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애국심(愛國心) 어디 갔나

글 / 李東和(이동화 전 서울신문 주필)

극심해진 개인 및 집단 利己주의

얼마전 파리에서 열렸던 한-불 포럼에 참석했을 때 느닷없는 애국심 논쟁에 뛰어든 일이 있었다. 시발은 프랑스 측의 한 참석자가 “한국의 국산품 애용 운동은 자유무역주의에 어긋난 일이며 부당한 무역장벽이니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였다. 이에 필자를 포함한 몇 사람이 “이는 국민들의 애국심이 자발적으로 발로된 것”이라며 역사를 들추어가며 반박에 나섰다. 그 요지는 대강 이렇다.

‘일본으로부터 강요된 乙巳보호조약 이후 이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救國운동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1907년 殖産박람회를 기점으로 일본의 빚을 갚고 나라를 바로 세우자는 염원에서 전국 방방곡곡의 부녀자들이 은비녀와 금가락지를 자발적으로 빼내 기금을 모으는 데 앞장선 것이 효시였다. 그 뒤 3·1 독립운동 다음 해인 1920년 조선물산장려회가 벌인 국산품 애용운동 역시 국민들의 적극 호응 속에 몇 년씩 그 불길이 타올랐으며 그 이후에도 이 같은 형태의 애국심 발로가 이어져 왔다. 앞으로도 국민들의 애국심이 자연스럽게 이런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과연 그 다음 해에 IMF 사태가 터진 뒤 있은 ‘금 모으기 운동’에서 보여 준 국민들의 호응도는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매우 높았다. 이는 애국심의 발로 이외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2년 반이 지난 지금 충천하리 만치 드높았던 애국심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는 국가나 국민 대신 개인과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철저한 이기주의가 바꿔 앉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기적인 운전 방법이 습관화될 정도로 교통질서는 엉망이 되었으나 이를 개선할 엄두도 못 내고 있고 남이야 죽건 말건 나만 돈 벌면 된다는 불량식품이 나돌아 다녀도 처벌이 미미하니 음식 사서 먹기가 겁나는 세상이 되었다. 단기 外債가 급증했다고 해도 IMF사태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치성 소비재 수입은 급증하고있고 인명을 생각하지 않는 병원 폐업이 감행되는 세태에서 우리는 애국심 대신 개인 또는 집단의 이기주의가 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음을 통감하고 있다.

政權이 “내 탓이요”하고 반성 못할까

잠깐 사이에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금의 정권이 “내 탓이요”하고 반성해야 마땅하다. 왜 그런지 몇 가지만 지적해보자. 이 정권은 초기부터 작심하고 요직의 요소를 특정 지역 출신 일변도로 채워나갔다. 이 일은 단기간에 유례가 없는 속도로 진행되었다.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지만 “그렇지 않다” “바로잡는 것일 뿐” 등등의 강변과 修辭속에 정부뿐만 아니라 정부의 영향이 미치는 금융 언론 기관의 요소 요소를 일사천리로 휩쓸었다.

그러더니 어느 시점부터인가 요직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인사에는 지역보다는 ‘줄’을 놓고 뒷얘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대통령 주변의 권력 실세들의 이름이 난무하면서 이 사람은 누구 줄이다, 저 사람은 아무개 줄이다하는 말이 인사 때마다 주변에서 오가는 일이 늘어났다. 이는 특정 지역 문제는 이제 상식화된 일이라 이제 뉴스가 안 된다는 얘기이고 권력 실세들의 영향력은 사회 도처에서 커지고 먹혀드는 등 권력 남용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인사에 있어 업무에 대한 지식이나 능력, 경력이나 경륜이 먼저 거론되지 않고 출신 지역이나 줄이 화제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잘 못된 인사는 그 조직체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비리의 개연성을 높여준다. 권력 남용은 더더욱 비리와 통한다. 권력 주변의 비리는 사회 전반에 걸친 부정 부패의 만연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이런 사실을 모르는지,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지 권력형 비리가 터질 때마다 이를 호소하기에 바쁜 인상을 준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어느 도지사의 도난 사건은 사회의 관심을 불러모았지만 검찰 수사 자체가 겉돌다 말았다. 지난 추석 때 전국민의 안주 감이었던 ‘한빛은행 부정대출사건’은 청와대 공보수석을 지낸 실세 장관과 ‘동교동’ 핵심 인사의 이름이 연일 신문지상에 의혹의 대상으로 보도됐는데도 검찰이 기본적이고도 상식적인 수사에는 손도 못 댄 채 본인들의 부인 한마디에 免罪符를 주고 말았다. 야당의 진상 규명 요구는 ‘터무니없는 정치 공세’라고 잘랐다.

권력형 非理 더 이상 감싸지 말라

남에게 피해를 입힌 자기 자식을 나무라기는커녕 오히려 상대방을 나무라는 이기적 凡夫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잘못한 아랫사람에게 지나친 온정을 베풀다가 더불어 망가진 李承晩 대통령의 노인 정치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무조건 이 편을 감싸고 상대방에게 역습을 가하려하니 여-야 관계가 좋을 리 없고 정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국정을 풀어나갈 한 軸인 국회가 공전을 거듭하고 정치가 실종되면 국민은 의지할 곳이 없다. 이러면 국민들은 풀이 죽고 애국심도 생기기 어렵다.

야당에는 전혀 관용이 없으면서도 對北 태도는 전혀 딴 판이다. 비료도 주고 쌀도 주고 돈도 주고 막 퍼주면서도 오히려 저자세다. 김정일 군사위원장의 비위는 물론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에 조심을 거듭한다. 그러니 간첩과 빨치산이었다는 비전향 장기수는 북한에 돌려보내면서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귀환문제는 입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주변 강국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고분고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저자세다. 이렇게 정부가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국민들에게 무슨 애국심이 생기겠는가.

국민들의 애국심이 고양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국민적 에너지가 모아져야만 난국을 쉽게 돌파하고 국가발전을 제대로 도모할 수 있다. 내정은 역시 바른 정치로 풀지 않으면 안 된다. 대국적 견지에서 능력에 바탕을 둔 공정한 인사를 하겠다는 각오가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하고 권력형 부정 비리의 척결을 위한 泣斬馬謖(읍참마속)의 결단을 보이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여-야 相生의 정치에 주력하면 정치는 쉬워지고 국리민복은 제고되며 국민의 애국심은 고양되는 善循環(선순환)을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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