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새 천년 야단법석

글 /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태평양위원회 위원장)

생소한 단어 ‘밀레니엄’

‘뉴 밀레니엄’이라는 낱말이 몇 년전부터 갑작스레 튀어나와 우리를 놀라게 하였는데 ‘뉴’라는 용어는 한국인 모두에게 매우 익숙한 영어 단어이지만 ‘밀레니엄’이라는 영자는 아마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에게도 매우 생소한 낱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새천년’이라는 새 말이 나와서 한국사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1999년이 2천년이 된다고 하여 세상이 달라질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야단스럽게들 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혹시 컴퓨터 작동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하게된다. ‘Y2K’가 무슨 암호인지 컴퓨터 문외한은 전혀 알길이 없지만 어쨌건 두 달 남짓한 세월만 흘러가고 나면 기원 2천년이 되고 무슨 큰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모두가 야단법석이니 이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역사책을 뒤져보면 999년이 1천년이 될 적에 동서를 막론하고 세계에는 이렇다할 이변이 전혀 없었다. 하기야 당시 유럽을 주름잡던 동로마제국이 불가리아와의 30년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지만 국가적 변란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고려조 7대의 군주인 목종이 왕위를 지키고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우리 조상들은 서력기원을 쓰기 시작한지가 얼마 되지 않고 따라서 목종과 그의 신하들이 머지 않아 1천이 된다는 의식조차 전혀 갖지 않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박 대통령의 檀紀(단기) 철폐는 업적

해방이 되고 3년만인 1948년에 새로 정부가 출범했을 때에는 우리는 단기를 쓰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48년은 단군기원 4281년이었으니 1999년은 4332년이 되는데 그것은 별의미를 지니기 어려운 한 해가 아닌가. 그래도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소장이 단기를 철폐하고 서기를 채택한 것은 그의 업적 중에 하나라고 나는 믿고 있다. 단기를 서기로 환산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역시 ‘혁명정신’을 가지고 ‘구악’의 일부나마 ‘일소’하는 일에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아직도 그 문제조차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어 일본 국민만 아니라 우리들 마저도 매우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일본은 황기 2600년을 맞아 크게 축제를 벌인 적이 있다. 그렇게 계산해보니 올해가 황기로는 2659년이 되는데 내년이면 2660년이 된다. 숫자로 보자면 그리 대단한 해도 아니니 일본인의 입장에서 축제를 벌일 까닭은 없다.

일본의 메이지 천황이 즉위하여 왕정복고를 선포한 것이 1868년의 일인데 그 해가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명치 1년이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연대를 계산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메이지는 1912년에 끝이나고 그 때부터 대정 천황이 즉위하여 그들은 대정 연호를 사용하게 된다. 약간 저능아라고 하던 대정은 1926년에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이 즉위하게 되는데 그 때부터가 소화이다. 그래서 1928년 태생인 나는 그 시절의 호적에 소화 3년 출생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내가 단지 몇 가지 예만 들어도 독자들의 생각은 혼란에 빠지기가 쉽다. 소화천황이 죽고나서 이미 11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올해는 평성 11년이고 기원 2천년이 되면 평성 12년이 되겠다. 누가 보아도, 포커꾼이 보아도, 화투꾼이 보아도 결코 대단한 숫자는 아니다.

들뜬 기분은 필요없지 않나

서기 2천년을 바라보며 전 세계가 모두 들든 기분인데 회교도도, 불교도도, 유태인도, 이방인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사실은 꼭 정확한 연대는 아니지만 예수라고 하는 그리스도가 약 2천년전에 유대 땅 배들레헴에서 태어났을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을 기준하여 서력기원은 편성된 것이기 때문에 좋건 싫건 인류의 역사는 그 목수의 아들의 탄생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새 천년이 다가온다고 우리가 야단스럽게 굴어야 할 까닭은 전혀 없다.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한 예수 그리스도가 꼭 2천년에 재림을 선포한 적도 없다. 그런데 전세계는 어찌하여 들뜬 기분으로 기원 2천년을 맞으려 하는 것일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심리는 묘하게 돌아가는 것이어서 나이가 만60세가 되면 회갑이라 하여 잔치를 벌이고 70세가 되면 고희라하여 고희연을 벌이고, 77세가 되면 희년이라하여 춤을 추고 88세가 되면 미수라하여 축하연을 벌인다. 인간이란 정말 웃기는 존재이다. 그런 까닭으로 하여 오늘 새 천년을 준비한다는 우리들의 마음이 설레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1999년에 안된 일이 2천년에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의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가 내년이 되면 몰라보게 좋아질 까닭은 없다. 김대중씨는 내년에도 계속 대통령의 자리를 지킬 것이고(글쎄, 노벨평화상을 올해안에 받게되면 좀 사람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김종필씨는 계속 국무총리의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을 것이고(글쎄, 내각제 개헌이 실현되면 그가 무엇이 될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국회의장은 계속 박준규씨 일 것 같은데(글쎄, 그의 축재가 또다시 말썽이 되면 그 자리를 물러 나야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내년 4월 총선이 끝나면 이만섭씨는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자리를 이씨 아닌 다른 성씨를 가진 이에게 물려주게 될 것 같다. 그렇다고 국민회의가 새 정치를 하게 될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원 2천년이 기원 1999년과 완연하게 달라질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다. 기원 2천년을 바라보면서 제발 야단스럽게 굴지는 말아 달라는 것이다.

3金이 무대를 물려줘야 할 때

우리의 처지는 미국과 중국, 일본과도 다르기 때문에 2천년대에 접어들면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한국인의 마음은 한결 같다.

우선 정치가 좀 달라져야 한다. 3김의 공도 시인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지만 그들이 한 일은 플러스보다 마이너스 요인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깨끗하게 정계를 떠나서 새로운 후배들에게 정치판의 무대를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 아랫물이라도 맑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윗물이 흐린 것에 체념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이치로 따질 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게 되어 있다. 그것은 하늘이 만들어 주신 이치이기 때문에 아무도 어길 수가 없다.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공직자가 주어진 월급만 가지고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부실공사로 떼돈을 버는 사람이나 내부자 거래로 큰돈을 버는 증권사장의 큰 손, 또는 포장이나 저울눈을 속여 폭리를 일삼는 상인이나 몰래 돈을 받고 무슨 상, 무슨 상을 나누어주는 심사위원은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고속도로 휴게실에 공중화장실이 더럽고 냄새나는 것은 누구 탓인가. 휴게소 주인만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대기업가들도 탈세로 재벌될 생각은 버릴 때가 된 것 아닐까. 언론인들이여 사실도 아닌 말을 마음에도 없는 말을 글로 적어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옛날 영국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말한 대로 “생활은 검소하게, 생각은 고상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한국인이 되어 떳떳하게 21세기를 맞을 수 있는 국민이 되었으면 한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