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풍월 1주년을 고백한다]

길었던 한 해, 번민의 나날

무식하게 용감했던 창간

경제풍월 1주년의 고백은 자소(自笑)다.

세상 모르고, 자신을 모르면서 할 수 있다고 속단했으니 옆에서 보는 이들이 웃었을 것이다. 스스로 되돌아 봐도 어설프고 천진난만했기에 웃음꺼리다.

실로 무식했기에 무모하게 덤빈 창간이었다.

내심으론 경제기자 33년 경력을 생각했었다. “설마 월간지 하나쯤 끌어 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혼자 묻고 답변했었다. 그러나 정신 없이 지낸 1년을 보내고 새삼 “신문기자는 무슨 재주로 할 수 있었던가” 자신이 의심스럽다.

아마도 신문기자는 몸 사리지 않고 뛰어다닌 열정만으로 겨우 정년을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잡지언론의 창간과 운영은 신문기자와는 판이했다. 원고지 몇 장 쓸 수 있는 솜씨로 덜컹 창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 일이나 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방식이건 수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잡지언론이었다.

그러니 1년 내내 주윗분들이 실망하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필경 헤어나지 못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라는 핀잔도 들려왔다.

솔직히 “저 사람 만류하면 거꾸로 갈 사람 아니냐”는 빈정거림들 때문에 죽기살기로 버텼다.

결국 나이 들어서도 제 성미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팔팔한 오기만 살아 실족했던 꼴이었다.

그러니 하루 스물네시간 1년 열두달 잠시도 벗어 던질 수 없는 올가미에 갇힌 신세로 어느덧 1주년을 맞은 기분이다.

깔닥고개 6개월을 넘기니…

길었던 1년도 순식간이었다. 고뇌와 번민의 나날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언제 한해를 넘길 수 있었는지는 진실로 기억하지 못한다.

이제사 생각하니 천운이다. 많은 분들이 도와준 운수가 아니었다면 무슨 재주로 1주년을 기록할 수 있었겠는가.

잡지언론 수명은 6개월이 깔닥고개라고 들었다.

숨 고를 시각 없이 헐떡거리느라 언제쯤 고개를 넘겼는지 또렷하지 않다. 산정(山頂)에 올라서기까지는 도중에 휴식도 하지 않고 산행하는 버릇처럼 기어올랐기에 말이다.

실제로 짐을 내리고 쉴 수 있는 틈이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생기는 온갖 잡무(雜務)를 몸으로 떼울 사람이 제일 문제였다.

겨우 하루 근무하고 말없이 떠난 분이 도대체 몇 명이었을까. 무명의 신생 잡지에서 썩을 수 없다며 돌아간 그분들 얼굴 대하기가 쑥스럽다.

근무환경이나 월급액수를 공개할 처지가 못되니 함께 고생하자고 권유한 것이 무례였다는 반성이다.

6개월을 넘겼지만 믿는 이가 별로 없었다.

“누가 발행하는 거요.” “몇부나 찍는 거요.”

관심을 보이는 이의 말이 “무슨 돈으로 만드는 거요.” “기업체 돈 뜯어 만드는 모양이지.”라고 무심코 내뱉는다. 얼마 안되는 퇴직금으로 창간했노라고 해명해봐야 얼마큼 믿어줄까.

그사이 장사꾼이 다 되었다는 핀잔도 들었다.

염치없이 손 벌리고 다니는 꼴을 지켜본 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장사꾼이라는 말이 듣기 좋다. 장사꾼이 천직(賤職)으로 불리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장사꾼들 덕분에 이만큼 성장한 것을 잘 알고 있는 분들이 하는 말일 테니까.

그렇지만 아직 장사꾼이 덜 된 것이 탈이라고 고백한다. 전혀 장사가 안되고 있으니 말이다.

장사가 잘되어 돈 생기면 하고 싶은 욕심은 많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신세다.

정부가 영세사업 내막을 아나

장사를 시작하고 보니 세상에 제일 편하고 멋대로 놀 수 있는 팔자가 정부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나 장사꾼에게는 하늘처럼 군림한다.

이익이 나건 밑지건 세금부터 미리 내라는 것이 정부다. 구멍가게에서 누가 세무정리하고 무슨 돈으로 세금부터 낼 수 있단 말인가.

정부가 뭘 도와줬다고 매출액의 10%나 뜯어 가는지 분통 터진다.

그러나 야단 맞기 전에 갖다 바쳐야 한다기에 제일 먼저 납부했었다.

속으로는 나중에 세무서에서 무슨 잔소리하면 “당신네들이 와서 직접 해보라”고 따져 볼 작정이다.

무슨 고용보험이니 산재보험이니 하는 제도가 그토록 뻔뻔스러운지 처음 알았다.

자기네가 영세사업장을 뭘 돌봐 준다고 협박인지 꼴이 보기 싫어진다. 의무화되었는데 자진신고 않으면 벌과금 물린다고 호통이던데 그게 무슨 짓인가.

사업주가 죽는지 사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관청나리들처럼 의무화 나팔만 불어대고 있으니 덩달아 정부가 욕을 먹을 수밖에 도리가 있겠는가.

생활급도 안 되는 영세사업장 근로자들이 낸 세금이나 보험료로 비싼 월급에 보너스까지 받는 이들이 전화로 오라 가라 하는 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으려니 세상 살맛이 없어진다.

개혁 잘했다고 선전하는 정부가 복지혜택 준다고 마구 의무화한 것 잘했노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정부가 영세사업장 형편이 어떻고 무슨 수로 연명하고 있는지 내막이나 알고 있을까. 공공기관이나 공익기관이 정부 흉내내고 있는 행태는 알고 있을까.

풍월의 길은 충정의 길

경제풍월이 인기잡지가 못되고 대중성 있는 매체라고 자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국익을 먼저 생각하고 공익을 실천하겠다는 충정은 신앙처럼 자부한다. 독자들의 냉정한 평가도 그러했다. 발행부수가 늘고 영업규모가 조금씩 늘고 있는 사실도 자랑하고 싶다.

경제풍월 논객들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와 존경에 가슴 뿌듯하다. “편집은 값싸게 보이지만 논객들의 글은 값지다”는 한마디면 족하다.

기고해 주신 석학들이나 논평해 주신 전현직 언론인들의 평판이 경제풍월의 주력상품이기 때문이다. 비록 포장과 색채는 촌스럽다는 혹평을 들어도 알맹이만 좋으면 된다는 것이 바로 경제풍월의 정신이다.

언론산업 발전에 헌신했던 유명 사장님들의 일화나 철학을 신봉하는 입장이다.

‘뛰면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사장님이 계셨고 ‘신문 한 부를 생명처럼’ 중히 여긴 사장님도 계셨다.

“고객이 상전이면 우리는 하인”이라고 말씀하신 분, “독자의 말은 하느님이나 부처님 말씀”이라는 사장님도 계셨다.

경제풍월도 이런 정신이 기본이다.

그리고 정신만은 잊지말고 변치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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