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세무조사, 투명 공정한가

글 / 李斗石 편집위원 (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국세청과 검찰의 밀월시대

세무조사는 국세청의 칼이다. 이 서슬 퍼런 칼날에 걸리면 살아남을 장사가 없다. 그래서 중소기업이나 재벌 할 것 없이 기업인들 사이에 ‘저승사자’로 통한다.

특히 김대중(金大中) 정권 들어 재벌을 겨냥해 ‘조자룡이 헌칼’ 처럼 휘두르고 있는 특별세무조사는 ‘사신의 그림자’로 불린다. 지난 시절, 세무사찰로 불리던 초강도 조사로 세리들 사이에 ‘염하러 간다’는 은어로 쓰일 만큼 공포의 대상이다.

요즘 항간에는 융단 폭격처럼 잇따르고 있는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온갖 유언비어와 설이 난무하고 있다. 이 중에서 세무조사가 노리는 대표적인 타깃으로 ‘재벌과 언론 길들이기’가 거론되고 있다. 다시 말해 부도덕한 재벌과 이를 비호하는 재벌 언론이 세무조사의 칼날 위에 놓였다는 것이다. 부의 세습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으며 재벌을 비호하면서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방치 할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의 정부’ 지지세력인 기층 민중의 기대에 부합하면서 정체성에도 걸 맞는 정책수단이라는 것이다.

재벌개혁을 통해 경제와 조세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명분으로 지금 이 나라 司正의 중추기관인 국세청과 검찰이 유례없는 밀월체제를 갖추고 매서운 쌍칼을 휘두르고 있다. 최근 국세청이 보광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끝내자 마자 검찰이 이를 넘겨받아 강도 높은 수사를 편 끝에 보광의 오너이자 종합일간지 발행인인 홍석현(洪錫鉉) 중앙일보 사장을 구속 기소한 것은 ‘국세청이 앞서고 검찰이 뒤를 받쳐주는 밀월시대’ 의 단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투명·공정성에 의문 제기

그런데 문제는 세무조사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구설수에 있다. 그런 구설수는 현 정부 들어 세무조사를 받고 탈세액을 추징 당한 기업들이 하나 같이 ‘손보기 차원’ 에서 시나리오대로 조사가 강행되고 있다고 항변하면서, "왜 나만…", "재수 없게 걸렸다"는 식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세청도 검찰처럼 정치권력의 외풍에 따라 움직이는 ‘시녀’ 라는 비난의 소리 마저 들리고 있다.

이 같은 비난에 대해 국세청 당국은 세무조사가 관련법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이를 ‘반 개혁세력의 음해’ 라고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세무조사는 조세를 포탈하는 불성실한 납세자를 추적하여 탈세액을 추징하고 조세범으로 고발해 처벌함으로써 조세정의를 세우고 성실한 납세를 유도하는 정책수단이지 보복이나 길들이기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권위주의 정권시절, 세무조사가 정치권의 입김으로 권력의 외풍에 따라 무리하게 강행된 사례가 적지 않았으며 현 정권 들어서도 한진그룹과 보광그룹 등 대 기업의 세무조사 과정에서 그런 의혹을 살만한 사례가 없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일반조사 보다 특별세무조사에 투명. 공정성에 관한 의혹이 더 많다. 특별세무조사는 그 칼날의 강도 때문에 ‘법대로’ 실시되어야 하며 철저하게 비공개. 미확인을 원칙으로 하고 엄격한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 불문율로 통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세청이 이런 불문율을 깨고 이례적으로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관련 자료를 공개, 눈길을 끌고 있다. 사주를 검찰에 고발까지 한 보광그룹과 한진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는 그 결과는 물론 조사과정과 정보수집과정까지 이례적으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특정 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현대그룹과 포항제철 등 단 두 번 뿐이었으며 모두 정치적 배경에 의해 이뤄졌다는 의혹을 받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현대 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는 노태우 정권 말기(91년 10월)에 정주영 회장의 현대계열사 주식매각과 관련, 변칙증여에 따른 탈세사실을 밝혀내고 사상 최대 규모인 1천3백61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현대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와 관련, 당시 항간에는 현대가 노정권의 미움을 샀고 국세청이 혼내주기 위해 탈세혐의를 잡고 철저하게 파헤친다는 여론이 돌았다.

포항제철에 대한 세무조사도 마찬가지다.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한 후(93년 2월)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해 포철 등 법인과 협력회사에 대해 7백 30억원, 박태준 명예회장 일가에 63억원 등 모두 7백93억 원의 탈루세액을 추징하고 박 명예회장은 수뢰와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세무조사도 91년 대통령 선거 박 명예회장이 김영삼 후보와 갈등을 빚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난 후인 금년 6월, 한진그룹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재계는 재별 개혁과 관련, ‘길들이기 칼날’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며 긴장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정부당국이 재벌의 제2금융권 지배견제, 국세청 세무조사 인력보강, 富의 불균형 세습방지 등이 방침을 내놓은 직후 한진그룹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돼 그런 의혹을 증폭시켰다.

언론 길들이기 공방치열

한진그룹에 뒤이어 특별 세무조사의 칼날은 중앙일보 관계사인 보광그룹 3 개사에 날아들었다. 같은 달 29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오너인 보광그룹의 4개 계열사중 주력기업인 (주)보광의 사옥에 50여명의 조사요원이 투입돼 관련서류 일체를 압수하고 정기 법인세 조사, 주식이동조사, 증여. 상속세 조사 등을 실시했으며 홍씨 일가의 재산변동 과정에서 부당 행위가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에 착수한지 만 3개월만에 홍씨 일가와 보광그룹 3 개사에 대해 증여세 및 법인세 탈루 혐의를 밝혀내고 2백62억원을 추징키로 하는 한편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는 조사결과를 이례적으로 발표했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홍 사장을 구속 기소하자 중앙일보와 정부당국 사이에 ‘언론 길들이기’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그 파문이 일파 만파로 증폭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사설과 기획기사를 통해 세무조사가 착수된 시점이나 경위 및 지난 대선 때 특정후보 지원을 둘러싸고 표출된 권력 측의 중앙일보 에 대한 불만 등을 종합해 볼 때 ‘중앙 죽이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정부당국은 "언론사 사주라 해서 성역일 수 없고 사주가 조세포탈 혐의로 사법 처리된 것을 언론탄압이라고 공세를 취하는 것은 언론권력의 횡포" 라는 입장을 보이면서 오히려 ‘언론이 정부를 탄압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 같은 ‘재벌과 언론 길들이기’ 공방을 지켜보면서 세무조사는 무엇보다 보편성과 투명성 그리고 공정성의 원칙을 지켜야 구설수를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무조사가 특정재벌이나 언론사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표적조사로 오해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조사 건, 특별조사 건 세무조사가 이런 ‘길들이기’ 의혹을 받지 않으려면 일관된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