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호]

기아차 되살아 나다

순익 1,500억원… 창사이래 최고

鄭夢九(정몽구)회장 기아인 끌어안기로 안정회복

글 / 李石中 (이석중 내외경제신문 산업부차장)

현대인수 1년만에 흑자전환

경영난에 허덕이며 부도에 빠졌던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지 1년만에 정상화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지난 98년 12월 1일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지 1년만의 성과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기아차의 지난해 경영성과는 뛰어났다.

지난해 판매목표를 초과한 83만 7천여대 판매와 8조 7천억원의 총 매출액(이상 잠정 및 추정치)은 모두 회사 창립 이후 최고의 실적이다. 물론 순이익도 창사 이래 최대인 1천 5백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 97년말 기준 450%에 달했던 부채비율도 지난해말 현재 172% 수준으로 낮춰지는 등 재무구조도 튼실해졌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아는 올해에도 내수 45만대, 수출 65만대 등 110만대 판매와 11조 8천억원의 매출액을 목표로 정했다. 순이익도 99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4천 6배억원을 책정해 놓고 있다.

이같은 외형적인 성적표는 현대차가 인수한 기아차의 지난 1년간 경영이 성공적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기아차가 새 경영진을 만난지 1년만에 이만큼의 성과를 일궈낸 것은 한국 경제의 회복을 알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적 성과 이면에는 경영실패에 따른 책임 탓도 있었지만 기아가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13개에 달했던 계열사도 지금은 기아차만 남았다. 기아자동차·아시아자동차·기아자동차판매·아시아자동차판매·대전판매 등 5개사는 지난해 6월 30일자로 기아차로 합병됐다.

또 기아 중공업.기아전자.기아모텍.기아인터트레이드 등 4개사는 구조조정전문회사에 매각됐고 기아정기는 한국AB시스템을 흡수해 일반에 팔렸다. 기아포드할부금융은 현대캐피탈에, 기아경제연구소는 현대경제연구소에 각각 합병됨으로써 간판을 내렸다.

계열사 수가 준 것뿐 아니라 기아맨들도 크게 줄었다. 지난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직전 4만3천83명에 달했던 인력은 2년만에 1만3천여명이 줄어 지금은 3만명을 밑돌고 있다.

이중에는 자연퇴직자 1만명과 3천여명의 명예퇴직자가 포함돼 있다. 이는 현대차가 적정인력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명예퇴직을 실시한 데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연봉제를 실시하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현대 출신인 기아의 한 임원은 “당시 기아차는 정상적인 회사의 모습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는 “기아차 인수초기만 해도 기아의 장래는 불투명했고 현대가 무리수를 두었다는 비판적 시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면서 이같은 자구노력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두 회사 기업문화의 융합

기아차를 인수한 현대가 구조조정과 함께 가장 먼저 시작한 일도 김선홍 전 회장의 색깔지우기였다.

이는 현대차 경영진들이나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이 두 회사의 문화와 직원들간 의식이 너무 달라 융화가 잘 되겠느냐는 우려가 팽배했던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상의하달식 의사결정 과정과 이를 저돌적으로 추진하는 현대차의 기업문화와 하의상달까지는 아니지만 협의를 통해 결정하는 기아차의 문화는 크게 다른 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이 양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미 대부분의 임원들이 자리를 떠난 뒤였고 정몽구(鄭夢九) 회장과 몽규(夢奎, 현 현대산업개발 회장) 부회장, 김수중 당시 현대차 국내영업본부장 겸 서비스본부장 등을 포함한 65명의 인수단은 회사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수 있는 보직들을 도맡았다.

기아차 직원치고 김선홍 전 회장 사람 아닌 사람은 없겠지만 특히 김 전회장 하에서 핵심보직을 받았던 간부들은 이 과정에서 대체로 옷을 벗었거나 지방으로 전출됐다.

대신 법정관리인 자격인 김수중 사장과 함께 인수단 멤버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윤국진 인사·총무담당 부사장, 정학진 부사장(재경본부장), 이용도 부사장(자재본부장), 김도영 부사장(국내영업본부장), 박성도 부사장(해외영업본부장), 차정식 부사장(AS본부장) 등과 김만유 승용판촉 상무, 제갈걸 이사(기획실장) 등이 그들이다.

또한 소하리공장은 이동용 부사장이, 화성공장(이전의 아산만공장)은 김무일 부사장이, 광주공장은 전천수 전무가 각각 공장장을 맡는 등 생산라인 책임자도 바뀌었다.

이들 현대출신 임원들은 기아차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매달렸고 현대문화 심기에도 주력했다. 대신 기아 직원들도 열과 성을 다해 도왔다. 또 상습분규사업장으로 인식돼 왔던 기아차 근로자들도 노동계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회사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처음으로 무분규를 선언하며 경영진을 지원했다.

기아차의 한 직원은 “현대차에 인수되면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권한을 부여하되 결과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몽구 회장과 김수중 사장 등 경영진들의 기아직원 끌어안기 노력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시너지효과에 휴가도 반납

생산현장을 직접 찾는 정 회장의 발길은 잦았고 그때마다 정 회장은 품질을 강조했으며 기아차의 품질도 날이 다르게 개선됐다는 것이 기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양사간 시너지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경영진의 노력과 함께 기아차가 지난해 이룩한 성공에는 대내외적인 호재들도 뒤따랐다.

먼저 고유가시대를 예감이나 했듯이 내수시장에 내놓은 LPG(액화석유가스) 차량들이 날개돋친 듯 팔렸다. 카니발, 카스타, 카렌스 등 RV(레저용차)차량인 이른바 ‘RV 3총사’는 없어서 못파는 상황이었다. 계약이 수개월씩 밀리게 되자 휴일이나 여름휴가도 반납하면서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수출도 연초 목표를 크게 상회하게 되자 일부 생산라인의 증설도 추진하는 등 공장가동률도 높아졌다. 여느 정상회사와 다를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기아차의 99년 성과에 대해 아직 정상화의 길은 멀었다는 주장도 있다.

4조 8천억원의 부채탕감과 1조원대의 현대 주금 납입액, 대규모 출자전환 등으로 금융비용 부담이 크게 줄었고 연산 50만∼60만대 수준에서도 수익성을 낼 수 있도록 대폭적인 인력감축이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 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부품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인수한 이후 납품 가격이 평균 10% 수준 깎였고 납품단가 인하가 아니었다면 지난해에도 기아는 적자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법인세 5900억 추징공방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신창이와 다름없던 기아차가 불과 1년새 깊었던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완전한 정상을 되찾기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우선 국세청장과의 법인세 공방이 가장 큰 변수다. 국세청은 최근 기아자동차가 제기한 법인세 심사청구를 기각했고 기아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추징세액이 나오면 행정소송을 제기하거나 국세심판소에 심판청구를 할 방침이다.

국세청은 기아가 지난해 국제입찰 과정에서 탕감받은 부채 4천 8백억 원을 특별이익으로 간주, 5천 9백억 원의 법인세를 추징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데 반해 기아는 분식결산으로 세무상 비용이 누락된 것으로 밝혀진 이상 세금을 매겨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는 결국 정부가 산업정책 차원에서 해결점을 찾는 수밖에 없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기아의 법정관리 해지나 기아의 완전한 정상화를 얘기하기는 아직 이르다. 또 최근 대우자동차 매각에 GM을 비롯해 포드와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이른바 세계 자동차업계의 ‘빅3’가 모두 참가할 태세여서 국내 자동차업계의 지각변동까지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3월 또는 상반기 중에 현대자동차가 그룹에서 완전히 계열분리될 경우 기아차도 큰 변화를 겪을 것은 불문가지다.

현대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양사가 합병될 것이라는 점을 굳이 부인하지 않고 있다. 합병을 위한 전초작업도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부품의 공동 사용 및 플랫폼 공유 등은 물론 연구개발부문, 조달부문, AS부문의 통합이 검토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기아의 완전 정상화가 이뤄지더라도 더 이상 기아의 아이덴티티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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