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호]

공직자여 분노하라

부패는 끊을 수 없는 사슬인가?

글 / 崔同燮 (최동섭 대한 적십자사 서울지사 회장·전 건설부 장관)

오늘, 우리 사회만의 문제일까

국민의 정부는 부패의 척결없이 국정개혁은 없다고 강도 높게 소리쳐 왔다.

5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도 대통령은 “후손에게 물려줄 사랑스러운 조국을 만들기 위하여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부패척결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역대 정부가 반복했던 운동이 아니라 근본이 해결 될 수 있는지 기대를 해 본다.

부패, 그리고 연결 고리로 이어지는 사치와 향락풍조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말기현상으로 인식되어 왔었다.

그것이 성행하면 그 나라는 쇠잔하고 끝에는 멸망하는 것으로 역사는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밝혀지고 있는 로마의 멸망에서부터 프랑스혁명의 전야에서, 가까운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의 멸망에서, 우리의 통일신라와 백제의 멸망과, 조선말기의 임오군란, 동학혁명에 이르기까지 그 왕조, 그 나라가 멸망하는 원인(遠因)을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부패지수 최하위급의 의미

우리의 부패수준은 최근 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한국갤럽”에서 여론 조사한 것에 의하면 응답자의 90%이상이 한국부패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표적 민간 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IT)가 작년에 발표한 것을 보면 85개국 중 우리가 43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97년 34위에서 뒷걸음치고 있는 셈이다. 일본과 대만의 20위권에 비교하면 같은 동양, 유교권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IMF이후 정부는 「국가경쟁력」을 운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고비용·저효율의 표상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나라의 대외신인도가 무너지고 건물교량이 무너지고 도심에 가스가 터지는 또 한번의 위험이 다가오지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

누구에게 돌을 던지나

오래 전부터 우리사회에는 부패상을 드러낸 ‘은어’나 ‘풍자’를 한 통속어가 유행되어 왔다.

해방 후 ‘사바사바’에서부터 시작해서 ‘벼락감투’, ‘빽’, ‘촌지’, ‘떡고물’, ‘삥땅’, ‘급행료’, ‘특혜’, ‘좋은 자리에 있을 때 봐 주시오’, ‘오리발’, ‘떡값’, ‘털면 먼지 안나나’, ‘재수 없어 걸렸어’, ‘송사리만 잡네’, ‘윗물이 맑아야지’, ‘로비 의혹’, ‘깃털과 몸통’, ‘성역없다’ 등 무성하게 난무해 왔다.

이 말들을 들여다보면 그때그때의 사회단면상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한결같이 이 용어들의 발원지가 상류사회, 지도층(정치권 등)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공직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을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유혹해 왔던 끈끈한 우리 전통사회관행과 풍토가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식)

그리고 셋째는 정치권력과 자금을 지탱하기 위하여 원·근거리에서 집요하게 눌러 작용해 온 일부 정치권역(政治圈域)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부패의 근절과 척결은 허약한 공무원 사회만 붙들고 말해보아야 한계를 드러내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힘없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인사치레에서 권력형으로 발전

부패가 강도 높게 발전해 나가는 단계를 살펴보자.

첫단계는 보은, 인사치레 단계라고 보고 싶다. 우리사회의 오래된 끈끈한 연줄에 따라 상부상조하고, 보은하면서 가볍게 「인사치레」를 닦는 단계일 것이다.

둘째 단계는 직무수행에 대한 대가를 받는 단계일 것이다. 비리를 눈감아주거나 인허가 민원처리를 해 주고 금품을 주고 통과하거나 용돈을 챙기는 수준이다. 소위 「급행료단계」이다.

셋째 단계는 직무(자리)를 생계수입원으로 삼는 단계다. 고정적으로 지역내 업소 등으로부터 수금해서 봉급을 채우고 기관운영비로도 챙기는 소위 「월급형단계」로 보고 싶다.

넷째 단계는 좋은 자리를 사서(매관매직) 한밑천 잡는 「치부단계」다. 관직을 사유화해서 투자한 만큼 돈을 챙기며 본전이상을 찾는 투자수익성 단계라고 할까? 이 단계에서는 부패가 고객과 협상하면서 이루어진다. 자리에 앉아 한탕주의가 이루어지는 단계라고 본다.

다섯째 단계는 연줄 「상납유착단계」다. 출세한자가 상층, 권력층의 비호아래 부정과 특혜를 베풀고 대가를 챙겨 상납해서 공존하는 단계다. 「권력형 비리단계」이다.

윗 단계로 차츰 올라가면서 부패의 고의성이 강해지고 부패규모도 커지며 힘있는 층의 비호가 따라붙는다. 윗단계에 가게 되면서 공직자사회의 개혁으로는 개혁은 불가능해진다. 강한 통치권자의 결단이 요구된다.

소위 최근 「부패 취약 6개분야」(건축, 건설, 세무, 경찰, 환경, 식품위생)는 3∼5단계에 동시에 걸쳐있는 부패 가능성이 가장 심한 분야 일 것이다.

정치개혁에서 시민의식까지

그 동안 부패사슬을 끊는 방도는 여러 가지 제시되고 실천해 왔다고 본다. 그런데도 만성 고질병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

처방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한마디로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와 결단」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땅에 부패는 틀림없이 적발되고 처벌이 형평에 맞는다는 국민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처럼 해낸 나라도 있다는 것을 깊이 느껴야 한다.

최고 통치권자가 거느리고 있는 「공직사회」부터 시작해서 고비용·저효율의 「정치권역」, 정·관·경 유착의 관행개혁과 혁파, 그리고 교육과 홍보를 통한 「시민의식」이 바뀌어져 사회전체의 분위기가 모두 함께 이루어지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천노의 주인공이 돼 보자

부패추방은 어찌되었든 간에 공직사회부터 스스로 시작되어야 한다.

스스로의 자존심과 비장한 각오, 용기를 가지고 나서야한다. 그렇지 않을 때 최근의 공직인사 개방(외부영입)은 더 넓어져서 「전통」공무원 사회는 무너질지도 모른다.

항간에 ‘부패집단’이라는 오명을 벗어나 ‘새로운’ 공직자상을 정립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을 참고 견디어 이 만큼 나라를 발전시켜 온 역군이 아닌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뛰었던 시절을 회상해 봄직도 하다. 김정현씨의 소설 「아버지」의 주인공인 “정수!”, 일에 묻혀 밤을 세워가면서도 성실하게 가족을 돌보면서 일생을 끝마치는 공무원상을 생각해 보자.

최근 중국 당고위층의 부패상을 파해친 소설 「천노(天怒 )」의 주인공 ‘진호’와 ‘초소옥(여수사관)’ 처럼 부패세력과 맞서 이겨낸 용기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거미줄 규제도 과감히 풀어 고객, 수요자가 자율과 창의력으로 마음껏 경쟁하도록 풀어주자.

자기분야의 신지식 전문인이 되어 정보화로 “인터넷 합중국”에 들어가야 한다.

IMF시대 생계비 미달의 처우를 참고 견디면 정부가 약속했으니 믿어보자.

국민의 신뢰와 사랑이, 애국심과 존경받는 공무원상이 더 시급하지 않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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