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유가 불안 언제까지

에너지 절약과 산업구조 개편 서둘러야

글 / 趙喜坤(조희곤) 편집 부주간

상승세 쉽게 꺽이지 않을 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던 국제유가가 3개월만에 20달러대로 떨어졌다. 지난 9월말 배럴 당 25달러선 까지 치솟았던 美텍사스 산 중질유(WTI)의 경우 최근 뉴욕상업거래소(NYMEX) 등 국제 원유시장에서 20달러 대에 거래되고 있으며 영국 북해 산 브렌트 油와 중동 산 두바이 油 역시 비슷한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들의 증산 움직임 때문이다. 산유국들이 감산합의를 외면하고 증산에 나선 것은 증산으로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현실론과 OPEC내 맹주를 노리는 헤게모니 싸움이 맞물려 빚어낸 결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라크에 대해 유엔이 추가 증산을 허용한 것은 OPEC 회원국간 감산 합의 약속을 깨뜨리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유엔의 對이라크 추가 증산 허용은 올해로 유엔의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10년째를 맞아 이 제재를 해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 아닌가 분석된다.

이와 함께 미국 등 선진국들이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산유국에 증산압력을 넣고 있는 점도 유가 하락과 무관하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내놓은 한 보고서에 따르면 OPEC 회원국들의 감산합의 이행률은 지난 8월의 94%에서 9월에는 8%포인트나 낮은 86%대로 하락했다.

구체적으로는 이란이 하루 19만 배럴을 생산한 것을 비롯, 이라크가 6만 배럴, 사우디아라비아가 5만 배럴을 추가 생산했다. 또한 국내 치안 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나이지리아는 하루 5만 배럴을 더 생산하는 등 회원국간의 감산합의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OPEC 회원국들은 감산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올 들어 유가가 두 배 이상 급등하면 지난해 유가하락으로 입었던 재정 부족 분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며 흡족해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증산이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어쨋든 최근의 유가 하락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어두운 터널에서 막 빠져 나오려던 중 터진 대우 및 투신사태 등 금융불안에 유가급등 까지 겹쳐 다시 휘청거리던 우리 경제에 다소나마 안도가 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감산합의 불이행에 따른 유가의 하락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

이에 대해 대다수의 국제 석유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아직 시장에는 유가를 끌어내릴 요인보다는 반대의 요인이 많다고 보고 있다.

그 근거로 석유 성수기인 겨울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며 세계 산유량 보다는 소비량이 많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IEA는 “국제유가의 전반적인 강세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며, 올 4·4분기에는 하루 세계의 석유 소비량이 현재보다 3% 정도 증가한 7천7백20만 배럴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현재 세계 석유 산유량은 하루 7천2백만 배럴로 수요량 7천6백90만 배럴에 비해 5백만 배럴 가량이나 밑돌고 있다.

이 부족량 5백만 배럴은 재고 물량으로 간신히 메꿔지고는 있지만 산유국들이 증산움직임을 자제하고 감산에 합의하기만 하면 언제 다시 부족현상이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 산유국들이 대대적으로 증산에 나서지 않는 한 국제유가가 계속 하락하기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국제유가는 WTI기준 배럴 당 20∼25달러 선에서 박스권을 형성하며 등락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최악의 경우에도 25달러 선을 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은 만일, 유가가 심리적 저항선인 25달러 선을 넘어설 경우 세계 각국, 특히 비산유국들은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대체에너지 개발에 매진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에너지 정보 분석회사인 ESAI는 유가 전망과 관련, 유가는 올 12월 정점에 올랐다가 내년부터는 다소 진정될 것이란 조심스런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인 미국은 국제 유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향후 경제 운용 계획을 짜고 있다. 하지만 유가가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더라도 미국은 크게 당황해 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원유가 경제 전반에 차지하는 비중이 예전보다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철강이나 석유화학 등 제조업보다는 소프트웨어, 인터넷 등 정보통신 업종의 생산액이 훨씬 많아졌다. 현재 미국에서 인플레를 유발하고 장기 호황의 발목을 잡는 것은 유가 상승보다는 비탄력적인 노동시장과 달러약세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미국이라고 해서 유가 상승의 악영향을 마냥 받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유가 상승은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항공, 철도, 트럭 등 운수업체들의 수익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노스웨스트 등 미국의 10대 항공사들은 올 3·4분기에만도 유가 급등으로 1억1천6백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3·4분기에는 이 보다 더 많은 2억1천3백만 달러의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세계 최대 택배 업체인 페더럴 익스프레스社는 유가 폭등으로 올 상반기에 2천7백만 달러의 영업수익을 놓쳤으며 현 추세대로라면 연말까지는 1억5천만 달러의 추가비용을 부담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와 관련, S&P社의 자회사로 조사 전문기관인 DRI는 올 들어 유가가 2배 이상 오르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올해와 내년에 약 0.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운용에 큰 걸림돌로 작용

그러면 유가의 상승은 우리 경제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인구 세계 25위, 경제규모 세계 8위, 석유소비 세계 6위. 이것이 한국 에너지 소비의 현주소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 빈국 한국의 석유 소비량이 세계 상위권에 속해 있다는 것은 국가경쟁력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가의 상승은 하반기 우리 경제 운용에도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당초 올해 평균 유가를 배럴 당 14.5 달러로 잡아 무역수지 흑자목표 등을 산정했기 때문이다. 올 1·4분기 평균 유가가 11∼12 달러 수준에 머물러 안심했던 정부로써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 일 것이다.

만일 현재의 유가 상승 추세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내년 중 원유수입에 따른 무역수지 흑자 감소 폭 만도 무려 1백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에너지관리공단 조사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배럴 당 1달러 오르면 우리나라 수입은 8억7천만달러 늘어나고, 반대로 수출은 1억7천만달러가 줄어 연간 무역 흑자 폭이 10억4천만달러나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내유가는ℓ당 14원의 인상요인이 발생하며 수입 원자재가의 상승으로 0.1%의 소비자 물가 인상요인이 발생하는 등 우리 경제 전반에 주름살을 지게 한다.

유가 상승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산업은 석유 의존도가 높거나 유가 상승에 비탄력적 성향을 보이는 자동차, 항공, 기초화학 등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국외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높아 생산이 급속히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석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다할 뾰족한 방법이나 완충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점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IMF로 석유소비가 크게 줄고 국제 유가가 최저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유수입에 무려 1백42억 달러란 막대한 외화를 해외에 지불, 세계 6위의 석유 소비 국으로 기록됐다.

우리의 석유 등 에너지 사용량이 얼마나 과도한지는 가까운 이웃 일본과 단순 비교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경제 규모는 우리보다 10배나 큰데도 그들의 에너지 사용량은 우리의 3배에 불과하다. 또, 일본의 국민소득은 우리의 4배를 넘어 섰지만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4.03TOE(석유환산 t)로 한국의 3.83TOE와 별로 차이가 없다.

일본의 에너지 자급률이 우리의 16%수준을 기록, 우리의 3% 보다 5배 이상 높은데도 그들이 에너지를 우리보다 훨씬 아껴 쓰고 있는 점은 우리가 먼저 본받아야 한다.

우리가 에너지 빈국인데도 불구하고 에너지를 헤프게 쓰게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 정부가 산업경쟁력 및 수출경쟁력 확보, 물가안정 등의 공익적 목적을 위해 그동안 저에너지 가격제도와 多소비형 산업구조를 유지한데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국내 유가는 국제유가의 급등에 따라 최근 많이 올랐다고는 해도 아직도 생수가격과 별 차이가 없다.

또 시멘트나 철강, 석유화학 등과 같이 에너지 多사용 중화학 공업이 전체 산업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도 에너지 낭비의 주요 원인이 된다. 미국(19.3%), 일본(21.7%), 독일(23.8%) 등 선진국의 多소비 업종이 20%대 전후에 머무르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의 산업구조 구성에 문제가 많음을 알 수 있다.

범국민적 에너지 절약 시급

우리는 80년대 초 고유가 시대에 온 국민이 혼연일치가 돼 에너지 절약운동을 펼친 결과 에너지 소비 면에서 건전한 국가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제 요인과 에너지 가격의 급락 등의 영향으로 에너지 절약의식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에너지 소비증가율이 세계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 동안 저유가 시대에 일었던 “에너지 과소비를 염려하고 고유가에 대응하자”는 주장은 어느새 공허한 외침이 돼버린 형국이다.

이제 우리모두 에너지 위기를 슬기롭게 대체해 나가야 할 때이다.

고유가 시대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은 소비를 줄이는 일이다. 에너지를 10%만 줄여도 연간 무려 22억 달러의 외화를 아끼는 결과가 된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이 같은 액수는 전국민이 IMF 체제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 금 모으기 운동을 해서 모은 금액과 맞먹는 것이며 올 1·4분기 자동차 수출금액(20억 달러)을 웃도는 수준이기도 하다.

에너지 절약은 결코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의외로 쉽고 평범한 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출퇴근 때 한 사람 대신 두 사람이 승용차를 같이 탄다면 연간 2조7천억원을 절약할 수 있고 컴퓨터 등 사무 기기를 절전용으로 교환해 사용할 경우 3천5백9억원을 아낄 수 있다.

엘리베이터도 격층으로 운행하고 인위적 닫힘을 자제하면 전기요금을 절반으로 줄여 연간 1백64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 또한 컴퓨터나 복사기, TV, 오디오 등 가전제품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플러그를 뽑아 전력 소비를 줄이는 것도 생활의 지혜다.

에너지 소비를 절약하는 일은 지구환경 개선에도 큰 몫을 하게 된다. 에너지를 10%만 절약해도 이산화탄소(Co2) 1천3백50만톤, 질소산화물(Nox) 15만톤, 황산화물(Sox) 16만톤의 감축 효과를 가져온다는 연구결과도 나와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겨울철이 온다. 그러나 겨울철도 조그만 신경을 쓰면 큰 에너지 소비 없이 알뜰하게 보낼 수 있다. 먼저 겨울철 적정 실내 온도를 18∼20도 정도로 유지하는 일부터 실천에 옮겨 보자. 실내 온도를 너무 높이면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은 물론 바깥 온도와의 차이가 많아져 건강에도 좋지 않다.

창과 창틀 사이에는 방풍 테이프를 붙이면 열의 유출을 막을 수 있다. 또 보일러를 주기적으로 청소하면 난방비도 절감되고 고장도 예방되는 이중의 효과가 있다.

타국의 절약사례는 타산지석

지난 91년 중동에서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 유럽 각국들은 고유가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직감하고 에너지 소비 절약 운동에 적극 나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독일에서는 실내 온도 1도 더 낮추기 운동을, 스위스에서는 자동차가 신호대기 중 1분이 초과하면 엔진의 시동을 끄자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또 오스트리아에서는 사무실의 책상배열을 자연 채광이 많이 비치는 창가로 하는 운동을 벌였다.

정부는 에너지 소비 절약을 위해 에너지 가격 체제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 동안 낮은 가격에 공급되었던 산업용 전기요금의 현실화와 복잡한 에너지 세의 단순화, 그리고 에너지 절약시설 투자를 위한 저금리 자금 지원 등이 주요 내용이다.

에너지 가격체제가 정비되면 단기적으로는 수출 채산성과 무역수지 악화, 물가상승 등 부작용도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구조가 에너지 저소비형으로 바뀌고 소비구조도 건전해져 산업경쟁력은 오히려 더 강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에너지관리공단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조그만 신경을 쓰면 연간 10% 정도의 에너지는 쉽게 절약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이 생활화 될 때 국가경제는 보다 윤택해 질 것이다.

그러나 절약 방법이 과거의 무조건 적이고 맹목적인 절제방법을 떠나 합리적 이용과 제도적 절약으로 유도돼야 한다. 국민의식에서부터 정부정책, 산업구조 개편에 이르기까지 실천적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에너지 절약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사진캡션 : 유가상승은 우리 경제 운용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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