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과대 포장된 정치 개혁

글 / 李東和 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주필)

새 정부 들어설 때마다 개혁바람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각종 개혁작업이 단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치개혁에서부터 ‘재벌개혁’을 필두로 한 경제개혁, ‘언론개혁’등 사회개혁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개혁 바람이 불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센 바람에 비해서는 그 성과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의 성패도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개혁의 목표와 그 추진방향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과거 어느 정권도 집권을 하면 시작한 것이 ‘개혁’이었다. 그 중에는 국가의 진정한 발전을 기하고 국민의 참된 소망을 반영한 개혁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은 구정권과의 차별성을 과시하거나 인적청산을 노리는 것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표적을 정해놓고 마녀사냥과 같은 방법으로 몰아쳐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정략적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사이비 개혁은 정권이 바뀌면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그 개혁의 결과도 한줌의 재가되거나 반작용의 결과를 낳게돼 결국 국가적 에너지의 낭비를 초래했던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정한 개혁이 아니면 실패한다는 교훈이다.

이런 교훈에도 불구하고 최근 진행되고있는 개혁 중에는 과거의 잘못된 전철을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고있어 걱정된다. 특히 정기국회를 맞아 急피치를 올리고있는 여권의 ‘정치개혁’ 작업을 보면 국가와 국민보다는 정권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정략의 냄새가 강하다.

내년 4월의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DJ의 뜻에 따라 공동 여당이 마련한 선거법 개정안은 현재 1개 선거구 당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 대신 선거구를 넓혀 한 선거구에서 2∼4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로 바꾸고, 정당에도 별도로 투표를 하도록 해서 그 득표 결과에 따라 지역구 의석 수 절반(전체의석의 3분의 1)의 비례대표를 뽑는 것이 주요 골자다.

여권 핵심부가 내세운 명분은 지역감정의 완화다. 현재의 의석 분포를 보면 여야 어느 정당이나 마찬가지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단 한 석도 없을 정도로 지역 편차가 심하다. 여 야 정당을 모두 전국정당이 되도록 선거제도를 개혁하면 지역감정이 크게 줄어들고 정치적 대립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물갈이 공천탈락 반발예상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정치개혁의 핵심인가. 분명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은 현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염증을 감안해서 내년 총선 과정에서 대폭적인 물갈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이대로 법개정이 된다면 현재의 여러 선거구가 한 개로 통합됨에 따라 지역구 2백53명이 1백80명으로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현역의원 다수가 공천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공천윤곽이 드러나면 탈락 예상 의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소선거구라면 그 동안 닦아온 기반을 바탕으로 다른 정당의 공천이나 무소속 출마로 탈락에 대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DJ의 절대적 영향력이 있는 호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얘기다. 그러나 중대 선거구에서는 이런 반발이 어렵고 있더라도 최소화될 수밖에 없다. 지역이 넓어질수록 정당이라는 무기 없이 개인 기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다른 정당의 공천 문도 똑같이 좁아져 당을 바꾸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공천 획득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두드러지게 벌어짐으로써 비정상의 해프닝이 속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과 당에 대한 충성 경쟁이 지나쳐 국회의 파행운영이 자주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총선을 앞두고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여야간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자주 논의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이런 걱정은 현실로 나타나 격돌과 퇴장 등이 자주 일어나고 결국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감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총선 앞두고 벌어질 충성경쟁

이 같은 충성경쟁은 정기국회라는 한시적인 것이지만, 보다 장기적인 충성을 담보하는 방안이 선거법 개정안에 담겨있다. 그것은 바로 비례대표제의 확충이다. 의원 수는 29명이나 줄이면서 비례대표의원 수는 현재의 46명에서 지역의원의 절반인 90명으로 대폭 늘려 시·도별로 별도의 정당투표를 통해 비율에 따라 각 정당에 배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대통령의 의회 장악을 현실적으로 가능케 하는 방법이다. 선거자금의 마련 등 다른 고려요소가 많은 야당과는 달리 대통령이 당총재를 맡고있는 여당은 거리낌없는 하향식 공천을 통해 대통령과 당에 충성심이 강하거나 총재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을 다수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간파한 한나라당은 ‘여당의 의석 늘리기를 위한 철저한 정략’이라며 두 가지 내용을 모두 반대한다는 입장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이런 야당의 반대가 아니더라도 여당의 이번의 ‘정치 개혁안’이 과연 개혁적인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첫째 정당의 1인 지배를 더욱 강화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당의 가장 큰 문제는 총재 한사람에게 권한이 너무 집중되어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당은 총재를 정점으로 한 하향식 구조로 되어있다. 총재가 각종 선거의 공천권을 완전히 쥐고있음은 물론 총재의 거취나 의중에 따라 정당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둘째 의원들의 대통령에 대한 충성경쟁은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손상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 권능이 저하된다면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오게 된다. 행정만능주의 부처이기주의 행정편의주의가 판치고 대민부서 여기저기에 부조리가 만연해있는 현실에서 의회의 대정부 견제가 약화된다면 이 역시 개혁이라고 보기 어렵다.

행정부 견제기능 약화 안된다

국민들은 지금 진정한 정치개혁을 갈구하고 있다. 정당과 국회가 당파 싸움과 부조리에 휩싸여 제 역할을 못하고 오히려 국가발전에 걸림돌이 되고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과 갈구는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정치개혁은 정당의 민주화를 촉진하고 선거비용을 비롯한 정치비용을 줄이며 국회의 권능과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이루어져야 한다. 상향식 공천제도의 마련, 선거공영제의 확대, 국회의 상설화 등등 개혁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것들을 외면한 채 중선거구제와 정당투표에 의한 비례대표제만을 ‘정치개혁’이라고 몰고 나간다면 국민의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야당의 적극적 반대를 계기로 이것들이 정치개혁의 문제가 아니고 당리당략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국민의 표를 잃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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