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사회주의 낙원 관광

글 / 宋貞淑 편집위원(송정숙 전 장관, 전 서울신문논설위원)

오스트리아의 황녀와 프랑스의 황태자의 혼인은 오랜 전쟁 상태에 지친 두 나라가 전쟁을 방지하기 위하여 생각해낸 정략 결혼이다. 특히 심지 깊고 지혜로운 합스부르그 왕가의 여제(女帝) 마리아 테레사는 전쟁으로 피폐해 가는 자신의 왕국을 구하는 길로 막내딸 마리 앙트아네트를 프랑스의 왕위계승권자인 루이 15세의 손자와 결혼시키는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외교 능력을 총동원하고 선물과 편지 공세를 다해 마침내 혼사는 이뤄진다. 셴부른궁과 베르사이유궁이 경쟁적으로 총력을 기울여 거행한 이 결혼식은 호화의 극치에 달한다.

그 결혼식의 시작 부분에 있었던 에피스드 중의 하나.

오스트리아 황녀의 신분에서 부르봉 왕가의 황태자비가 되는 엄청난 변신의 의식을 어느 영토에서 하느냐가 문제가 되었다. 합스부르그가의 왕녀가 오스트리아 땅에서 프랑스 황태자비로 변신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은 오스트리아의 국헌을 다치는 일이고 프랑스 영토에서 남의 나라 황녀가 프랑스 최고의 신분이 되게 하는 일은 프랑스의 자존심에 걸리는 일이다.

양쪽 왕실의 머리 좋은 대신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딱 중간에 해당하는 라인강의 한 복판 작은 무인도에서 그 변신의 의식을 거행한다는 것이다.

이 섬에서 라인강 오른쪽 기슭을 향해 가건물을 짓고 이 곳을 통과할 때까지 마리 앙트와네트는 오스트리아의 황녀이고 다시 왼쪽 기슭을 바라보고 지은 가건물을 통과하고 나면 그녀는 프랑스 황태자비가 된다는 발상이었다.

어쨌든 이런 야단스런 격식을 치르기 위해 프랑스는 거대한 식장을 급조했다. 식장은 주인공 신부가 도착하기까지 엄격하게 ‘잡인’의 접근을 금했다. 식이 거행되기 며칠 전 몇 명의 독일 대학생들이 호기심에 차서 이곳에 들어가 보게 된다. 그 중의 한 젊은 대학생은 라파엘의 그림을 모사(模寫)한 값비싼 태피스트리에 심취하여 오랫동안 감상하며 명품을 알아보지 못하는 동료 대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설명을 했다. 그러다가 청년은 어느 순간 기절하듯 놀라 소리쳤다. 그 그림에 나타난 전설은 불길한 결혼의 원조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있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결혼이라고 일컬어지는 실례를 이제 막 결혼하려는 어린 황녀의 눈에 이렇게 무분별하게 보여주어도 된단 말인가. 도대체 프랑스의 건축가 장식가 표구사 중에는, 그런 그림이 인간의 감각이나 감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인상이나 예감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단 말인가. 이건 흡사 가장 아름다운 귀부인을 요괴로 하여금 마중하게 한 꼴이군.’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예비 행사장을 뛰쳐나간 청년, 그는 다름 아닌 독일이 낳은 거장 시성(詩聖) 괴테였다.

느닷없이 이런 일화가 생각난 것은, 베이징이 자랑하는 인공 정원 ‘이원’을 찾았을 때였다. 정식 간택을 통해서 황후가 된 것도 아니면서 미모와 술수로 황제를 사로잡고 황제가 죽은 뒤에는 권력과 영화를 한 몸에 지니기 위해 친아들의 씨를 잉태한 며느리까지 자살시키고 자신의 친정붙이로 황위를 이어가며 수렴청정을 하던 서태후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뜬금없이 이 이야기가 생각난 것이다. 아마도 서태후를 통해 오스트리아를 섭정하던 마리아 테레사 여제(女帝)가 연상된 탓일지도 모른다.

흔히 황후의 자격으로 왕권을 섭정했던 여걸을 이야기하려면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황후와 서태후 그리고 마리아 테레사를 함께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에카테리나나 서태후는 그 끝간데 모를 욕심과 비정하고 잔인한 이기주의의 화신이 상징이지만 마리아 테레사는 정 반대의 여성통치자였다.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감 때문에 명을 단축할 만큼 혼신을 다해 통치했던 서양사중의 명군(明君)이 마리 앙트와네트의 母后 마리아 테레사다.

거장(巨匠) 전기작가 스테판 츠바이크에 의하면 이 마리아 테레사는 정략상 할 수 없이 자신의 순진한 막내딸 마리 앙트와네트를 프랑스에 시집 보내기는 했으나 끊임없이 불길한 예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과연 그는 정무에 지쳐 일찍 세상을 떠나고 그가 안쓰러워하며 시집보내놓고 노심초사하던 마리앙트와네트는 그가 보호도 도와도 줄 수 없는 상태에서 마침내 단두대에서 사라진다.

서태후는 어떤 불길한 예감도 못 느꼈었을까. 자신에게 주어질 그 불명예와 저주의 징후를 상쇄할 만큼 권력은 탐욕스런 것이었을까. 여러 가지로 영특하기도 하고 능력도 있었던 여성이며 어머니였던 그는 어떤 생각으로 사방에다 이런 거대한 구조물들을 지어놓은 것일까.

이들 독재 군주들의 민중 착취의 유물이, 지상에서 찾아낸 가장 아름다운 이념으로 ‘사회주의 지상 낙원’을 건설한 나라의 인민들이 민생의 수단으로 삼는 자원이 되고 있다. 아이러니다.

서태후만이 아니다. 진시황의 거대한 유산이나 양귀비의 호화를 극한 목욕탕들 놀이배를 띄워놓고 취흥 도도하게 노닐던 인공의 경치들이 인민을 위한 호구책 돈벌이에 이용되고 있다. 민중 착취의 더러운 역사가 없었다면 ‘고상한 이념’의 신념에 따라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이 후예들이 빈곤을 퇴치하는데 좀 힘들지 않았을까?

패키지 중국 관광에는 ‘발 마사지’도 들어 있다. 여행에 피로한 관광객에게 이 마사지는 매우 인기가 있다. 플라스틱 대야에 수건을 들고 읍하듯이 대기하고 있는 수십명의 청년 마사지사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관광 감이다.

작은 돈을 들고 찾아든 관광길에 졸부처럼 앉아서 이런 서비스를 받다 보면 공연히 오금이 저려온다. 붉은 신념속에 성장하여 올곧은 자존심과 금욕적 노력으로 건설해온 사회주의 국가의 장대 같은 청년들이 해 주는 이 집단 서비스가 공연히 송구스럽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경구가 있다. 이 전형적인 천민 자본주의의 경구가 중국 젊은이들을 동원하기에 알맞게 되어 있는 점도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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