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호]

호텔같은 화장실 아시나요

道公(도공), 휴게소 화장실에 경영 마인드 도입

鄭崇烈(정숭렬) 사장, 섬기는 경영 선포

그림과 음악이 있는 휴식공간

“요즘 고속도로 화장실에 가 보셨습니까?”

최근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깜짝 놀란다. 그 모습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워 화장실이 아니라 호텔에 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간혹 사람들이 화장실을 잘못 찾은 줄 알고 발길을 돌이킨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화장실이 확실히 달라지긴 달라졌나 보다.

우선 화장실 입구에 들어서면 감미로운 음악의 선율 속에 은은한 재스민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수백리 길을 달려 피로해진 몸이 금새 활력을 되찾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좀 더 안으로 들어서면 중세 서양의 벽화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연출된다. 온 벽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조화를 이루며 뒤덮여 있고 각종 그림과 사진, 명언구(名言句)들이 경쟁을 하듯 내방객(?)들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또한 바닥은 현란한 컬러 타일로 깔려있어 마치 아라비안 카펫을 깔아 놓은 느낌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늑한 조명과 적당한 조도에 반사된 인조석 벽면과 스카이 천장은 외로운 나그네의 넋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여자 화장실로 가보자.

이곳에는 먼저 입식 화장대와 기저귀 갈이대, 그리고 베이비 시터 등이 눈에 띤다. 갓난아이를 동반한 여자 승객들을 위한 배려가 깊게 느껴진다. 조형미가 가미된 입구 가리개와 벽면 선반도 한눈에 들어온다.

노약자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경사로, 자동문, 도움 벨, 안내 표지판 등…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더구나 화장실 청결도 및 시설상태를 최고 수준으로 유지키 위해 관리책임자 등을 실명으로 근무케 한다니 화장실 수준이 극치에 달해 있다는 생각이다. 서구처럼 깨끗한 화장실 문화에 익숙치 않은 우리 국민에게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가히 ‘화장실 혁명’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섬기는 경영’ 선포가 기폭제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이처럼 호텔 화장실처럼 멋들어지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초. 도로공사 최초의 공채 사장으로 부임한 정숭렬(鄭崇烈) 사장이 ‘섬기는 경영’을 선포하면서부터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공공부분에 대한 서비스 개선 요구가 증대하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경영 마인드’가 도입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일종의 위기의식이 작용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로공사는 ‘고속도로 휴게소 확 달라집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고객서비스 개선에 나서기 시작했다.

먼저 휴게소 매점의 공산품 및 주유소의 유류 가격을 대폭 인하했다. 또 고객 이벤트 행사를 개최하고 각종 시설의 개·보수를 단행, 종래의 다소 깨끗지 못한 휴게소 이미지를 깨끗이 씻어 냈다.

그러나 보다 많은 고객(승객)들이 고속도로 휴게소를 찾게 하기 위해서는 휴게소의 얼굴격인 화장실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화장실 가꾸기에 적극 나서게 된 것이다. 이 결과 전국 고속도로 여기 저기서 ‘우수 화장실’이 등장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경부선 상행선에 있는 경북 경산 휴게소. 이 휴게소는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10월15일 실시한 전국 공중화장실 선발대회 ‘베스트 5, 워스트 5’에서 최우수 화장실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또 영동선 하행선에 있는 경기도 이천 휴게소는 2천2년 월드컵축구대회 문화시민운동 중앙협의회와 조선일보사가 공동 주최한 ‘아름다운 화장실’ 경연대회에서 역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현풍(상행선), 언양(하행선), 평창(하행선)휴게소 등도 2등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잘 가꿔진 휴게소들이다.

도로공사의 이러한 화장실 문화 개선사업은 고속도로 이용자들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도로공사가 지난 7월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9%가 ‘화장실 문화가 많이 개선되었다’ 는 반응을 나타냈다.

화장실 문화에 대한 설문조사 실시 자체가 다소 생소하고, 조사주체가 당사자인 도로공사여서 객관성 등에서 다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90% 가까운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을 보면 이제 화장실이 단순히 ‘변’을 보는 곳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잠시 ‘화장’도 하고 여가도 즐기는 문화의 공간으로 변해 있음을 실감케 한다.

공중화장실은 문화의 척도

흔히들 공중화장실 시설이나 관리상태는 그 나라 국민들의 의식이나 혹은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나라가 선진국인지 후진국인지 구분하려면 우선 공중화장실부터 가보라고 한다. 선진국일수록 잘 가꿔지고 청결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반해 후진국은 정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국민의 생활수준이 낮았던 70년대까지만 해도 재래식 공중화장실이 주류를 이루면서 화장실 수준은 ‘불결’ 바로 그것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려면 악취 때문에 우선 코부터 막아야했던 기억들을 우리는 아스라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생활수준은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 있을 정도로 향상돼 있다. 먹고살기 어려웠을 때는 한가롭게 화장실 문화니 뭐니 하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하니 화장실 문화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

더구나 모든 2천2년에는 세계인들의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축구대회가 우리 나라에서 열린다. 현재 각 정부기관이나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화장실 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화장실 가꾸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도 이 운동에 동참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산업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고속도로는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지난 60년대 말 경부고속도로가 첫 개통된 것을 필두로 잇따라 완공돼 현재 전국의 총 연장은 21개 노선 2226.7Km에 이르고 있다. 이는 경부고속도로를 5번 달리는 것과 비슷한 거리다. 고속도로 건설 30년만에 선진국 수준에 이른 것이다. 이 거미줄 같은 고속도로에는 현재 하루 평균 2백47만대의 각종 차량들이 갖가지 사연을 싣고 쉴새없이 달리고 있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때로는 차에 기름이 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피로하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배가 고프기도 하고 급한 용무(?)를 처리해야할 불가피한 상황도 벌어진다. 이때 생각 나는 곳이 바로 휴게소이다.

우리 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는 경북고속도로 개통과 더불어 첫 문을 연 추풍령 휴게소를 효시로 해서 70년대 37개소, 80년대 14개소, 90년대 45개가 신설되는 등 99년 말 현재 전국에 총 96개소가 설치돼 있다.

지속적 범국민 캠페인 펼 계획

고속도로 휴게소는 90년대 이전까지는 도로공사의 자회사인 시설공단이 운영해 왔으나 93년 공기업 민영화 및 기능조정방안에 따라 시설공단이 해체되면서 운영방식이 직영에서 임대방식으로 전환됐다.

현재는 일반 경쟁입찰에 의해 낙찰된 민간운영자들에 운영권이 임대돼 운영되고 있다. 운영방식이 처음 임대로 바뀐 95년 당시만 해도 고속도로휴게소는 민간업체들에게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다. 높은 수익을 올리다 보니 휴게소 입찰에는 자연히 수많은 업체들이 참여해 경쟁률이 무려 90대 1을 기록하는 등 과잉 경쟁을 가져왔다. 이 결과 부실 경영 초래는 불가항력으로 나타났다.

이는 곧 서비스 질 저하를 가져와 이용객들이 발길을 돌리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서비스 수준이 민영화되기 이전 보다 훨씬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경영난으로 운영권을 포기한 휴게소만도 전국에 걸쳐 12개소에 달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어느 곳보다도 공공성이 강해 이윤추구에 앞서 서비스 중심으로 운영돼야 하는데 본전을 뽑기 위해 이윤추구에 급급하다 보니 고객들로부터 외면 당하는 신세가 됐다.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경영마인드 도입을 추진, 화장실 문화 개선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도로공사는 앞으로도 음악이 흐르고 그림과 꽃이 있으며 향기가 넘쳐나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화장실을 계속 꾸미는 한편 선진국 수준의 화장실문화 정착을 위한 범 국민적 캠페인도 벌여 나갈 계획이다.

이제 휴게소나 공중 화장실은 나만이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하는 문화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이 캠페인의 기본 정신이다. 도로공사는 화장실 문화가 새롭게 정착될 때 선진국으로의 진입은 더욱 앞당겨 질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사진캡션 : 고속도로 휴게소에 설치된 화장실 내부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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