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호]

자동차가 20C 최고상품

삼성경제硏, 20C 한국10대상품 선정

지난 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경제는 '끼니'를 걱정해야할 정도로 궁핍했다. 해마다 춘삼월이면 보리고개를 겪으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이 생의 최대 과제였다.

그러나 70년대부터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우리 생활수준은 서서히 행상되기 시작했다. 산업기반을 갖추고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게 된 것이 의식주문제를 해결하고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라면, 나일론, 연탄, 아파트 등이 의식주의 부족함을 채워주었고 자동차, 전화, TV, 컴퓨터 등의 등장은 우리 생활을 훨씬 편리하게 만들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새천년을 맞아 '20세기 한국의 10대 상품'을 발표했다. 10대 상품가운데는 자동차가 수위를 차지했고, 라면과 텔레비젼 순으로 그뒤를 이었다.

* 자동차 - 75년 고유모델 포니 개발

1903년 고종황제에 의해 어전용으로 포드T형을 처음 도입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차를 개조하거나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수준에 그쳤다.

현대자동차가 1975년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한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자동차 대수는 1985년 100만대를 넘어섰고, 97년에는 드디어 1,000만대를 돌파했다.

인구 1,000당 보유대수는 1980년 10대에서 97년에는 80대, 98년에는 2,230대로 급증했다. 자동차는 1997년 기준으로 제조업 생산의 10.2%, 수출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교통혼잡과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경제, 사회적 코스트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의 승용차 주행속도는 1989년 시간 당 18.7km에서 98영에는 17.7km로 감소했고, 교통사고 사망자는 불행하게도 1998년 현재 인구 10만명 당 19.3명으로 OECD국가중 포르투갈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 라면 - 63년 삼양식품이 첫선

라면은 배고픔을 해소하고 우리의 입맛을 바꾼 제2의 주식이다. 1963년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삼양라면이 국내 첫선을 보였다. 삼양식품 사장이 60년대초 노동자들이 5원씩 하던 꿀꿀이죽을 사먹으려고 줄을 서있는 것을 보고 라면 생산에 착안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판매된지 5년만의 일이다.

식량부족 시대에 라면은 싼 값으로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어 국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라면 회사는 라면을 선전하기 위해 역전이나 극장 앞 등에서 무료 시식회를 개최했으며 '면'이라는 이름때문에 옷감이나 실로 오해하기도 했다.

초기에 일본식 라면은 느끼하여 입맛에 맞지 않았으나 맵고 짠맛을 내는 스프를 첨가하고 나서 판매가 급증했다.

* 텔레비젼 - CTV는 74년 국산화

1956년 미국 RCA와 한국내 배급사가 합작으로 설립한 방송국(HLKZ)이 세계에서 15번째로 흑백TV방송를 시작했다. 당시 국내 TV 보급대수는 250여대에 불과했고 수상기 한 대 값은 37만5천원환(1인당 소득 7만환)이었다.

컬러TV방영은 소비 및 개인간 위화감 조성을 우려해 연기되었다가 1980년 12월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TV방송 시행국 중 컬러TV방송을 하지 않던 나라는 알바니아와 네팔, 한국 등 3개국 뿐이었다. 한국은 이미 1974년부터 컬러TV를 생산, 생산대국으로 부상해 있던 상황이어서 컬러 TV방송을 하지 않고 있던 것은 아니러니였다.

1995년 케이블TV가 도입되었고, 현재 인터넷방송이 확산되고 있으며 2001년 위성방송과 디지털방송이 시작될 예정이다.

* 아파트 - 57년 종암라파트가 최초

아파트는 1957년 도입된 이후 40여년만에 주택형태로 정착하고 있다. 최초의 아파트는 1957년 건립된 서울 종암아파트로 수세실 화장실이 설치됐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형 아파트로는 62년 대한주택공사의 마포아파트로 이전에 마포형무소에서 농장으로 사용하던 자리에 건립됐다.

70년대 중반부터 반포, 잠실, 도고, 화곡 등지에서 대규모 주공, 시영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거문화가 아파트 중심문화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1998년 아파트 가구수는 전체주택의 42.7%로 단독주택(42.4%)을 제치고 주된 주거형태로 정착됐다. 1967년 11층의 고층아파트가 등장한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15층 이하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86년 25층 초고층 아파트를 계기로 분당, 일산 등에 본격 도입됐다.

아파트의 등장 및 대량공급 주택 공급으로 주택보급률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으며 핵가족화와 주거생활의 서구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 전화 - 1902년 서울,인천간 첫 개통

1876년 궁내부에 처음 설치되었고, 1902년 서울-인천간 시외전화와 서울 시내전화가 개통되면서 일반인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1902년 초기 가입자는 총 24명으로 이중 조선인은 2명에 불과했다.

80년대 국산 전자 교환기가 개발되면서 전화 적체가 해소되는 통신적 혁명이 일어났다. 경제개발과 더불어 전화수요가 급증, 80년대 초까지 전화적체 현상이 계속됐다. 70년대말 적체전화는 60만대로 신청후 4~5년을 기다리는 것이 예사였다.

전자교환식 자동전화와 국산 전자교환기가 TDX-1 개통으로 전국 전화자동화가 완성되었고 87년 전화 적체가 완전 해소됐다. 99년 11월 현재 전국의 유선전화는 2,126만명이 가입돼 있다

* 컴퓨터 - 67년 통계국에 IBM1401

1967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이 IBM1401을 도입한 이후 업무용 대형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단순 계산 처리와 교육 연구용으로 이용되다가 1971년 대학 예비고사를 전산처리하면서 일반인의 관심이 집중되시 시작했다.

1977년경 미국 유학생을 중심으로 PC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81년 삼보컴퓨터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1993년 이후 매년 100만대가 보급되었고 현재는 700만대가 설치돼 있다.

PC와 통신망을 기반으로 하여 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본격확산되기 시작했다

1994년 13만 8천명에 불과했던 인터넷 이용자는 99년 11월 현재 700만명에 이르고 있다.

컴퓨터는 처음 업무 지원을 위해 도입되었으나 이제는 상거래, 금융결제, 주식시장, 커뮤니케이션등의 핵심기기로 발전했다. 컴퓨터는 문서작성, 회계, 공정관리, 상거래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 소주 - 진로, 1924년 신식 발매

고려말 원나라·로부터 전래된 소주가 입제시대 선식소주로 발전됐다. 우리 니라에서 처음 등장한 소주는 진로소주
1924년 처음 등장한 진로 소주는 60년대 삼학파 치열한 갱쟁을 벌인 끝에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진로는 품질로 소주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삼학에 공걱적 마케팅으로 도전, 삼학이 70년대초 세금포탈로 몰락하면서 10년 ‘소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식량부족으로 양곡관리법이 시행되어 모든 소주가 증류식에서 희석식으로 바뀌었으며 이후 소주의 대량시대가 개막됐다. 김치와 힘께 한국적인 상품으로서 현재 미국, 일본 등 20여개극에 수출되고 있으며 98년 일본 소주시장에서 국산 브랜드가 점유울 1위를 차지했다.

* 연탄 -50년대 가정용주연료

1952년 연탄이 기정용 연료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해방이후 장작이 주연료였으나 연료부족과 남벌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연탄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당시 연탄구멍이 19개였기 때문에 ‘구공탄’으로 불리였다. 60년대 이후는 연탄이 도시 주택의 주연료로 정직하기 시작했다.

정부는쌀과 함께 연탄의 안정적 공급에 정잭의 우선순위를 두었기 때문이다. 60년대 잇따른 연탄파동으로 에너지 정책이 석유증시로 바뀌었으나 70년대 두차례 석유파동으로 연탄수요가 다시 증가했다.
80년대 들어서는 유가안정 및 소득향상으로 연탄수요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파트 등장 등으로 값은 싸지만 번거롭고 위험한 연탄대신 기름을 많이 쓰게 됐다. 한때 편리한 생휠의 상징이였던 연탄은 과거 기억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1986년만 해도 전체가구의 79%가 연탄을 사용했으나 1999년 7월 현재에는 서울아파트 가구중 l.8%만 연탄을 사용하고 있다.

* 나일론 - 수입상삼경물산01 첫 소개

나일론은 1938년 미국 듀풍사에 의해 개발됐다. 우리 나라에는 1953년 수입상인 삼경물산을 통해 처음 소개됐다.
1963년 힌국나일론(현 코오롱)이 미국 컴텍스와 기술제휴하여 나일론 원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나이론은 도입 초기에 우수한 특성과 싼가격 때문에 학생복지,작업복지 등 폭넓은 수요를 창출했다. 60년대 후반은 나일론 양말의 시대로 불릴 정도로 양말업계가 활기를 띠었다. 70년대 중반이후 폴리에스터가 대량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나일론은 산엽용,폴리에스터는 의류용으로 그 용도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천연섬유에 가까운 특성을 지닌 폴리에스터의 가공기술이 향상되면서 그러한 경향이 더옥심화됐다.


* 신용카드 - 외환은행 78년 처음도입


1978년 외환은행이 은행계 카드를 처음 도입하면서 신용카드시대가 개막됐다. 전산망및 가맹점 미비,신용인식 부족 등으로 활성화에는 한계가 있다. 90년대 들어 국내 신용카드 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신용카드 발매수는 91년 1 .200만매에서 99년 6월 4,230만매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신용카드 이용금액은 13조원에서 48조원으로, 가맹점수는 77만개에서 489만개로 늘어났다. 1인당 카드수는 0.28매에서 0.9매로 증가했다.
정부는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해 99년부터 소득공제를 실시하고,신용카드 영수증복권제를 2001년 1 월부터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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