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호]

취미를 사업으로 발전

꽃관련 매출액 20억원

에델바이스 吳英燮(오영섭) 대표. 꽃꽂이 모임을 기업화

글 / 신정희 부장대우

꽃재료에서

배달서비스까지

오영섭(吳英燮)씨(62)는 꽃꽂이 선생에서 사업가로 변신, 성공한 여사장이다.

20여년전 취미로 시작한 꽃꽂이가 오늘날 꽃자재 제조 및 도매업 「에델바이스」로 발전, 연매출 20억원 이상의 회사를 이룬 것이다.

“40대 가정주부일 때 무료함을 달래려 취미로 시작한 꽃꽂이가 오늘날 제 사업의 모태가 되었어요. 과거에는 꽃꽂이라면 화병에 꽃을 꽂아 집안을 장식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꽃관련 사업 아이템이 엄청나게 많아요. 선물용 꽃배달 사업, 결혼식 등 각종 연회장 행사의 꽃장식, 옷에다는 브로치 등 액세서리 만들기까지 그 사업 범위가 방대합니다.”

오씨는 자신이 꽃꽂이 선생을 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느라 각종 재료들을 구하다보니 새로운 꽃 아이템들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즉 더 아름다운 꽃장식들을 만들려면 재료가 무궁무진해야 되는데 그 일을 누군가가 해야겠다고 생각해 직접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자신의 취미가 바로 사업 아이템이 되어버린 경우다.

때문에 오 사장은 꽃꽂이 모임체인 자영회(慈英會) 회장이란 직분을 발전시켜 10년전 꽃재료 관련 회사를 만들었다.

10년전 서울 남부터미널 옆 진로도매센터 지하 2층에 문을 연 「에델바이스」가 바로 그 회사다.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한국 조화업계 및 꽃꽂이계를 이끌고 있는 대형회사로 번창했다.

현재 취급 중인 꽃재료들은 자질구레한 소품까지 합쳐 2천여종에 이른다.

“처음에는 구멍가게 수준으로 작게 시작했어요. 꽃꽂이 선생들이 제게 와서 어떤 재료들을 구해달라고 하면 제나름대로 솜씨를 발휘해 공급해주곤 했지요. 회사 이름을 「에델바이스」라고 지은 이유도 그만큼 희귀하고 아름다운 꽃꽂이 재료들을 저희 회사에 오면 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였습니다.”

희귀한 소재개발로 성공

구멍가게 수준에서 오늘날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꽃꽂이 재료상으로 번창한데에는 오 사장의 안목과 솜씨가 잘 발휘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씨가 어떤 꽃꽂이 작품을 디자인해 전시해 두면 다른 사람들이 구경왔다가 그 재료들을 많이 구입해가곤 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구하기 어려운 재료들은 중국 등에서 주문 제작해 수입해오는 방법을 써서라도 새로운 아이템들을 늘 개발해 내고 있다.

「에델바이스」가 발전한데는 이 회사가 단순히 꽃꽂이 재료들을 제작, 판매하는데 그치지 않고 꽃꽂이 사범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 이유도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 사장이 꼭 회사를 지키고 있어 구매차 들렸던 꽃꽂이인들의 좋은 상담자와 친구가 돼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오 사장의 솜씨와 안목이 가미되면 훨씬 세련되고 비싼 꽃장식이 되므로 고객이 많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요 고객 중엔 일반 소비자들도 많지만 전국에 산재해 있는 꽃꽂이 소매상, 플라워 디자인샵의 사범들이 대부분이다.

“사업 초기에는 소재개발과 디자인 구상에 골머리를 썩히느라 마음고생이 심했지요. 그러나 그런 고생은 최근의 고생에 비하면 약과였어요.”

몇몇 고객들에게 거래 대금을 떼이는 정도의 사소한 금전 손실만 겪던 오 사장에게도 IMF 사태는 큰 시련이었다.

IMF를 전후해 회사가 위치한 (주)진로가 부도나는 바람에 덩달아 금전적인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재산평가상의 손해뿐만 아니라 (주)진로의 부도로 진로도매센터내에 이웃해 있던 다른 꽃재료상들이 모두 떠나버려 고객들마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웃 매장들이 속속 철수하는 바람에 꽃재료상 전체가 황폐화되자 저희 회사에도 타격을 주기 시작했어요. 매출이 떨어지고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거예요.”

그렇다고 한 곳에서 10년이상 사업을 한 사람이 꽃꽂이 업체가 많이 모여있는 다른 터미널상가 등으로 옮겨가기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오랜 단골들을 위해서라도 한 자리에서 지조를 지키자는 생각으로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IMF 손실 경영축소로 만회

순식간에 닥친 경제적인 어려움들을 오 사장은 그래도 지혜롭게 풀어나가고 있다.

우선 직원 몇 명 줄이는 정도로 급한 어려움을 해결한 후 일손이 달릴 때를 대비, 교직에서 정년퇴직한 남편과 회사원인 사위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꼼꼼하고 조직적인 남편에게 회사의 회계관계일을 부탁하고 회사원이던 사위에게는 무역관련 일을 맡아주도록 조치했다.

큰 어려움이 닥쳐도 가족들이 똘똘뭉쳐 한 사람이 몇 몫을 맡아줘서 손실을 되도록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번 일을 시작하면 어떤 보관이 있어도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어요. 또한 꽃꽂이 관련 사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이라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에델바이스」가 명실상부한 플라워 뱅크가 되게 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겁니다.”

오 사장은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할 정도로 부지런하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있어도 하루 살림살이를 직접 다 챙긴 후 출근하는 열성파다.

회사에 나와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회사일 챙기랴, 꽃꽂이 작품 개발하랴, 손님들 맞이하랴 눈코뜰새없이 바삐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부지런한 참새가 방앗간에 가야 먹을 것이 많다’는 속담이 있지 않나요. 오늘날까지 제가 가정과 사업을 병행할 수 있었던 것도 하루 24시간을 쪼개 쓰는 부지런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누구든 여성이 사업을 하려면 그만큼 부지런해야 가정과 사업에서 성취할 수 있다고 오 사장은 충고한다.

오 사장의 또 다른 소신 중 하나는 꽃꽂이 사업을 해서 번 돈은 꽃꽃이계 발전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새로운 소재 개발비가 목돈으로 많이 들어가는 대신 그 결실은 나중에 푼돈이 되어 들어올지라도 결코 조급해하는 법이 없다. 단 몇 사람의 수요자를 위해서라도 귀한 재료들을 공급해주면서 느끼는 희열이 금전적인 손실 이상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때문이란다.

사진캡션 : 오영섭 「에델바이스」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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