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군살빼기로 100년사 채비

두산그룹

페놀사건이후 구조조정 성과

위기를 기회로 흑자행진 진입

글 / 李漢城(이한성) 전문위원

남먼저 개혁이 성공사례

재벌개혁이냐? 총수개혁이냐? 요즘 재계는 대우사태에 이어 보광그룹 탈세사건, 한진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등 쉴새없는 회오리에 말려 그야말로 숨 돌릴 틈이 없다. 다음의 타켓은 어딘가에 관심이 쏠려 있다.

이러다간 국내 모든 재벌이 해체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높다. 너무 하는 것이 아니냐는 재계의 불만이나 어차피 해야할 과제라면 하루빨리 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도 난해한 점이 많다.

아무튼 재벌이 형성되기 시작한 70년대 이후 국내 재계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구조조정이니 개혁이니 하는 소용돌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고 있는 곳이 있다. 한때 해체위기설까지 나돌았던 두산그룹이다.

두산이 오늘날 느긋한 분위기에서 한걸음씩 내실을 다지면서 올 상반기 순익만 240억원을 낸데는 IMF사태 이전에 이미 위기를 맞아 스스로 과감한 군살빼기와 계열기업을 정리한 것이 큰 힘이 됐다. 또 불요불급한 부동산도 미련 없이 매각 처분했다.

그러기까지는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과 뼈를 깎아내는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또 어떻게 보면 낙동강 오염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페놀사건이 두산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서두르게 했던 계기가 됐다는 의견도 있다.

95년 과감한 살빼기 착수

두산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한 것은 지난 95년말. 창립 1백주년(96년 8월)을 앞두고 앞으로 1백년을 미리 준비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시기적으로 페놀사건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던 때라 주변에서는 “두산이 부도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냐”는 악성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모함성 소문에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1차적인 구조조정의 골격은 사업구조의 재편과 불요불급한 부동산 매각을 통한 군살빼기다.

사업구조 재편에는 과감한 경영진의 결단이 뒤따랐다. 재무구조면에서 우량기업으로 지목됐던 3M과 코닥, 네슬레 등의 지분을 과감하게 매각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경영진의 판단은 비록 우량기업이긴 하지만 경영권이 없는 지분은 장기적으로 그룹전체의 자금부담만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OB맥주 영등포공장 부지매각은 두산으로서는 여간한 아픔이 아니었다. 오늘의 두산으로 성장하기까지는 OB맥주 영등포공장이 모태였을 뿐 아니라 두산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어 97년에는 주력기업이었던 코카콜라의 영업권 양도로 1차적인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두산은 IMF사태가 오기 전부터 구조조정을 단행한 셈이다. 타 재벌들이 IMF사태를 감지하기 전부터 단행한 자구적인 구조조정이 적중한 것이다.

97년말 터져나온 IMF 경제환란은 또 한차례의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아픔과 진통을 극복한 두산으로서는 2단계 구조조정은 수월한 편이었다.

2차조정은 유사업종 통폐합

1차구조조정이 사업구조의 개편과 부동산매각이라면 98년부터 시작한 2차구조조정의 골격은 그룹내 유사업종의 대통합이다.

전사업군을 핵심·주력사업위주로 다시 개편하고 업종간 전문화를 추진,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인프라체제(Infra)를 구축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을지로 본사사옥 매각을 시작으로 부채상환용 토지 14건을 토지공사에 매각 처분해 1조5천억원이상의 현금유동성을 확보했다. 지난 3년간의 적자경영이 흑자경영으로 탈바꿈한 계기가 된 것이다.

또 유가공·자판기·상업용 냉장고·식용유 사업 등 수익성이 떨어지는 한계사업을 철수하고 보유주식을 매각, 탄탄한 현금유동성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밖에도 업종간 시너지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98년 9월 주류 유통 기전 출판사업을 해온 두산상사를 비롯, OB맥주·두산경월·두산백화·두산개발·두산동아·두산기계·두산전자·두산정보통신 등 9개사를 (주)두산으로 대통합했다. 또 두산유리와 두산제관을 묶어 두산포장(주)로 통합했던 것이다.

8억6천만달러 외자유치 성과

1·2차에 걸친 두산의 발빠른 구조조정은 IMF 구제금융으로 타재벌이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있는 가운데 외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한 성과로 나타났다.

외자유치 내용은 98년 캐나다 씨그램사로부터 9천만달러를 비롯 벨기에 인터브루사로부터 2억7천만달러 등 총 3억6천만달러에 97년 음료사업 양도와 96년 3M 등 3개사 지분매각으로 벌어들인 5억달러를 합하면 총 8억6천만달러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조7백32억원이다. 여기에 주요자산 매각으로 인한 3천9백66억원과 사업정리로 확보한 2백65억까지 합하면 모두 1조4천9백63억원의 현금유동력을 갖춘 것이다.

이러한 현금유동성 확보로 부채비율은 96년 6백88%에서 98년 3백 31.8%로 대폭 줄었고, 올해는 2백%로 안정권에 돌입하겠다는 것이 두산측의 각오다.

현 정부가 집권초기부터 강조한 5대 경제원칙이 있다. 경영의 투명성, 상호 지급 보증해소, 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 핵심부문설정과 중소기업 지원강화, 지배주주 및 경영진의 책임강화가 그것이다.

두산은 정부가 원하는 5대 경제원칙을 무리없이 실정에 맞게 해낸 것이다. 즉 대대적인 회사간 통합으로 모든 대형회사가 공개법인화 되어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했다.

뿐만 아니라 상호 지급보증의 해소 및 결합재무제표 작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졌으며 지배주주와 전문경영에 책임을 지우는 독립사업부문제를 도입,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한 것이 모범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한 기업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아까워도 ‘알짜’라야 팔린다

두산이 일찍부터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견디고 군살을 빼 구조조정의 모범기업으로 인정받는데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나한테 쓰레기면 남한테도 쓰레기”라는 원칙이다. 아무리 아까워도 알짜라야 팔린다는 말이다. IMF사태가 터지면서 대부분 재벌들이 구조조정이랍시고 내놓은 계열사는 재무구조가 부실하거나 경영부재로 할 수 없이 떠안고 있던 기업들이다. 부채를 떠안고 있는 기업을 누가 인수하겠으며 처분한다해도 자금융통에는 전혀 도움이 안된 것이 사실이다.

일부 기업의 경우는 돈을 얹어주어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업체가 한 둘이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두산의 기업정리는 정반대다.

코카콜라는 음료사업의 주력부분일 뿐 아니라 3M·코닥·네슬레 등은 그룹사 중에 가장 재무구조가 튼튼하고 이익도 짭잘한 계열사로 통했다. 지분매각 당시 원로 경영인들의 반발이 심했음은 물론이다. 또 주변에서는 이상한 시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산은 과감히 매각했다. 우량기업이긴 하지만 다국적기업으로 끝까지 안고 있어봐야 경영권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알찬 기업의 지분매각으로 유치한 외자는 1조7백32억원이다. 두산이 이상황에서 느긋한 자세로 구조조정에 임하게 된 자금유동성 확보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 부분이다. “나에게 쓰레기면 남에게도 쓰레기” “알짜라야 팔린다”는 원칙을 몸소 실현한 것이다.

주력 9개 기업을 1개사로 통합한 것도 경영진의 과감한 결단 없이는 어려웠던 부분이다.

또 거대한 작업의 구조조정이 무난히 끝날 수 있었던 주요이유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조직을 죽였다”는 것이다. 두산은 기업을 매각하거나 정리할 때 현재의 인력을 그대로 수용하는 조건을 내세웠다. 사람을 중요시하는 경영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위기는 지혜를 낳는다”는 것도 두산이 모범적인 구조조정의 기업으로 평가 받는데 큰 작용을 했다. 낙동강 페놀오염은 두산에서는 치명적인 위기였으나 이를 계기로 남보다 앞선 자율적인 군살빼기가 오늘의 탄탄한 두산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사진캡션 : 두산이 구조개혁의 모범사례로 지목된 것은 각 분야별 팀장들의 밤낮없는 토론과 회의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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