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누구도 유가전망 어렵다

許東秀(허동수) LG칼텍스정유 대표 부회장

변동요인 수시 변동으로 예측곤란

가격조정 잦지만 수익성은 하락

한 동안 기름값 걱정없이 살아왔는데 하반기부터는 국제 유가 동향이 제일 두렵다.

곧 월동기로 접어드는 계절요인에다 경기가 성장세로 올라선 시점임을 생각하면 기름 값이 우리경제를 좌우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언론에서는 산유국 동향을 자주 보도하지만 앞으로의 예측에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기름문제를 가장 정확히 진단할 수 있으리라는 분을 만났다. LG칼텍스정유 허동수(許東秀) 대표 부회장은 연중 기름문제와 씨름하는 선수이다.

누구도 자신 없는 유가전망

고유가 시대라는 용어를 쓰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이미 기름 값은 대폭 올랐다. 앞으로 어느 선에서 안정될지 우리네가 짐작할 수는 없다.

“기름 값과 싸워 본 선수들은 짚히는 것이 있는지요”

“알 수 없습니다. 질문이 어렵습니다. 저희로서는 제일 중요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원유가격 변동추이를 국제 경제환경과 대비하여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누구도 완전한 가격전망은 어렵습니다.”

허동수(許東秀) 부회장이 어떤 방법이나 어느 누구도 정확한 전망이 불가능하다니 야단이 났다. 앞으로 어떻게 변동할지도 모르고 겨울을 맞아야 한다니 큰일 아니고 무엇인가.

“제2차 오일쇼크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35달러이던 80년에 대부분의 세계 전문가들은 배럴당 1백달러까지 올라간다고 예상했었지요. 그러나 금년 초까지는 1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가 지금은 20달러 수준입니다. 최근의 고유가도 주요 원인은 OPEC의 10% 감산 합의 때문이지만 가격 상승폭은 연초 대비 백%에 달합니다. 그사이 아시아지역 경제회복에 따른 수요증가도 있었지만 원유가격 전망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예측이 어려운 사항이다. 원유는 수급상 약간의 과부족이라던가 선물시장에서의 사소한 루머에 따라서도 급격하게 가격이 변동하는 상품이라고 한다. 가격 탄력성이 높은 만큼 예측이 맞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허 부회장은 나름대로 계산이 있고 전망도 있다.

예측가들이 비관론을 발표하면 금방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대체 에너지의 개발노력이나 에너지 소비절약 운동의 성과 등도 계산해 본다는 말이다.

“지난 9월 제 108차 OPEC총회의 감산연장 결의에 따라 배렐당 3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한 전망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할 때 25달러 선에서 저지선이 구축되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저런 전제하에 조심스럽게 내보이는 전망이 결국 25달러라는 답변이다.

매출은 늘어도 수익성은 악화

소비자는 고유가에 벌벌 떨고 있지만 정유업계는 호황이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마다 정유회사만 살판이 났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요즘 회사경영에 신바람이 나십니까”

“내용을 잘 알면서 묻는 질문 아닙니까. 공급과잉에다 가격경쟁 격화로 원가상승 요인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수입업자들의 난립으로 유통질서가 혼탁해 지고 있는 점이 걱정입니다. 기업이 건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이윤확보가 어려워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외형이 확대되어 정유회사가 떼돈을 버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말이다. 실상은 기업이 정상적으로 미래에 대비한 환경설비 및 시설고도화 투자에 애로를 겪고 있다는 해명이기도 하다.

정유산업의 외형은 국제 원유가와 환율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일반 제조업처럼 매출증대가 수요증가를 수반하고 수익성 향상과도 연결되는 구조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 외형을 경영지표로 삼지 말아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허 부회장은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정유업계가 제품의 안정공급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자면 외국업체들의 신규진입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당연히 정유업계가 대비해야 할텐데 외형과 상관없이 수익성이 떨어지니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도대체 석유류 판매가격구조가 어떻길래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는가.

정상적인 시장가격이라면 판매가격이 매일 바꿔야 한다. 원유가격과 환율이 매일 변동하니 석유가격도 동시에 변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그렇게되면 소비자가 혼란스럽고 국민경제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가변동요인을 적가에 반영하기는 어렵다는 고층을 털어놓는다.

“국내 석유가격 산정방식을 이해하시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유의 정제과정에서 다양한 제품이 생산되는 데다 원유에 따라 수율이 각기 달라 원료가격이 제품에 각각 얼마씩 이전되는가를 계산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월 단위로 전달의 원가변동 요소를 산출하여 다음달에 반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요즘도 가격조정이 있을 때는 월말이나 월초에 시행하는 것입니다.”

실로 듣고 보니 복잡하고 난해하다. 대체로 국제 원유가격이 오른 후 한달 정도의 시차가 있다는 말은 이해된다. 또한 정유업계 스스로 원가를 흡수하는데는 한계가 있겠노라고 여겨진다.

소비자 가격의 77%가 세금 등

석유산업이 세수산업이라는 말은 들었다.

판매가격이 올라가면 소비자가 부담스럽지만 정부는 세수증대의 재미를 누린다는 이야기다. 석유회사나 판매점에 누리는 마진은 별개 아니고 세금과 공과금이 엄청나게 무겁다는 말이다.

“판매가격의 구성요소를 유종별로 말씀드릴 수는 없고 휘발유의 경우를 들어보십시오. 1ℓ당 교통세와 교육세 8백66원 유통마진과 정부관련 비용이 약 1백원으로 최종 소비자 가격의 77%를 찾이합니다. 이 결과 ℓ당 공장도 3백17원이 소비자에게는 1천2백60원으로 팔리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석유산업을 세수산업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게다가 공장도 가격의 80%이상이 원유도입 비용이라니 산유국과 수송업자들은 언제나 재미를 누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리고 정유회사의 정제비용은 회사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략 45∼50원 수준이니 이런 수익으로 운영비용을 충당하기가 벅차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허 부회장은 “국제유가가 폭등하면 정유사가 돈 번다”는 식으로 오해하지는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경영환경이 좋지 않은데도 업계는 왜 경쟁을 일삼고 있을까. 생존투쟁일까, 아니면 시장원리일까.

“국내 정유사간에 인수합병이 있고 일부사는 외국자본에 매각되리라는 관측도 있지 않습니까. 국내 석유산업 30년사에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시점입니다. 이럴 때 경쟁은 필연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경쟁의 룰이 공정하고 정정당당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공정한 룰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경쟁의 목표는 품질과 서비스를 통한 고객만족이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점도 있지 않느냐고 들리기도 한다.

“선의의 경쟁을 통한 시장의 개편은 바람직합니다. 그런데도 판매물량을 늘려 시장 점유율만 확대하려는 양적 팽창을 목표한다면 소모적인 출혈경쟁밖에 기대할 결과가 없습니다. 그리고 고객만족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마저 잃고 말 것이 우려됩니다.”

아마도 그런 현상이 있는가 보다. 가격파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출혈경쟁으로 시장 쟁탈전을 벌인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행여 판촉경쟁이 과소비를 유발하지는 않을까.

소비자 입장에서 그런 혐의가 느껴지는 것이 시실이다. 허 부회장은 가부를 말하지는 않지만 적정수준의 판촉활동은 기업과 고객이 만나는 방식 중의 하나라고 표현한다. 그렇지만 과열은 불가하다고 단언한다.

숙명적인 내수산업의 난처한 입지

석유산업은 불가피하게 내수산업으로 성장해 오고 있다.

원유확보가 문제이고 정책과제이며 수출산업으로서의 입지가 빈약한 것도 숙명이다. 그래서 외부환경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내수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행동범위도 좁은 편이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정유산업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소비지 정제주의로 발전해 왔습니다. 안정적인 에너지공급의 수단으로 원유를 도입하여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산업입니다. 그래서 전형적인 내수산업일 수밖에 없을 뿐 더러 일부 잉여분을 수출하고 일부 수요가 급증하는 품목을 수입하는 실정입니다. 올해 수출목표가 얼마냐고 물으면 답변이 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유회사에 대해 수출을 강조한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반론이다. 국내시장에 비해 과잉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가 공장의 적정가동율과 연계하여 수출을 늘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LG칼텍스는 시장규모에 맞게 증설해 왔기에 수출에 대한 압박이 없노라고 말한다.

정부는 내수산업에 대해 매정한 편이다. 그래서 정유회사가 정부에게 큰소리 칠 수 있는 형편은 못 될 것이다.

석유산업정책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지만 별말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고유가 시대에 정부도 물가와 세수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코자 고심하고 있을 것입니다. 고유가는 정유산업 뿐만 아니라 전산업에 영향을 파급하게 되니 고유가의 산업영향을 최소화하는 정책이 시급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산업구조 개편이나 소비절약 시책 등 산업자원부, 재정경제부, 환경부 등 관련부처가 함께 노력해야 할 과제가 많을 줄로 믿습니다. 물론 업계도 적극 동참해야겠지요.”

국가 기간산업의 사명감

정유회사와 소비자간은 친밀한 듯 하다가도 멀게 느껴진다. 재벌계 정유사가 자기네 이익에만 집착하고 소비자보호를 위해 얼마큼 열성을 보이는가 궁금하다.

술회사나 과자회사들은 얼마나 고분고분하고 상냥한지 비교된다. 새 상표를 개발하여 소비자 가까이로 접근하여 아양을 떨고 사은품을 나눠주는 정성이 오히려 귀찮을 정도이다.

석유장사는 배짱인가. 기름 값 올랐다는 기분 상하는 고시만 했지 언제 따뜻한 인사가 있었던가.

이런저런 불만을 말하게 되었있다.

가장 귀중한 생필품이자 가장 지출이 많은 소비품이 석유류다. 가계지출을 계산하면 언제나 교통관련비용이 가장 많이 늘어나고 기름 값 비중이 가장 무겁다. 그러니 원망 아닌 원망을 정유회사에 보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소비자가 무지하다거나 정유회사가 밉다는 감정은 결코 아니다. 원유가 생산되지 않는 무산유국 국민이 지닌 원초적 불만이 아닐 수 없다.

정유산업이란 우리의 경제개발을 뒷받침해온 중요 기간산업이자 일종의 전략물자이다. 그래서 수출도 못하고 소비자에게 친절하지도 않지만 매우 중요하고 정책적 지원이 따라야 하는 산업으로 인식된다.

허동수 부회장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동의한다. “제가 몸담고 있는 이 산업이 담당하고 있는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자부한다.

학창시절부터 에너지산업에 대한 꿈을 키워온지 30여년이 넘어 이제는 세계적인 초일류 에너지사업을 육성시키는 것이 최대의 꿈이라고도 밝힌다.

중후하고 소탈해 보이는 허 부회장은 의외로 세밀하다. 인터뷰 내용의 용어 하나하나에도 지나치리 만큼 관심이다. 행여 정부정책에 어긋날까 경쟁사의 오해를 유발할까, 아니면 소비자에게 무례로 비칠까 온갖 걱정이다. 그래서 기록하면서도 신경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기름전쟁의 국가대표선수와의 인터뷰 결론은 고유가 시대를 맞아 기름은 값싸고 넉넉하게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판단이다.

사진-1 캡션 : 유가불안이 계속되고 있으나 가격 예측이 어려워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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