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1973년 오일쇼크 회고

위기를 기회로 극복

중화학 정책선언 후 원유공급 감량

박대통령 특명으로 긴급원유 확보

글/ 김광모 (대통령 비서실비서관, 중화학공업기획단)

1973년 10월6일,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제4차 중동전쟁이 벌어져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중화학공업 정책선언 직후 청천벽력 같은 원유파동으로 국운이 흔들리는 중차대한 위기를 맞았다.

비우호국 원유공급 감량통보

제4차 중동전에서 패배한 아랍권은 석유무기화 정책으로 아랍권 석유수출기구인 OAPEC이 서방국 오일메이저들의 시설을 국유화하고 석유가격을 대폭 인상했으며 미국과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국가를 ‘비우호국’(Exempt Country)으로 규정, 감산과 감량을 통보했다. 우리나라도 이 ‘비우호국’으로 분류됐다.

당시 국내 정유사는 대한석유공사(걸프 오일), 호남정유(칼택스), 경인에너지(유니온 오일) 등 3사로서 1일 정제능력이 43만5천 바렐이었다. 문제는 OAPEC의 시설 국유화 조치로 우리나라에 원유를 공급하던 오일메이저들은 원유 공급권이 박탈됐다.2011-08-06_102247.jpg

이에 따라 유공 합작사인 걸프는 원유공급량을 30% 감축한다고 통보해 왔고 호남정유 파트너인 칼택스는 10%, 경인에너지 합작선인 유니온 오일은 20% 감축한다고 통보해 왔다. 원유가격도 평균 20% 인상했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이 오원철 경제 2수석에게 오일쇼크 대책방안을 마련토록 특명했다. 오수석은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걸프오일을 비롯하여 칼택스와 유니온오일을 차례로 방문하여 박대통령의 간곡한 친서를 전달하고 공급량을 늘려 주도록 교섭했다. 결과는 강력한 에너지절약운동과 병행하면 6개월가량 버틸 수 있는 증량공급을 약속 받았다.

원유확보를 위한 대통령의 특명

오수석의 출장보고서는 귀국 비행기 안에서 초안을 잡았다가 도쿄에 잠시 내려 정서한 후 김포공항에 도착 하자마자 청와대로 직행했다. 보고를 받은 박대통령이 “큰일을 했구먼...”이라고 격려했다.

교섭결과는 당초 감량통보에 비해 걸프오일 3만7천 바렐, 칼택스 2만 바렐, 유니온 2천 바렐, 도합 5만9천 바렐의 증량이었다. 박대통령이 서명한 원유교섭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합작선을 설득시킨 절박한 내용이 잘 기록되어 있다.

① 원유공급량을 20%나 삭감하면 석유 배급제를 실시해야 하나 준비에만 3개월이 소요될뿐더러 민심도 나빠진다.

② 평균 22%를 삭감하겠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므로 철회해야 한다.

③ 한국의 석유수요는 주로 산업용이며 중유가 55%를 점유하고 휘발유는 7% 수준에 불과하므로 석유는 사치용이 아닌 산업용이다.

④ 석유는 공산군과 대치하고 있는 60만 대군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⑤ 아무런 자원도 없이 열심히 노력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하려는 한국인들을 이해해 달라.

⑥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인에게 성의 있는 보답을 기대한다.

이같은 호소가 받아들여져 가까스로 석유대란은 모면했지만 원유증량 공급은 잠정적인 해결방안이었다. 메이저 오일 측에서도 서방세계에만 기대지 말고 산유국들과 직접 교섭할 것을 권장했다. 이에 따라 원유확보 출장보고서는 ① 에너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② 아랍 산유국과의 외교적 교섭 ③ 3개 합작사에 대한 감사의 서한 발송 등을 건의했다.

범정부 차원의 중동진출 방안

석유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으로 청와대, 상공부, 외무부, 국방부 등이 중동진출방안을 제시했다.

① 국가 간 정상적 외교루트 개척. ② 특수분야(국방부) : 보유장비 정비지원. 태권도 시범단 파견. 군복, 군화 등 군수품 지원. 탄약, 소화기 제작기술 지원. ③ 토목 건설업 : 항만, 도로, 송수관로, 주택 등. ④ 공장건설 : 정유공장, 시멘트, 타이어, 수송기계 등. ⑤ 통상 증대. ⑥ 기술협력 및 전문가 파견 등.

이같은 중동진출 방안에 따라 1974년말 최규하 특보가 중동을 방문하고 각료급으로 이낙선 상공과 장예준 상공이 잇달아 중동을 방문했다. 경제분야는 민간이 주동이 돼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전경련, 대한상의, 무역협회 등의 주관으로 한·사우디 경제협력위가 설치되고 방한 중인 사우디 왕실 실력가인 나제르 기획상이 창립식에 참석했다.

사우디는 한국을 ‘우호국’으로 지정하여 원유 공급량을 늘려 주었으나 가격문제는 산유국들과의 보조 때문에 인하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중동진출로 원유 확보하고 기술축적

건설 분야는 삼환기업을 필두로 현대, 대림, 대우, 신원개발 등이 중동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삼환은 횃불공사로 유명해진 도로공사, 현대는 난공사인 주베일 항만공사, 신원개발은 코탐사 확장공사 등으로 명성을 얻었다. 사우디 국왕이 야간에도 횃불공사로 도로를 건설하는 한국 건설 회사들을 칭찬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건설 분야의 진출이 활발해 지면서 70년대 말부터는 원유 구입비 보다 건설수주액이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현대, 대림, 대우, 신한기공 등이 공장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함으로써 중동진출은 원유도 확보하고 토목, 건축, 엔지니어링 분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은 잘 훈련된 기술자와 기능공 등이라고 생각된다.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회의에 참석하여 중동진출의 성공요인 첫 번째가 기술 인력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해외건설촉진법을 제정하고 법인세를 감면해 주고 해외자금 조달의 지급을 보증함으로써 해외건설을 적극 지원했다.

‘시범공조’ 통해 중동파견 기능공 양성

이 무렵 중화학공업 추진을 위한 기술인력 양성정책이 중동진출을 지원한 측면도 중요하다. 기술 인력은 원칙적으로 학교교육으로 양성하되 기술자는 대학교육, 기능사는 공업고교의 개혁으로 확보토록 개편했다.

고등학교를 ①특수공고 ②시범공고 ③특성화공고 ④일반 공고로 구분하여 수요에 따라 기능사를 양성토록 했다. 방위산업체는 특수공고, 중동진출 기능공은 시범공고에서 양성, 공급했다.

중동진출 기능공 양성이 시급했기 때문에 ‘시범공고’라는 이름으로 각도 1개교씩, 11개교를 지정, 졸업 시 2급 기능사자격을 취득하여 중동으로 파견토록 했다.

이렇게 하여 예고 없던 오일쇼크 충격으로부터 중동진출로 토목, 건축 분야 등 해외건선을 촉진했으니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다는 성공모델로 평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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