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기업의욕 북돋우자

글/ 禹德昶(우덕창 전 쌍용그룹 부회장)

현금 있으면 속편한 세월

요즈음 시중에서는 “투자를 왜 하느냐, 현금 가지고 있으면 속편하다”들 한다. 기업이나 돈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잔뜩 움츠려 있다는 이야기이다. 눈앞에 보이는 경제는 물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생각이 더 많은 것 같다.

경제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금융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자금융통이 제대로 안되고 있고, 주가는 연중 최저치인 628선도 무너져 주식시장은 마치 초상집 분위기같다. 대다수 기업들의 영업활동은 IMF이전 수준을 아직 밑돌고 있고, 특히 건설업계는 일감이 바닥나 빈사 상태에 빠져 있다. 거기에 이미 배럴당 35불을 넘어선 국제유가는 우리기업들의 원가부담을 계속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부가 발표하는 거시지표만 보면 우리 경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GNP성장이 상반기에 11%이고 소비자 물가는 1.5%로 안정되어 있다. 경상수지도 당초 목표에는 못 미쳐도 상반기에 40억불 흑자이고, 올해 1백억불은 무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표는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극히 일부 업종의 호황에서 오는 착시현상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우리경제가 외형적인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면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벤처열풍이 뭘 남겼나

사실 IMF사태 이후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우리 기업들은 독자적인 목표와 이를 달성하려는 의욕보다는, 외부의 힘에 끌려가고 있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정부 주도에 의한 구조조정의 광풍이 그만큼 강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기업들의 과도한 차입에 의한 무리한 외형성장이 빚어놓은 후유증이 심각했고, 결과적으로 나라경제를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에 구조조정이란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술이 끝나면 원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사람으로 말하면 보약을 먹여야 하는데 대다수 기업들은 그럴만한 겨를이 없었다. 구조조정 드라이브와 함께 정부기관으로부터 규제와 감독이 계속 강화되고 있고,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정부 눈치만 살피고 있는 실정이다.

또 Venture열풍은 기존의 많은 경영자에게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Venture의 육성은 시대적 흐름으로 보면 당연히 가야하는 길이고, 우리 경제를 이끌고 나갈 또 하나의 성장엔진이라는 점에서 Venture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다른 부문은 제쳐놓고 오직 Venture육성에만 집중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 점이나, 주식시장에서 고작 1년도 안된 Venture기업의 주식값이 수십년 역사를 갖고 있는 우량기업의 주가보다 몇 배씩 뛰어 오르는 것을 보고 기존의 많은 기업인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기업의욕 꺽고 뭘 얻을 수 있나

경제환경은 수월한 면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유가급등, 시장개방에 따른 통상마찰, 그리고 기술의 급속진전 등 모두가 싸워서 극복해야 할 과제로 가득 차 있다.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투의욕이다. 무기도 중요하지만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의욕과 자신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욕을 어떻게 하면 부추길 수 있을 지에 대하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우선 생각해야 할 점은 정부의 규제와 감독 시스템 강화, 그것도 부처별로 중복되고 있는 부문이 많다는 점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참 논의중인 공정거래위원회의 금융거래정보요구권의 시한을 무기한으로 연장하는 문제와, 금융감독위원회의 현장조사권은 기업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감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투명경영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기업의욕과 사기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고, 결국 경제활동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도 비슷한 조치를 다수의 정부기관이 경쟁적으로 제도를 새로 만들어 도입하려는 것은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부처간의 협조와 정보공유라는 방법을 통해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 주고 기업이 본연의 활동에 힘을 쏟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타율적 구조조정 문제있다

두번째로 타율적인 구조조정은 지양되었으면 한다. 정부는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하여 가이드 라인을 정해 놓고 이를 내년 2월까지 완료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지만 구조조정의 틀을 정해 놓고 타율적으로 추진하다 보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구조조정은 달리 표현하면 경영혁신인데 기업경영에 있어서 혁신은 시기를 정해 놓고 할 문제가 아니고 기업이 존속하는 한 시대상황에 맞추어 계속 해야 하는 과제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또 구조조정을 등한시하면 기업의 내용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시장 다시 말하면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모르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 스스로가 자기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정부의 역할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수요를 진작시킬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본다. 반도체, 자동차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대다수 기업은 수요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따라서 세제개편과 투자촉진을 통한 신규수요창출로 일감부족에 허덕이는 기업의 숨통을 터주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미국이 장기간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지만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여기서 얻은 투자수익이 왕성한 구매로 이어져 기업의 매출신장과 이익증대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우리도 침체에 빠진 증시대책 마련이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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