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호]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건국연도 둘러싼 황당한 일

대한민국 정통성 부인 묵과 안 된다


글/남시욱(편집위원장, 전 문화일보 사장)

건국박물관 측 광복회에 백기

정부가 건립하기로 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전시내용을 둘러싸고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산하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하 건국박물관) 건립위원회는 지난 1월 28일 전체회의에서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의 수립일 아닌,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로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 원인은 건립위가 광복회와의 다툼에서 패한데 있다.

당초 건국박물관 건립위는 대한민국 건국일을 1948년으로 결정하고 작년부터 건립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광복회와 일부 사학자들, 일부 진보언론 및 일부 야당의원들, 그리고 나중에는 보훈처까지 가세해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 이론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1919년의 상해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것이다. 올해 들어 더욱 강경한 입장을 보인 광복회는 1월 25일 기자회견을 갖고 건국일을 1919년으로 하지 않으면 건국박물관 건립을 취소하라고 주장하면서 시위도 불사하겠다고 나왔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건립위 측은 27일 부랴부랴 광복회에 사람을 보내 1948년을 광복회 주장대로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해로 하겠다고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리고 이튿날 건립위 전체회의를 열어 이를 정식으로 결의함으로써 이 문제를 최종 매듭지었다,

<▲1월25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광복회 주최로 열린 '그릇된 역사의식으로 지어지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건립반대 기자회견'>

공중에 뜬 대한민국 건국연도

문제는 건국박물관 건립위가 광복회에 굴복하면서도 막상 건국연도를 1919년으로 변경한 것은 아니라는데 있다. 건립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건국박물관의 전시 대주제(大主題)를 대한민국의 태동, 대한민국의 기초확립,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 대한민국 선진화와 세계로의 도약 등 4가지로 구성하도록 의견을 모았다. 건립위는 결국 1919년부터 1948년까지를 대한민국의 태동기로 본다는 것인데 이것은 광복회의 요구를 반은 들어주고 반은 안 들어준 셈이 된다. 이렇게 되면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이 언제 건국되었는지를 박물관 전시실에는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건국박물관이 도대체 어느 다른 나라에 있다는 말인가. 앞으로 이대로 일이 추진되어 건국박물관이 관람객에게 공개되는 날 그 혼선을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 건국연도를 1919년이든, 1948년이든 어느 한 쪽으로 명확하게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한쪽에서는 욕을 먹게 되어있는 문제라면 소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야 하지 않는가.

필자는 이미 대한민국 건국연도를 1948년으로 보아야 한다는 글을 몇 차례 쓴 바 있으므로 그 내용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해방 후에 비로소 수립되었다 해서 결코 1919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찬란한 업적을 평가절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 다시 강조해 두고자 한다. 그리고 이 방면의 권위자인 국사편찬위원회가 1948년을 건국의 해로 서술한 책을 최근만 해도 두 권이나 발간한 사실도 아울러 지적해 두고 싶다. 즉 1988년에 나온 <대한민국사>와 2002년에 나온 <한국사>가 바로 그것들이다.

<▲지난해 4월, 광화문 현 문화부 청사를 재활용해 건립할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 출
범 현판식>

정부의 원칙 없는 편의주의 고쳐야

정부 산하의 건국박물관 건립위는 순수한 민간기구가 아니다. 건립위원 중에는 정부의 해당부처 차관들도 있다. 따라서 이번과 같은 황당한 처사에 뒤에는 정부 고위층의 의중도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08년에는 8·15를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60년 기념일’로 규정했으나 광복회 등에서 계속 항의를 하자 2009년에는 이날을 슬그머니 ‘제64주년 광복절’이라고만 부르는 일관성 없는 태도를 취했다. 이 대통령의 2009년 광복절 축사에는 “광복과 건국을 기념하는 이 자리에서”라고 하면서도 언제 건국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목이나 본문에서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절묘하게도 건국박물관 건립위의 애매모호한 태도와 똑 같다. 이 대통령은 이해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1948년, 우리는 세계 사회에 대한민국을 등록시켰습니다”고 밝힌 다음 이어서 “나라를 세운 지 불과 2년 만에 6·25 전쟁이 일어나…” 운운했다. 1948에 대한민국을 세계에 ‘등록’했다고 이상한 표현을 쓴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다시 “나라를 세운지” 라고 한 것은 분명히 건국의 뜻이므로 이것은 안타까울 정도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2010년 올해의 8·15 경축사는 또 어떻게 나올지 기다려 보아야겠지만, 이 대통령의 중도통합정책의와 관련이 있는지는 몰라도 국가의 근본문제에 속하는 국가수립연도에 대해서 이렇게 애매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1948년의 건국을 부인하는 세력은 1919년 설을 주장하는 광복회와는 달리, 대한민국의 정통성 자체를 부인하는 세력이 있음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해방정국에서 김일성은 물론 박헌영과 여운형 등 좌익세력은 1919년의 상해임정도 하나의 독립운동단체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그 법통성을 부인했다. 지금도 그런 주장을 하는 반국가세력이 있음을 온 국민들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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