은 다양

이러한 지역이기주의가 분출하는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첫째, 지방자치제가 실시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자율권과 주민의 발언권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중앙집권체제하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상급단체 또는 중앙정부의 지휘·감독을 받았으므로 다른 지역주민간 또는 다른 자치단체간에 분쟁발생의 여지가 거의 없었으며 설령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상급단체 및 중앙정부의 조정으로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지역주민의 이해와 직결된 개발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분쟁소지가 매우 많아졌다.

지방자치는 경쟁을 촉진시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일것인가 또는 지역이기주의를 심화시켜 조정비용을 증가시킬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지역간의 경쟁촉진에 따른 자원배분의 효율성증대는 행정적 효과로 인식하고, 지역이기주의 심화에 따르는 조정비용의 증가는 부정적 효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경제정책들이 주로 거론되는 반면, 부정적 효과를 극소화하는 방안으로는 분쟁의 행정적·사법적 조정방안들이 논의된다. 그러나 이러한 2분법적 논의로는 지방자치단체나 주민들이 관련된 분쟁의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각 지역이 고유의 자율성, 독창성을 극대화하는 경쟁을 통하여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혀야 한다면서도 자기지역에 불리한 혐오시설의 입지를 거부하려는 지역이기주의 분쟁에는 사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이론상으로 모순이다. 이와 같이 지역이기주의를 긍정적으로 보아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지역이기주의는 외국에 비하여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

둘째, 지역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어 분쟁을 가열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주민들이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지역에 대하여는 부정적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어 지역간의 갈등이 빈발하고 있지만 여기에 더 불을 붙이려는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기심이 더욱 문제이다.

셋째, 지역이기주의는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당사자를 신뢰하지 않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성이 없으므로 이해집단간에 자기주장만을 고집하게 되고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함으로 지역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타협과 조정이 매우 어려워진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는 것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견에 대한 수용태세가 확립되어 있지 못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지역분쟁의 뿌리는 이기주의

지역주민들이 다른 지역의 주민들과 입지 및 개발분쟁을 일으키는 유형에는 다음과 같은 네가지가 있다.

첫째, 주민의 혐오시설기피 및 혜택시설유치경쟁에서 비롯되는 분쟁이 있다. 쓰레기소각장·화장장·신체장애인시설·정신병원 등 지역적으로 원하지 않는 시설을 위한 토지이용(Locally Unwanted Land Uses)을 기피하고 반대로 월드컵경기장·고속전철역사·종합전시장·도청소재지 등 지역적으로 혜택이 큰 시설을 서로 유치하려는 형태의 분쟁이 바로 그것이다.

광역시설 중에서 혐오시설은 서로 기피하는 반면 혜택이 있는 시설은 서로 유치경합을 벌이는 과정에서 분쟁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둘째, 지방자치단체간의 합의와 협조미비로 빚어지는 분쟁이다. 광역적 시설을 건설함에 있어 관계기관 또는 자치단체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또는 협조가 되지 않아 분쟁이 발생한다. 예컨대 여러 자치단체를 관통하는 도로건설을 보면 지방자치단체마다 도로건설의 필요성과 우선순위에 대한 인식이 달라 그 건설여부, 건설시기 등에 관하여 분쟁이 발생한다.

안양시 평촌과 서울시 신림동간의 터널건설사업이 그러하다. 안양시에는 서울로 통근하는 시민이 많아 서울에의 접근성이 안양시의 중요한 관심사항이지만 서울시와 관악구로서는 필요성이 낮고 오히려 터널완공시에 교통혼잡과 환경오염 등의 피해가 우려됨으로 이 사업에 적극적인 협조를 하지 않고 있다.

셋째, 지방자치단체가 경계지역에 혐오시설입지를 선정하는데 따르는 분쟁이다. 민선단체장은 혐오시설의 입지를 선정함에 있어 유권자들의 반발을 고려하여 되도록 멀리 떨어진 곳을 물색하는 가운데 인접한 자치단체와의 경계 가까운 곳에 혐오시설의 입지를 선정하는 예가 많다. 따라서 인접 자치단체와 그 주민들의 반발에 직면하여 분쟁이 생기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천안시의 백석종합폐기물처리장건설에 따르는 천안시와 아산시간의 분쟁, 서울 구로구 자원회수시설건설에 따르는 구로구와 광명시간의 분쟁을 들 수 있다.

넷째, 하천주변지역의 토지이용규제에 따르는 상·하류지역주민간의 분쟁이다.

위에 든 대구의 위천공단조성계획에 대한 부산·경남지역주민들의 반대투쟁외에도 경북 상주군 문장대용화온천지구개발에 따른 충북 괴산군과의 분쟁, 하류지역주민들의 식수원확보를 위한 상류지역에 대한 상수원보호구역의 지정 등이 있다. 팔당상수원보호구역지정과 관련하여 경기도 및 지역주민들과 서울시 및 서울시민간의 분쟁도 그 한 예이다.

지역이기주의때문에 생기는 분쟁에는 환경이기주의에 따른 분쟁, 개발이기주의에 따른 분쟁, 환경·개발이 혼합된 이기주의분쟁의 세가지가 있다.

환경이기주의의 분쟁은 혐오시설이 자기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으로 생기는 이기주의로서 그 시설로 기대되는 편익보다 비용이 더 클 때에 발생한다.

개발이기주의 분쟁은 개발사업의 유치 및 개발이익의 배분과 관련하여 일정한 시설을 서로 자기지역으로 유치하기 위하여 나타나는 분쟁으로서 개발의 비용보다 편익이 더 큰 경우에 생긴다.

이에 비하여 환경·개발혼합적인 이기주의분쟁은 어느 지역이 개발됨에 따라 그 지역과 다른 지역에 환경파괴효과가 발생하고, 한 지역에 혐오시설이 입지함에 따라 그 지역과 다른 지역에 개발촉진효과가 생기듯이 환경과 개발의 외부효과가 동시에 나타남으로써 생기는 지역이기주의 분쟁이다.

예컨대 한강상수원보호구역의 개발행위가 상수원을 오염시켜 하류지역의 주민들과 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들 수 있다.

분쟁예방장치 마련시급

이러한 지역이기주의의 표출로 생기는 주민간의 입지 및 분쟁을 해결하려면 이해당사자간의 갈등을 해소하여 분쟁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하며, 분쟁이 발생하면 이해당사자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자율적으로 해결토록 해야 한다.

첫째, 광역행정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에서 채택되고 있는 특별구, 정부의회(COG), 광역행정기관(metropolitan authority)과 프랑스 및 캐나다에서 채택되고 있는 도시공동체(communaut urbaine) 등의 채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조합은 프랑스, 독일, 일본에서는 널리 이용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이용되지 않는다.

둘째, 이해관계당사자가 분쟁을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적장치와 기준 등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정부간조정법(Intergovernmental Coordination Act)이 좋은 예이다. 또한 광역시설에 대한 공평한 부담의 원칙과 기준을 설정하여 분쟁조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셋째, 지방자치단체의 분쟁조정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자치단체는 쟁점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상대방의 권리를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분쟁가능성에 대한 검토와 대응방안을 고려해야 하며 당사자간의 이해의 조정과 합의를 도출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넷째, 전문기관인 분쟁해결센터(Dispute Resolution Center)를 육성하고 분쟁조정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지역간 분쟁조정은 쟁점사항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와 연구, 대안의 제시, 타협과 협상촉진에 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요구된다. 따라서 실체적 진실규명에서부터 쌍방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안의 마련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기관과 전문가의 육성이 필요하다.


지역주민들의 이기주의적 사고에 따르는 분쟁을 해결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분쟁을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인식하여 회피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이해의 조정과 타협을 통하여 민주적 합의를 도출하고 상호협력의 기회로 삼으려는 적극적 자세를 갖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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