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금융기능 마비 위기

새경제팀 개혁은 빛바랜 청사진


글 / 李弼商(이필상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학장)

증시 기능 침체의 파장

최근 증권시장이 기력을 상실했다. 연초 1천포인트를 넘던 종합주가지수가 6백50선으로 주저앉았다. 지난 3월 2백80포인트 선까지 치솟았던 코스닥지수는 1백포인트 선까지 폭락했다. 고객예탁금도 연초 12조5천억원에 이르던 것이 8조원 이하로 떨어졌다.

증권시장이 이정도의 침체상태이면 기능마비에 가깝다. 증권시장이 기능을 상실하자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자금 조달이 거의 중단 상태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은 사실상 무산되고 날로 커지는 부실채권 압박에 눌려 부도위기가 다시 확산하고 있다. 금융시장 불안이 증폭될 경우 우리 경제는 제2의 부도위기를 겪을 수 있다.

IMF 위기 이후 증권시장은 경제 회복의 활력소였다. 외국 자본의 유입과 시장 신뢰 회복에 힘입어 증권시장은 주가지수 280포인트의 붕괴상태를 벗어나 2년도 안 되어 1천포인트를 넘기는 초고속 회복세를 기록했다. 아울러 지난해 초만 해도 지수가 70포인트 수준이었던 코스닥시장도 1년만에 2백80포인트까지 폭등했다.

이 과정에서 시중 자금이 빠른 속도로 증권시장으로 유입되고,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장기 안정자본을 조달하여 부실을 벗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며 안정성을 되찾았다. 더욱이 7천개 이상의 벤처기업들이 창업을 서둘러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첨단 정보통신과 지식산업으로 중심축을 바꾸었다.

공적자금 투입은 산넘어 산

한편 투자가들은 대규모 투자이익을 실현하여 IMF 위기 때 잃었던 구매력을 되찾았다. 결국 이에 힘입어 -6%이던 경제성장율을 +10%로 바꾸고 39억달러 밖에 안되던 외환 보유액을 9백억 달러로 증가시켰다.

더 나아가 8.6%에 이르던 실업률을 3.5%선으로 낮추었다. 그러면 어떻게 증권시장이 맥없이 주저앉고 실물경제가 다시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금융개혁에서 찾을 수 있다.

98년 말 정부는 5개 시중은행, 2개 증권회사, 14개 종금사를 비롯한 70여 개의 금융기관을 통폐합하면서 금융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금융개혁은 근본원인과 책임소재를 규명하지 못하고 부도위기와 금융불안을 막기 위해 공적자금을 임기응변적으로 투입하는 것 이상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감자조치를 취하여 금융기관을 국유화하고 금융감독위원회를 내세워 금융기관의 장악을 계속 강화하였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은행에 대하여 외국자본 참여와 해외매각을 적극 유도했다. 17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제일은행을 5천억 원에 매각하는 오류까지 범했다.

실로 안타까운 것은 외국자본이 국내금융기관을 헐값에 사려는 지연작전에 말려 그나마 개혁이 표류상태가 되고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것인데, 이로 인한 국민의 부담은 계속 늘고 있다. 이미 1백7조원의 공적자금이 부실채권 해결에 투입되었지만 산 넘어 산이다.

정부와 정치개혁은 제자리

새 경제팀이 들어서면서 4대 부문에 대한 새로운 개혁 청사진을 제시했다. 현재의 상황이 지속될 경우 위기가 다시 닥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껴 구조개혁안을 다시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우선 공적자금 조성 방안 마련한 후, 내년 2월까지 종합금융사 처리, 기업 지배구조 개선, 워크아웃기업 정리, 공기업 민영화 및 예금 부분 보장제 등 주요 개혁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다음 전자 금융 거래 제도, 기업의 출자 총액제한, 공공부문의 균형재정 달성 등의 추가적 과제는 2천3년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희망 사항의 나열일 뿐 문제의 해결 방안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번 청사진에서는 부실에 대한 원인규명과 책임소재의 파악이 없으며 특히 그 동안 1백7조원에 이르는 공적자금 낭비에 대한 반성이 보이지 않는다. 더욱 문제는 구조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다.

즉 법과 제도 및 세부적 시행 방안이 없고 공적자금을 조성한다는 것 외에 재원에 대한 책임 있는 대안이 없다. 무엇보다도 경제의 비리와 병의 근원인 정치 개혁이나 정부 개혁 등 근본적인 개혁에 대해서는 또다시 함구하고 있다.

새 경제팀은 개혁성, 참신성, 전문성 - 이 모든 분야에서 부족하다. 주가를 떨어뜨려 경제불안을 악화시키는 것도 이미 예견된 일이다.

불법대출로 위기 망령 되살아

최근에 발생한 한빛은행의 불법대출사건은 IMF 위기의 망령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현재 국내은행들은 산더미 같은 부실채권을 해결하지 못하고 추가적인 구조조정을 안 하면 다시 쓰러지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 이런 은행에서 정치권력을 배후로 하여 또다시 수백억원에 이르는 불법대출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는 병든 환자의 숨을 막고 강도짓을 하여 은행들을 쓰러뜨리는 일로서 제2 IMF위기를 자초하는 반국민적인 범죄행위이다.

경제 속은 이렇게 병이 들어 있는데 새 경제팀은 빛 바랜 개혁의 청사진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경제팀은 현재 우리 경제의 최대 문제가 정부 정책의 신뢰성 추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치 논리에 따른 땜질식 처방이 개혁을 망쳐 국민들의 좌절과 불신이 확대된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경제팀은 스스로 구태에서 벗어나 확실한 소신을 보여주며 구조개혁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64조원을 투입하면 구조개혁이 끝난다고 했는데 1백7조원을 투입해도 경제가 비틀거리는 것을 보고 어떻게 정부 정책을 믿겠는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한 후 기업과 금융기관들을 외국 자본에 헐값에 넘기는 정부를 어떻게 따르라는 것인가? 경제팀은 모든 정치논리를 배제하고 죽일 것은 죽이고 살릴 것은 살리는 과감한 구조개혁의 정공법을 택하여 혼란이 따르더라고 스스로 경쟁력을 회복해서 경제가 올바르게 살아나게 해야 한다.

한마디로 정부는 강력한 순수 개혁의지를 보이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구조개혁의 확실한 방법론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과 함께 하지 않는 개혁은 있을 수 없다. 국민의 신뢰를 하루 속히 회복하고 국민과 함께 개혁을 실행해 나가는 것이 경제팀의 책무이다. 여기에 물론 국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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