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농업가치의 재평가

글 / 閔丙文(민병문 내외경제신문 주필)

달러 주고 사다 먹을까

일상 속에 우리는 잊고 사는 게 많다. 공기, 물, 하늬바람 같은 자연의 고마움을 당연한 것으로 친다. 그러나 매연이 찬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구름 잔뜩 낀 눅눅한 한여름에 서 있어 보라. 금방이라도 강원도 산골로 달려가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 않을 사람 어디 있을까.

9월 5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농업, 농촌 가치의 재발견’ 제하의 국제학술대회는 이런 점에서 괄목할 만했다. ‘우자와’ 일본 동경대교수, 쿠로 야나기삿포로대교수, ‘윌프리드 레그’ 경제개발협력위원회(OECD) 환경정책위원장, 김진현 문화일보 회장 등 연사들이 쟁쟁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발표한 내용이 천편일률적인 농업의 식량 안보 기능에서 쑥 벗어나 환경과 국민의 정서적 면에 비중을 둔게 특이했다.

사실 농업의 식량 안보 기능은 진부하지만 농업 학술대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손님이다. 우리 농업 생산액을 한해 2백억달러로 칠 때 이만큼을 수입해 먹으면 5, 60억달러면 충분하다.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학자들은 당장 사다 먹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세계 곡물메이저들이 심술이 나 수출을 중단하거나 값을 올리려 한다면 어쩔 것인가. 지난 80년 군사정권이 들어선 해에 우리는 대흉작으로 고생했다. 달러를 주고 쌀을 사려해도 파는 곳이 없었다. 있어도 값이 맞지 않았다.

겨우 비싼 돈주고 사다가 국내 식량 파동을 메운 일이 있긴 하나 비싸다고 우리가 논농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충분히 증명이 된 셈이다.

지금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오르는 원유값에 대해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도 농업의 경우 비교우위론이 적용될 수 없다는 교훈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석유개발기구(OPEC)가 감산을 하면 초강대국인 미국조차 엄포로 상대할 뿐 마땅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농업에 자연교육 기능 있다

그러나 농업의 가치를 단순히 식량 생산 기지로서만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게 이날 세미나의 주제였다. 예컨대 한여름철에 내린 비를 우리 논들이 가둬놓고 있을 경우 소양강댐 6개의 역할을 한다는 저수 기능에서부터 홍수, 토양 침식, 수질정화 등 국토 보전 기능 등 다양했다. 풍요로운 경관과 야생동물의 보전, 레크리에이션 등에 의한 휴식의 장소 제공 등도 지적됐다.

쿠로 교수는 농업의 자연교육 기능에 역점을 두었다. 최근 일본에서 부모 자식간의 살상 사건, 중고생들간의 이지메(왕따현상) 등이 일어나는 이유가 교육의 황폐화에도 있지만 다분히 도시화의 급속한 추진에 있다고 진단, 농촌이 보여주는 녹색의 편안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동차, 소음, 배기가스 등 짜증나는 도시사막 속에서 가족 친지들과 접촉이 없는 건조한 생활이 부모 말도 듣지 않는 막가는 생활을 만든다는 것이다.

일본의 한 양봉가가 말했다는 한 마리의 꿀벌이 일생동안 모으는 꿀의 양이 스푼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가 과연 자연에서 얻는 식량을 낭비할 수 있을 지 외경감을 준다. 호텔 뷔페에 즐비한 벌꿀은 얼마나 많은 꿀벌이 죽어 모아놓은 것인가. 그런데 빵에 바르다 말고 버리기 일쑤다. 꽃과 채소, 작물 재배에도 제초, 시비, 병충해 방제 등 공이 들어가야 잘 자란다. 이런 자연과의 접촉에서 생명의 신성함을 느낄 때 낭비를 막고 마음의 순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농업 사정은 이보다 아주 급박하다. 중국의 불량 농수산물이 엄청나게 밀려와 당장 식탁 안위가 걱정이다. 납 꽃게, 납 복어에 물들인 유해 참깨, 고추가 중국에서 쏟아진다. 물론 우리 검역체계와 수입상에도 문제는 있다. 금속 탐지기가 없어 게 속에서 납이 나온 뒤에야 부리나케 장비를 구입하는 그런 검역체계에 대한 비난은 그것대로 받아야 한다. 일본은 우리 배를 사갈 때 미리 구입자가 와서 재배할 과수원 상태, 시비는 무엇으로 하는지 등을 일일이 파악해 간다.

농업 우호세력이 늘어야 한다

농업 가치에 대한 재발견은 선진국일수록 빠르고 확실하다.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이스라엘 등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가족농업을 일으켜 미국 캐나다 호주 등 농사대국과 맞겨룰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농업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효율적인 투자를 해왔기 때문이다. 농업 기반 투자가 탄탄했고 그렇게 되도록 국민들이 이해를 했다.

이것은 산업 분류를 엘빈 토플러가 했듯이 농업은 제1차물결, 제조업은 제2차물결, 정보산업은 제3차물결로 보아 마치 농업이 물결처럼 떠내려가는 것처럼 인식했던 오류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런 산업 분류를 ‘물결’ 대신 ‘빌딩’ 개념으로 파악하면 이해하기 쉽다. 농업이 1층, 굴뚝산업이 2층, 지식산업이 3층 빌딩이라면 1, 2층 없는 3층은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다. 결국 농업은 정보산업과 같이 공존 발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도 지난 92년부터 농어촌구조조정사업을 위해 연차적으로 42조원의 돈이 투입되고 있다. 2천4년까지 농어촌특별세로 마련한 15조원이 추가되면 57조원의 자금이 들어간다. 그러나 추진 실적은 운영 및 관리 부실로 아주 미미하다. 부자격자들이 농민 탈을 쓰고 무이자 또는 연리 5%의 저리 자금을 받아 고리채를 주거나 아예 자동차, 상가를 사는 등 전용한 사례가 빚어져 검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는 지방행정조직의 무능, 부패, 도덕적 해이 등에 기인하는 바 컸다. 농업자금 관리 운영에 대한 특별한 대책없는 묻지마 투자는 비농업우호세력을 키울 뿐이다. 이자금을 관리할 지방행정조직의 재편은 시급한 과제다. 우리 농업 가치는 앞으로 다가올 통일시대에 대비해서도 재평가해야 한다. 북한 땅의 개간과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남한의 농업생산력과 기술이 발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우리 농업가치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사회적 평가는 저조하다. 홍보가 제대로 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식탁의 안전과 국민 정서에 주는 영향, 환경 보호와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도 되도록 많은 농업 우호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농업 가치 홍보의 조직화와 체계화로 국민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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