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대통령의 결단

글 / 李成春(이성춘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선로위의 두 기관차의 돌진

“두 기관차가 하나의 선로 위에서 무작정 마주보고 돌진하는 것과 같다.”

이 말은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봄 서울을 방문했던 미국하원 스티븐 솔라즈 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이 한 말이다. 그로부터 13년후 불행하게도 다시 이런 현상이 재현되어 국민들을 불쾌하게 만들고 있다.

여야가 중요한 경제 등 민생과 개혁과제를 외면한 채 경쟁이 아닌 적대(敵對)관계로 근 2개월째 한치의 양보나 타협이 없는 대치상황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30일부터 임기가 시작된 16대 국회는 제212회 임시국회에서 의장단 등의 선출로 원(院)구성을 끝냈고 이어 213회 국회를 열어 여야당 대표질문과 대정부질문, 그리고 상임위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7월 24일 여당(민주당)이 자민련과의 공조복원을 위해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을 현행 20명에서 10명으로 완화하는 국회법개정안을 운영위에서 느닷없이 날치기통과시킴으로서 살얼음 밟던 ‘화해정치’는 50여일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크게 반발, 국회를 보이코트했고 민주당은 자민련과 214회 국회를 열었으나 야당불참으로 국회는 공전되고 정국은 파행(跛行)으로 접어들었으며 정기국회가 시작됐지만 야당은 개회식만 참석하여 근 한달 가까이 개정휴업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맞수끼리 이기는 정치 모색

4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안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관련 등 개혁과 각종 민생법안 등이 그대로 잠자고 있는 형편이다. 그 뿐인가. 연일 상승행진 중인 기름값 폭등은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는 한국에게 있어 취약한 경제를 강타(强打)하여 뒤흔들고 있는데도 정치는 장기 휴업중인 것이다.

정치실정-국회파행의 외형적 원인은 국회법날치기, 민주당 윤철상(尹鐵相) 의원의 총선거 비용축소보고에 개입의혹발언, 한빛은행 거액대출사건에 고위층개입의혹 등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날치기통과에 대한 김 대통령의 사과와 백지화, 재발방지, 두 가지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및 특검제에 의한 재조사를 주장한 반면 여당은 국회법개정안은 협의할 수 있고 윤 의원 발언은 단순한 실언(失言)이며 한빛은행사건은 검찰수사결과대로라는 입장이다.

또한 대결정국의 심층적 원인은 첫째는 한나라당(133) 민주당(119) 자민련(17) 민국당(2) 국민신당(1) 무소속(1)의 의석 분포가 보여주듯 어느 당도 원내과반수(137)를 확보못한 상황에서 여야당이 상대를 누르고 ‘이기는 정치’를 하려는 것은 상호 철저한 불신때문이다. 여당은 15대 이래 야당이 사사건건 현정부의 개혁과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는 것으로, 야당은 청와대와 여당이 야당을 교란 붕괴시키려는 것으로 보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다 한나라당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문제를 김 대통령이 거의 독점적으로 추진하여 야당과 정치의 입지를 크게 좁혀 정국을 주도하려는 것으로 보고 크게 경계하고 잇는 것이다.

정국운영과 국회정상화의 책임

파행정국을 보는 여야영수들의 시각은 완전히 상반된다. 김 대통령은 “국회는 법대로 운영해야 한다. 합의가 안되면 표결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경한 원칙론을 제기했고 이회창 총재는 “청와대와 여당은 국민과 야당에게 기(氣)싸움만 벌이려 하고 있다. 나라가 깨지고 있는데 김 대통령은 다른 문제에만(남북문제) 신경을 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의 한화갑(韓和甲) 의원은 “한나라당이 국회등원을 계속 거부할 경우 한나라당은 분열되거나 제3세력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한나라당은 “야당을 분열시키려는 속셈을 노출시킨 것”이라고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정치부재(不在) 상태가 장기화되자 민주당의 자민련과 단독국회용의 등 대야(對野)강경자세에 대한 이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김경재(金景梓) 의원은 “한빛은행사건규명에 특검제 수용”을 주장했고 초·재선의원 13명은 모임을 갖고 “한빛은행사건 수사결과에 국민들이 믿지 않고 웃고 있다는 만큼 총선비용의혹사건과 함께 특검제를 통해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최고위원들도 “여당에 대한 민심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의견들을 내고 있어 여권의 집안은 점차 술렁이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에서도 이회창 총재의 국회등원거부-장외집회를 통해 대여(對與)강경투쟁에 대해 부주류의 대표격인 김덕룡(金德龍) 의원은 “자유로운 당론개방”을 제기하며 이 총재의 1人 지배방식을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떻든 ‘무(無)정치’ ‘무(無)국회’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국정운영과 정치(국회)정상회의 1차적 책임은 집권당에 있는 만큼 민주당은 넓은 아량으로 야당을 포용하는 종합적인 결단을 내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의 포용기대

선거비용축소의혹발언이나 거액불법대출사건 등을 그대로 둘 경우 제2의 고급옷로비사건으로 비화될 여지가 다분히 있으며 자칫 김대중 정부후반의 국정운영도 그렇고 국민의 신뢰를 뒤흔들 요인인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물론 야당에도 정치부재에 대한 제2차적 책임이 있다. 따라서 야당도 장외집회를 중단하고 국회정상화를 위해 흔연히 정부여당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양보하는 아량을 보일 필요가 있다. 지금 여야대결 정국하에서 날로 피해를 보고 손상되는 것은 국익이요 고통을 받는 것은 국민임을 여야는 명심해야 한다.

사실 현재의 대치상황은 엄밀히 말하면 여야당의 대결이 아니라 청와대와 야당 김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간의 대립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국회를 빨리 정상화해야 한다. 국정감사를 실시하고 유가폭등, 물가상승, 수출부진 등에 따른 경제대책 등을 서둘러야 할 책임이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민심을 정확히 살펴 ‘큰 포용’으로 막힌 정국을 정상화시켜야 하며 빠를수록 효과는 클 것이다.

국민은 침묵하고 있지만 모든 현안들의 진상규명을 고대하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하루빨리 ‘큰 결단’으로 민심을 쓰다듬는 것이 당면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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