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호]

[영화 ‘간디’를 보니]

영원한 인도의 영혼

비폭력, 무저항의 독립 영웅


지난 1월30일 밤 11시 EBS- TV에서 방영한 영국영화 ‘간디’는 러닝타임이 무려 187분이나 되는 ‘긴 영화’였지만 끝까지 ‘옷깃을 여미는 심정’으로 봤다. 그만큼 영화는 진중한 톤으로 간디가 살던 세상을 찬찬히 화면에 담아냈다. 영국인 감독 리처드 아텐버로우 경(卿)은‘탁월한 지도자’로서의 간디의 생애를 과장 없이 은은하면서도 경건하게 보여주었다.

1923년생 감독이 감독으로선 ‘원숙기’에 접어든 60세 때 만든 이 영화는 1983년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촬영상 등 8개 부문을 휩쓸었다. 상을 탈 만한 영화다.

인도인의 영원한 영혼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의 ‘마하트마’라는 칭호를 시인 타고르로부터 헌정받은 간디는 인도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지도자’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30만 군중이 운집한 간디의 장례식으로 시작한 이 대서사시 같은 3시간짜리 영화를 보면서 진정한 지도자의 조건, 진정한 지도자의 길에 대해 새삼 생각해 봤다.

마침 1월 30일은 간디가 암살당한 62주기여서 영화가 주는 의미가 더 깊었다. 이런 영화는 지금 ‘세종시’문제로 ‘표계산’이나 하면서도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우겨대는 정치인들이 보면 ‘교훈’이 될 좋은 영화 같다. 그렇게도 검소하고 청빈한 그래서 ‘반라(半裸)의 지도자’로 불리는 간디에게서 진정한 지도자의 삶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청년 간디는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딴 뒤 189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던 중 엄연히 1등 칸 표를 구입했지만 승무원으로부터 ‘검둥이’라는 모욕적 언사와 함께 3등 칸으로 옮겨가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를 거부하자 간디는 짐과 함께 열차 밖으로 내동댕이쳐진다. 그날이 간디에겐 수백년 영국의 식민치하에서 고생고생하며 살아온 조국의 동포들을 위해 자신이 해야만 할 일을 떠맡게 된 ‘운명의 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영국 관리들의 온갖 못된 ‘폭정’에 신음하던 농사꾼들이 다 갈라터진 손으로 간디의 손을 잡고 울며 하소연하는 장면에선 지금 살기 힘들어 난리라는 우리 대한민국 농촌과 농민들 그리고 가난한 영세민들이 오버랩 되었다.

‘반라(半裸)의 지도자’ 간디는 맨발에 ‘옷’이라고도 할 수 없는 천 쪼가리들을 대충 몸에 걸치고 대중 앞에서 ‘화려한 영국 옷’을 입지 말자고 호소한다. 간디는 평생을 그렇게 ‘반라’로 살아가며 지독한 ‘청빈’을 자신의 ‘가보’로 여기는 삶을 살았기에 국민들이 진정으로 존경했던 것 같다. 깡마른 몸에 형형한 눈빛, 국민들 몰래 호의호식한다는 ‘이상한 정치인’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그야말로 ‘성인(聖人)’반열의 지도자 같다.

간디는 ‘힘없는 국민’과 같은 수준에서 살아가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기에 초기에는 아내로부터 ‘저항’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아내 역시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삶으로 힘겨운 내조의 길을 걷다가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다. 비폭력˙무저항주의로 전 세계에 ‘지도자 간디’의 이미지를 확고히 심은 그는 손수 ‘물레질’노동을 하며 아랫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인다. 자신을 부축해주려는 아랫사람들에게도 “나는 혼자 걸을 수 있다. 너희들은 그 시간에 물레를 돌리라”는 말로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한다.

하토야마, 7개 사회악으로 인용

얼마 전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는 국회연설에서 간디가 생전에 제시했던 ‘7개 사회악’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이 사회악들이 척결된 사회를 일본사회의 미래상으로 제시했다.

1.원칙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 2.노동없는 부 (Wealth without Work) 3. 양심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 4. 인격없는 교육 (Knowledge without Character) 5. 도덕성없는 상업 (Commerce without Morality) 6. 인간성없는 과학 (Science without Humanity) 7. 희생없는 종교 (Worship without Sacrifice)


새로울 건 하나 없는 내용들이지만 찬찬히 읽어볼수록 가슴에 깊이 와 닿는 말들이다. 하나하나가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결핍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아마 일본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러니 일본 총리라는 사람이 이런 간디의 철학을 ‘일본의 좌우명’으로 삼고 싶어했을 것이다.

하기야 ‘대재벌의 후손’인 하토야마는 ‘정치자금’을 모친으로부터 받은 것이 문제가 돼 한동안 일본사회가 시끄러웠다. 결국 그 역시 ‘노동 없는 부’를 이어받아 정치하려다가 ‘걸린 셈’인 것이다. 이에 대해 하토야마는 국민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비단 하토야마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정치인, 종교인, 상인, 교육자, 과학자, 예술인 등등 모든 분야의 ‘기득권 세력’들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가슴에 새기고 반성해야할 ‘덕목’이 바로 이 ‘7개 사회악’인 것 같다.

간디가 56세 때인 1925년 ‘청년 인도’라는 신문에 ‘사회를 병들게 하는 7가지 사회악’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던 글로 지금은 뉴델리의 간디 추모공원에 이를 새겨놓은 기념비가 서 있다.

영화에서는 이렇게 깡마른 반라의 간디가 3억5천(1948년 당시) 인도 국민의 지도자로서 겪는 고뇌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간디 역을 맡은 인도계 영국배우 벤 킹슬리는 간디와 놀라울 정도로 꼭 닮아 보인다. 단순히 ‘분장 기술’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배우 자신이 ‘존경하는 간디’를 체화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간디가 돌아왔다’ 열광

영화가 나올 당시 인도 국민들도 ‘간디가 돌아왔다’고 열광했다고 한다. 실제 영화 중간 부분쯤에 ‘간디의 생전 모습’이 나오는데 누가 배우고 누가 간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영화에는 한창 보기 좋았을 때인 30대 중반의 켄디스 버겐이 ‘라이프’잡지의 사진 기자로 등장해 ‘다정한 표정 연기’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유능한 영국인 정부보다 무능한 인도인 정부’를 원한다는 슬로건 아래 철저한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결국 인도의 독립을 얻어냈지만 갈수록 태산이라고 인도는 또 ‘종교분쟁’으로 편할 날이 없는 힘없고 가난한 신생 독립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와중에 힌두교 광신도 청년은 마치 요즘 ‘빈 라덴과 그 아이들’처럼 광적인 원리주의에 빠진 채, 오직 조국 인도를 위해 헌신적인 인생을 살아온 79세인 ‘깡마른 반라’의 老지도자에게 총을 겨누고 만다.

영화를 보고나니 대한민국에도 제발 저런 진정한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무릇 21세기형 지도자란 더 이상 누구의 ‘후광’을 업고 정치판에 낙하산타고 나타나는 ‘세습 스타일’은 아니어야 한다. 그런 건 20세기의 유물이라고 본다.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지도자는 자신의 힘으로 일가를 이루어야한다. ‘맑은 정신’으로 가진 것 없는 ‘빈손’이면서도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하고, 언제나 약자 편으로 정직하고 겸손한 그런 ‘서민 형’ 지도자여야 한다. 간디처럼 청빈과 검약 그리고 총명함을 제일 덕목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거기에 진정으로 자신을 내던져 아무 것도 갖지 않은 ‘맨몸’으로 오로지 국민을 위해 살아나가겠다는 충정어린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영화 한편 보고나니 갑자기 애국지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만큼 간디의 ‘진정성’이 대한민국의 평범한 소시민에게도 통했다는 얘기다.

글/ 朴美靜 편집위원(박미정 전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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