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e-비즈와 냄비경영

글 / 文炯南(문형남 숙명여대 정보통신대학원 주임교수)

선택 아닌 필수라더니…

최고경영자 중에 세계정상급으로 꼽히는 미 제너럴일렉트릭(GE)사의 잭 웰치 회장이 올초에 “기업들에게 e-비즈니스(인터넷 비즈니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한 말은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시대적 명언으로 회자되고 있다. 또한 컴퓨터 관련 전시회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컴덱스는 “Now all business is e-business(이제 모든 비즈니스는 e-비즈니스다)”를 올해 슬로건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려 잠시 열기가 식긴 했지만 너도나도 무작정 e-비즈니스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기업과 경영자들은 새로운 경영기법들을 패션처럼 도입하려는 경우가 많았다. 90년대 중반 이후에만 해도 기업들이 ‘BPR(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 ‘ERP(전사적자원관리)’, ‘지식경영(KM)’ 등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곤 했다가 5년 이상 지속되지 않고 지금은 모두 시들한 상태다.

기업들의 e-비즈니스 추진 전략이 지금까지 취해 왔던 것처럼 단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진행돼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국내에서 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e-비즈니스로 가장 대표적인 ‘기업간 전자상거래(Business to Business; B2B)’를 중심으로 e-비즈니스를 도입하는 데 잘못된 점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그것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모든 기업 B2B 도입 필요있나

첫째, B2B 도입에 앞서서 과연 우리 회사가 B2B를 도입해야만 하는가는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e-비즈니스를 추진하지 않는 기업은 21세기에는 살아 남을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필자는 모든 기업이 직접 B2B를 도입할 필요는 없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온라인 비즈니스(e-비즈니스)’를 하지 않던 오프라인 업체들이 무조건 직접 온라인에 진출하려고들 든다.

오프라인 업체들이 너도나도 무분별하게 직접 온라인을 통한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실패의 가능성도 높다. 각 기업들은 가장 먼저 꼭 e-비즈니스를 추진해야만 하는지의 필요성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그리고나서 언제부터 진행할 것인지 그 시기도 점검해봐야 한다. B2B를 도입하더라도 시기적으로 아직 여건이 성숙돼 있지 않다면 지금 당장 뛰어들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기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둘째, B2B를 추진하더라도 반드시 직접 하지 않고, 전략적 제휴나 공동 참여를 통해 할 수도 있다. 오프라인에서 잘 한다고 온라인에서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일정한 시장을 놓고 제살깍기식 경쟁을 하기보다는 시장을 키워서 서로가 이득을 보는 지혜가 요구된다. 오프라인에서 잘 하는 기업과 온라인에서 잘 하는 업체가 손을 잡으면 이상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win-win) 전략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기업들이 홈페이지나 B2B 사이트를 직접 만들어서 e-비즈니스를 할 필요는 없다. 홈페이지가 없어도 다른 기업의 홈페이지에 들어가거나 e-마켓플레이스에의 참여를 통해서 얼마든지 B2B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경영자들이 많은 것 같다. 대기업들은 당연히 홈페이지가 있어야 하고, B2B도 직접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B2B를 직접 추진하는 것은 여러 모로 비효율적이며, 필요하다면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투명경영이 더욱 시급하다

셋째, B2B(기업간 전자상거래)와 B2C(기업과 소비자간 전자상거래)는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요즘 B2B에 관한 세미나들이 많이 열리고 있다. 어떤 업종에 대한 B2B 세미나에 참석했더니 주관하는 업체의 관계자가 발표를 통해 “B2C와 B2B는 여러 면에서 서로 전혀 다르다”라고 말하는 것을 봤다. 발표자는 세계 유수의 컨설팅회사 자료를 인용해 가며, B2C와 B2B를 비슷하게 생각해서는 결코 안된다고 강조했다.

컨설팅회사, B2B 전문사이트를 개설한 업체, B2B 솔루션업체 등이 “B2C와 B2B가 전혀 다르다”고 강조하면서 B2C와는 완전히 다른 인식과 방법으로 B2B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장사 속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필자의 생각은 B2C와 B2B가 서로 무관하게 추진돼서는 안되며, 많은 비용을 들여서 별도의 B2B 사이트를 만들게 아니라 한 사이트 내에서 B2C와 B2B를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다.

넷째, B2B를 추진하려면 투명경영이 선행돼야 한다.

최근 주요 그룹 계열사 등이 의료 부문의 B2B를 추진하기 위해 사이트를 만들어 놨으나, 개점 휴업 상태라는 얘기를 들었다. 병원과 제약회사·의료기기업체 간에는 뿌리깊게 박힌 리베이트 관행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는 의료 분야뿐만 아니다. 국내에서는 건설 등 여러 산업에 걸쳐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관습이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다.

B2B를 시행하면 거래 내역이 다 노출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같은 문제가 B2B 추진에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하게 제거해야 할 것이다. 경영자들은 경영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B2B를 도입하고 투명한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편 정부도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혜택을 주는 것처럼 B2B를 실행하는 업체들에게 거래의 투명성에 대해 세액 감면 등을 통해 B2B가 확산되도록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 증시를 두고 ‘냄비증시’라고 하듯이 국내 기업들의 경영스타일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냄비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기업들은 e-비즈니스 추진을 ‘뇌동매매’처럼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할 것이 아니라 소신을 갖고 각 회사 사정에 맞는 장기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추진해 나갈 것을 권고한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