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호]

“나도 부드러운 남자”라는 무서운 개혁 전도사

공정위 田允喆(전윤철) 위원장

“개혁속도조절 불가”

세계경제엔 적과 동지 따로 없어

계좌추적권 연장, 과징금 한도 높인다

글 / 裵秉烋 대표 편집위원

99년의 최고 인기특강 열강

공정거래위원회 전윤철(田允喆) 위원장은 금년 내내 가장 바쁜이였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부터 중요인물로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기 시작한 후 지금껏 쉬는 날 없이 올해를 보냈다.

특히 재벌개혁이 가속화되면서 전 위원장의 역할은 높아지고 그의 목소리는 무게있는 경제기사로 다뤄졌다.

뿐만 아니라 재계가 그의 목소리 한마디 한마디에 긴장과 안도를 되풀이하곤 했다.

그래서 시중에선 가장 무서운 개혁전도사라고 불렀고 전혀 융통성 없는 공정거래라고 했다.

재벌개혁의 5대원칙에다 3대원칙이 추가되면서 전윤철 위원장의 역할은 더욱 높아졌다. 오너를 개혁한다는 말도 이때부터 나왔다.

5대원칙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5대그룹간 합의사항이었다. 이 원칙에 따라 개혁을 추진하다가 재벌개혁이 부진하다고 지적되어 대통령의 8·15경축사를 통해 발표된 것이 3대원칙이다.

바로 이 3대원칙이 전윤철 위원장이 대표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본업무에 속한다.

3대원칙이란 제2금융권의 경영지배구조 개선을 비롯하여 순환출자의 억제와 부당내부거래 차단 그리고 세금없는 부의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한 변칙상속과 증여의 방지 등이다.

이에 따라 금감위가 금융권을 통해 주도하던 재벌개혁이 공정위로 넘어갔다. 그래서 이헌재(李憲宰) 금감위 위원장으로부터 재벌개혁의 칼자루가 전윤철 위원장에게로 바뀌었다는 관측이다.

전 위원장이 각계로부터의 조찬이나 만찬초청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공정위의 정책방향이 충분히 알려지고 있는데도 굳이 전 위원장을 초청하려한 것이 무엇 때문일까.

재계에 가장 무섭게 비치는 전 위원장을 직접 만나 보고 듣고 싶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그래서 하반기 들어 최고의 인기 초청강사가 되고 그때마다 확고하고 신념에 찬 열강으로 명성을 높였다.

이럴 때 전 위윈장은 스스로를 변호하는 말로 “실은 나도 부드러운 남자”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다만 불공정거래가 없다면 공정위의 역할도 계좌추적도 필요없다고 말한다.

융통성 없는 소신과 확신

전윤철 위원장의 확신에 찬 개혁논리는 어디에도 막힘이 없다.

공정거래정책 수립과 집행을 위한 정책자료와 현실진단 자료를 너무나 충분히 머리 속에 축적시켜 놓았다는 인상이다.

재벌개혁에 대한 내외의 비판에 대응한 논리도 물론 비축해 놓았다.

미국압력에 의한 미국식 개혁은 단연코 아니다. 미국이 요구하지 않아도, IMF가 없어도 개혁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기가 왔을 뿐이다.

그렇다고 재벌해체나 오너퇴출도 아니다. 냉전시대 때 적용되었던 비교우위론이 절대우위시대로 바뀌었으니 제발로 개혁해야만 한다.

선단식 경영은 자금조달 구조가 취약했던 시절에 유효했지만 지금은 전문화된 다각화로 세계화해야만 한다.

오마이 겐이치와 같은 논평자가 마음대로 논평할 수는 있겠지만 국내 논객이나 학자들이 무책임하게 동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바야흐로 탈냉전이후 세계경제에는 적과 동지가 따로 없다. 단지 국익만 있을 뿐이다.

혈맹의 우방이라는 미국이 슈퍼 301조를 발동하고 반덤핑관세를 수시로 부과하는 시장개방 압력을 받은 경험이 있지 않는가.

전윤철 위원장이 이처럼 줄줄 외우듯 소신을 피력할 때 방청석은 쥐죽은 듯 조용하기 마련이다. 우렁찬 목소리에다 꼬장꼬장한 성품 그대로 시간이 없다고 강조할 뿐 개혁의 속도조절 등 부드러운 목소리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융통성 없는 소신과 확신에 의한 공정거래 개혁이라는 반응이 나오게 마련이다.

개혁에 대한 저항이 있을 수 있음을 전 위원장도 시인한다. 그렇지만 우리 앞에 다가온 21세기가 우리에게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개혁의 속도조절은 있을 수 없노라고 단언한다.

초청연사의 특강이 이처럼 화끈하고 열기가 높은 법이 별로 없다. 그래서 전 위원장의 특강은 융통성 없는 소신만을 피력하는데도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불공정 있으면 예외 없다

전 위원장이 눈치 볼 것없이 분명하게 정부방침을 밝히는 것이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기존 레일을 철거하고 고속철도 레일로 바꾸려는 것이 재벌개혁이다. 그러므로 불공정이 없어질 때까지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불공정이 없어지면 계좌추적도 있을 수 없고 과징금도 있을 필요가 없다. 지금은 공이 재벌에게로 넘어간 단계이기 때문에 재벌에게 물어볼 일이 많아졌을 뿐이다.

참으로 소신 넘치는 말이다. 왠만큼 소신이 있다해도 이렇게 당당하게 발언하기가 쉽지 않다는 소감이다.

젊은 경제관료 시절의 전윤철 사무관이나 이사관이나 지금의 장관급 위원장으로서나 달라진게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더욱 강인해지고 패기가 넘치는 모습이니 어디서 그만한 힘이 분출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분명 재벌은 전윤철 위원장을 가장 무섭게 여기는 눈치다. 그렇다고 재벌이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집단은 아니다.

그래서 행여 전 위원장 스스로도 내심으로는 재벌의 저항을 두렵게 여기지 않을까 궁금하다.

그는 “무서울게 전혀 없다.”고 말한다. 소신이 하늘을 찌르는 느낌이다.

전 위원장은 국회와 논쟁을 거듭한 끝에 계좌추적권으로 이해되는 금융거래자료 요청권을 확보했다. 감사원도 계좌추적권이 절실하다고 주장했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공정위의 계좌추척권이 무섭다고 소문이 났다. 부당내부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허용된 계좌추적권을 통해 2천여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계좌추적권은 부당내부거래를 조사하기 위한 목적에만 한정될뿐더러 2천1년까지 한시적으로 허용되어 있다.

전 위원장은 이 계좌추적권의 유효기간을 연장해야겠다고 주장한다. 대체로 민감하기 짝이 없는 계좌추적권의 연장여부를 언론에서 질문하면 어물어물 답변하는 것이 상식이다.

전 위원장의 답변은 그런 상식을 뛰어 넘는다.

연장할 필요가 있으면 연장해야 한다. 다만 재벌이 계좌추적 조사를 받을 필요가 없어지면 연장할 필요는 없어질 것이다.

전윤철 위원장은 바로 이런 사람이다.

또하나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법정 과징금 한도가 낮아 징벌효과가 적으니 이를 상향조정하겠다는 방침도 전 위원장 입에서 나왔다.

역시 민감하고 재계가 극히 부담스러워하는 대목이다. 과거로부터 오랜 관행과 현실을 일조일석에 부당내부거래로 규정하고 과징금 한도만 높이면 어쩌라는 말인가.

전 위원장은 분명히 올려야 한다고 거듭 확인한다. 부당내부거래를 근절시키지 못하면 재벌이 결국은 죽게 된다. 재벌이 죽도록 그냥 들 수 없으니 과징금이라도 올려 부당내부거래를 단념시켜야 나라경제를 살리게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더 이상 논쟁이 필요없다. 융통성이나 예외도 기대할 것이 없다. 전윤철 위원장의 무서운 공정거래개혁은 이렇게 강도와 속도를 더해갈 것이 분명하고도 남는 것이다.

1등만 사는 승자독점화 사회

공정위 위원장 직급이 장관급으로 격상된 후 내각에서의 발언권도 높아졌다.

종종 국무회의에서도 공정거래정책의 강화를 두고 국무위원간에 이견을 빚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개혁의 방향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겠지만 기업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대변하는 장관도 있을 수 있다.

이때 전윤철 위원장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강공으로 밀어붙여 소신을 관철시켰노라고 한다.

금융거래자료 요청권을 신설하는 공정거래법 개정때는 국회와도 언쟁을 벌였다는 소문이다.

경제각료가 국회의원들 앞에 겁도 없이 자기주장만 고집할 수 있을까 싶지만 본인은 그렇게 해 냈다고 자랑한다.

전 위원장의 뱃장과 소신이 어디서 나왔을까.

그는 수산청장을 끝으로 한때는 공직에서 밀려난 서러움을 겪은적이 있었다. 이때 왜 내가 밀려나야 하느냐고 곳곳 요로에다 항변할 수 있었던 용기가 그에게는 있었다.

그리고 장관급 공정위 위원장으로 발탁되자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공정거래 정책을 밀고가기 위한 이론무장을 열심히 했다.

어떤 좌석에서 누가 항변을 해도 즉각 당당하게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언변이 여기서 나왔을 것이다.

전 위원장은 1등이 모든 것을 소유하는 승자독점화 사회(Winner Take-All Society)가 확산되고 있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1등과 2등은 능력면에서 별차이가 없지만 모든 것은 1등이 다 가지고 2등은 가질 것이 없어지는 사회가 전개되고 있다는 말이다.

미국의 코넬대 프랑크 교수와 듀크대 필립 쿡 교수가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If you are not No1, you are zero.”

이말에서 전 위원장은 한국재벌이 1등에 도전하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공정거래정책을 통해 재벌이 모두 1등이 될 수 있다면 물론 최선이다. 반면에 2등은 다 퇴출돼야 한다면 큰일이 아닐까 걱정이다.

물론 이렇게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승자가 지배하고 독점하는 사회로 이행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를 강조하기 위해 인용했을 것이다.

전 위원장은 최근 경쟁이 꽃피는 시장경제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이 책이 전윤철의 무서운 공정거래 개혁의 원본이다.

여기에서 전 위원장은 모래성에 비유되는 성장의 신화를 찬미하는 논조를 비판하고 정부주도식 개발전략의 빛과 그림자를 그려 놓았다.

특히 압축성장의 부작용을 골다공증에 비유하기도 했다. 지나친 압축성장이 경제의 곳곳에 숭숭 구멍을 남겨 놓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대기업 구조조정에 문제 많다

전 위원장은 그동안 기업구조개혁의 제도적 틀이 마련되고 대기업들이 열심히 구조조정에 참여한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

주요그룹이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하고 알짜기업도 해외에 매각하는 성의를 보였다.

계열사간 채무보증도 대폭 감소되고 부당내부거래도 많이 줄어 들었다.

무엇보다도 대기업이 공정거래 전담조직을 신설 또는 확대하여 경쟁정책 분야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렇지만 총론적인 인사치례 발언이다.

전 위원장은 기업구조조정의 성과는 있었지만 문제 투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재벌구조의 핵심문제가 아직도 해소되지 않아 우리경제의 취약성이 개선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위기관리 차원에서 빅딜과 부실 계열사 정리가 있었지만 재벌체제의 본질을 극복하지 못했다.

재벌개혁 5대원칙하에 많은 제도를 뜯어 고쳤는데도 실제 재벌들은 자부상 개혁으로 눈가림하려는 자세가 보인다.

가령 자산재평가나 계열사간 출자 등의 방법으로 평균 부채비율을 낮추고 있지만 실질적인 재무구조의 개선효과는 불확실하다.

그래서 새로운 강도를 높인 제도도입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시장경제질서가 확립될 수 있는 여건조성이 부족하다고 보기에 출자총액 제한제를 다시 도입하고 부당내부거래 행위를 더욱 엄격히 조사하고 대규모 기업집단 계열사간 신규 채무보증을 전면금지 시켰다는 말이다.

출자총액 제한제는 98년초에 폐지했었는데 재벌개혁을 위해 다시 부활 시키기로 한 것이다.

전 위원장은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했더니 순환출자방식으로 동일인이 극히 낮은 지분으로 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는 황제적 경영을 지속하니 두고 볼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출자총액한도를 순자산액의 25%로 제한하여 2천1년 4월부터 시행하되 1년간은 초과분을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구조조정에는 지장을 주지 않도록 폭넓은 예외규정을 둘터이니 너무 부담스럽게 여기지 말라고 요청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설립된 신설 통합법인에 대한 출자나 기존 사업부문을 물적분할 방식으로 기업을 분할. 신설되는 법인에 출자하는 경우 한도적용을 배제시켜 준다는 뜻이다.

또한 부당내부거래 방지를 위해 사후 적발뿐 아니라 사전 예방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법 개정도 추진중이라고 밝힌다.

구체적으로 10대그룹의 경우 일정규모 이상의 자금거래나 유가증권 거래는 이사회가 의결해야만 할뿐더러 이를 반드시 공시토록 제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과징금 한도는 매출액의 2%한도를 5%까지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무섭지만 말고 기업을 살리도록

대규모 기업집단 계열사간 상호채무보증은 특정계열사의 부실이 기업집단 전체의 동반부실을 초래하기 때문에 빨리 해소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98년 4월부터는 신규 채무보증이 전면금지되고 기존 채무보증은 2천년 3월말까지 완전 해소토록 관련법이 개정되었다.

이같은 정부방침에 따라 26조원의 채무보증이 6조4천억원까지 축소되었다.

그렇지만 공정위는 금감위 등과 협조를 통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보증 등의 완전 해소를 추진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공정위가 개혁적 차원에서 3대원칙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은 경제 전반에 시장경제질서를 확산시키려는 것이 목적이다.

독과점 시장구조를 개선하고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며 재벌뿐만 아니라 공공사업자의 불공정행위도 반드시 바로잡겠다는 확고한 방침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정위가 앞으로 있을 WTO 경쟁라운드에도 대비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듣고 보면 재계에서 보는 공정위와 공정위가 보는 재계가 약간씩 다르게 느껴진다는 소감이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무섭게만 느껴지던 전윤철 위원장의 “사실은 부드러운 남자”라는 자기해명도 얼마큼 이해되기도 한다.

재벌개혁을 후퇴시킬 수 없는 시점에 이르러 공정위 정책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려 노력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겠느냐고 여겨지기도 한다.

원칙과 신념으로 개혁의 사명감을 앞 세우는 공정위에 융통성을 기대하기보다 적응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다만 재벌이 망하는 것을 두고 볼수 없어 공정위가 책임있는 세계화에 동참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만큼 그 결과도 경쟁력 강화로 나타나야 마땅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가령 5대재벌의 개혁이 공정위 잣대에 맞춰 가시적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고 해도 6대이하 그룹도 동일한 잣대를 적용할 수 있겠느냐고 판단해 봐야 한다.

또한 시간이 없다는 말은 동의하지만 시간만을 강조하다가 졸속이나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경우 그 손실이 얼마이겠는가도 문제이다.

그래서 공정위 정책은 무서워도 좋지만 대기업을 위축시키거나 기업의욕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될 것이다.

사진캡션 : 21C 경영인 클럽 초청 특별 조찬회에서 강연중인 전윤철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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