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경제가 만드는 21세기 첫 해

21 세기 첫 해를 경제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거창한 이념도 장미빛 정치 비전도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 지구촌의 유권자들은 경제를 망치는 정권에 철퇴를 내렸다. 대만, 멕시코, 러시아에서 예상을 뒤엎고 정권이 바뀐 것은 순전히 경제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반도에서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도 햇볕정책이 아니라 북한의 경제 사정 때문이었다.

21 세기 서두를 장식한 변혁의 뒤에는 경제불안과 부패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란이 도사리고 있다. 경제는 갈수록 경쟁이 심해져서 평범한 처방으로는 생존을 기약할 수 없다. 변화하지 않으면 굶어 죽게 돼 있다. 이 점에서는 유권자나 정치인이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탠포드 대학의 사회학자 알렉스 잉켈리스 교수는 “생동하는 자본주의, 과학적 국가 경영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21세기의 승리자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멕시코 국민들은 7월 2일 71년 동안 집권해 온 제도개혁당(PRI)을 버렸다. 금융과 언론을 모두 장악한 이 당이 돈으로 표를 사려했지만 허사였다.PRI는 경제 현안에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다. 부실 기업을 헐값에 외국에 팔아 실업사태를 막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코카콜라 지사장을 지낸 폭스를 선택했다.

하버드 대학의 제프리 프리든 교수는 21 세기의 새로운 조류가 멕시코에서 실증되었다고 말했다. 경제가 복잡다단한 고등 수학처럼 되면서 과거의 논리로 국민을 설득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여러 측면에서 3월 18일의 대만 대선은 멕시코 사태의 전주곡이었다.50년 동안 철옹성처럼 권력을 행사해 온 국민당(KMT)이 그처럼 무너질 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KMT의 재산은 30억달러로 추산되었다. 도대체 정당이 왜 그렇게 많은 돈을 가졌는가. 대만 유권자들은 그 돈이 모두 부패에서 나온 것으로 봤다. 그래서 기어코 부패를 뿌리뽑겠다고 다짐하는 타이베이 시장 출신 천수이볜(陳水扁)에게 표를 몰아 주었다.

컴퓨터와 마이크로 칩 산업에서 세계적 강국으로 떠오른 대만으로서는 국제 경제의 흐름을 잘 타야 한다. 이 관점에서 부패한 국민당에 더 이상 국가 경영을 맡길 수 없다고 대만 국민은 판단했다.

러시아는 국토 면적에서는 세계 최대 그리고 핵무기 보유량에서는 세계 2위국이다. 이 나라에도 변화가 왔다. 술을 너무 좋아하고 그 때문인지 건강까지 나빠서 자주 공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고질적 부패와 비효율과 그에 따른 경제 파행을 잡지 못했다. 러시아 국민이 보기에 그에게 국가 경영의 의사가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옐친 자신이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권력을 푸틴에게 넘겨 준 사실이다. 새 해 전야에 대통령 직 권한 행사를 전 KGB 스파이에게 넘겨준 옐친의 결정은 세계를 경악시켰다. 푸틴은 3월 26일 선거에서 무난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과정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편집위원 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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