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僞證(위증)천국, 코리안 법정

글 / 裵今子(배금자 해인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증인신문은 재판의 하이라이트

재판에서 증거를 유리하게 대는 쪽이 이긴다는 것은 상식이다. 증거는 서류도 있고, 전문가가 보고하는 감정이라는 것도 있고, 공공기관 등에 조회하는 내용도 있다.

그런데 증인이라는 사람이 직접 법정에 나가 묻는 말에 대해 아는 대로 대답한다는 증인신문이 재판에서 아마 가장 많이 사용되고, 실제 재판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가장 중요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증인신문은 재판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좋을 것이다.

재판 구경하러 온 사람이 기대하는 볼거리도 이 증인신문일 것이다. 미국의 법정주제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 증인신문과정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한국의 법정을 구경한 적이 있는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재미없다’ ‘실망했다’라고 말한다. 변호사끼리 무슨 서류만 오고가고, 증인신문이란 이미 짜맞추기 식으로 적어간 서면을 죽 읽고 나오는 것뿐이다.

그리고 반대신문이 있어도 이미 훈련받아 짜맞추어 나온 증인의 급소를 공격하기란 쉽지 않다. 문제는 이와 같은 증인신문방식이 위증천국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위증은 司法正義를 파괴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억울한 사람들이 양산되고, 재판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 사법불신이 깊어지면 그 나라는 결코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다.

신문사항 미리 보내 위증준비?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증인신문신청을 하면서 증인신문사항을 모두 세밀하게 적은 신청서를 미리 내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미리 교부하고 증인을 소환할 때 이 신문사항을 함께 보내는 제도가 시행되어 왔다. 이러한 제도는 증인 나올 사람에게 미리 물어볼 사항을 다 알려주어, ‘위증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올 수 있게 만들어주는 꼴이다.

민사소송법에는 증인신문을 신청할 때 ‘신문사항의 요지’만 적어서 제출하도록 되어 있고, 이 신문사항도 법정에 증인이 출석할 때 교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운영되지 않고 신문사항 전체를, 소환장과 함께 미리 보내고 있다.

실무가 이렇게 왜곡된 것은 법정에서 증인신문한 내용이 그대로 녹취나 속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은 서울의 일부 법정에서 녹취와 속기가 행해지고 있지만 종전에는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몇 년 전에 필자가 일본의 법정에 견학 갔을 때 일본에서는 증인신문요지만 적어내고, 변호사는 법정에서 구두로 신문사항을 상세하게 묻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은 미리 만반의 위증준비를 하기가 어렵다.

미국의 법정에서는 증인으로 불려나가는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질문이 날아올지 미리 알고 나가지 않는다. 대충 어떤 사실에 대해 자신이 증인으로 채택된 것인 정도만 알고 나간다. 그러므로 미국의 법정에서는 배심원과 판사 앞에서 생생하게 증인이 경험한 사실을 물어보고, 모순된 점을 추궁할 수 있다. 그만큼 실체적 진실이 법정에서 밝혀지는 것이 가능한 제도인 셈이다.

우리와 같이 증인신청을 한 측에서 증인을 미리 만나 상의할 수 있는 경우는 위증문제가 생긴다. 증인신문사항은 미리 증인과 상의하여 만든 경우가 많다. 법정에서 하는 일은 미리 제출한 증인신문사항을 그대로 읽는 것 밖에 없다.

위증죄 처벌 두려워 않는다

민사소송법은 증인은 서류에 의하여 진술하지 못하고 구술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이런 잘못된 관행이 계속되어 왔다. 이는 증인신문을 녹취하거나 속기가 행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편법이다.

몇 년 전부터 일부 법원에서는 증인신문방식을 더욱 왜곡시킨 편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인증서’에 의한 증인신문 방식이다. 증인신청하는 측에서 증인과 미리 만나 어차피 미리 짜맞추어 낸 신문사항을 제출하고 법정에 와서 다시 서면을 그대로 읽는 방식을 사용할 바엔, 재판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미리 증인신문사항에 증인이 답변한 내용을 ‘공증’한 ‘인증서’를 제출하게 하고, 법정에선 그 증인에 대해 상대방이 반대신문만 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으로 재판시간이야 훨씬 단축되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증인신문방식은 증인으로 나온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재판 당사자들도 몹시 못마땅해 한다. 위증이 판치다보니 법원에서 ‘어차피 위증할 바에야’라고 해서 이런 방식을 채택하였는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이건 너무 왜곡된 재판운영이 아닐 수 없다.

증언의 진실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방법이 증언하기 전에 ‘위증죄’를 경고하고, 선서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증인들은 위증죄로 처벌받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제로 증인이 위증해도 실제 위증죄로 처벌까지 받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것은 증언내용이 아무리 객관적 사실과 달라도 증인이 실제 믿은 내용이 그렇지 않았다면 위증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위증죄 이론이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에서도 위증죄 고소사건을 제일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위증죄는 사법정의를 파괴하는 범죄로서 중한 범죄로 엄격히 수사하고 위증 발견시 엄벌에 처해야 함에도 위증죄 고소건을 기피하는 수사기관이나 위증죄에 대해서도 솜방망이식 처벌만 한다면 위증죄 무서워 바른말하게 하는 증인신문의 장은 계속 거짓말 경연장이 될 것이다.

출석거부에도 묘안없어

증인으로 꼭 나와야 하는 사람이 출석을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재판의 실체진실을 밝히기 위해 어떤 사람의 증언이 꼭 필요한 경우라면 강력한 사법권이 행사되어 강제력 발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증인이 출석을 거부해도 고작 5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할 뿐이다. 강제구인을 하는 제도가 있어도 법원에 직접 사법경찰권이 없어 촉탁을 받은 일선 경찰관이 증인집을 방문하는 날 증인이 자리만 피해버리면 구인영장이 집행도 되지 않는다.

이런 법의 허점을 너무 잘 아는 약삭빠른 증인들이 많다. 그래서 선서를 하고 뻔뻔스럽게 법정에서 위증을 하거나, 증인소환을 받고도 판사의 명령을 코웃음치면서 법정출두를 거부하는 얌체들이 너무 많다.

이런데도 재판이 굴러가고 있으니 신기할 뿐이다. 이 때문에 엉터리 재판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재판의 결과에 대해 승복하지 않고 억울하다면서 항소하는 차원으로 끝나지 않는다. 재판에 진 사람은 대부분 판사가 상대방측의 돈을 먹었다는 말을 한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증인신문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고, 위증을 차단할 수 있는 근본적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증인신문은 법정에서 심도있게 모두 이루어지게 하고 신문사항을 사전에 미리 주는 제도는 없애야 한다. 증인신문을 직접 청취한 판사가 판결을 하게 한다.

재판과정은 낱낱이 녹취되거나 속기되어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 사법경찰관 제도를 만들고 증인에 대한 강제소환은 이들이 하게 하고, 법원의 명령을 거역하는 자는 법정모욕으로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 위증죄는 사법정의 파괴죄로서 중죄로 다스려야 한다. 위증을 교사한 법률가는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이러한 근본적 제도 개정이 없인 우리는 위증천국, 코리안 법정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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