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정치도, 통치도 없다

글 / 宋孝彬 편집위원(송효빈 한국기자협회 고문)

外治는 우등생 內治는 낙제생

김대중 정부의 집권 전반기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대체로 남북통일 및 외교부문에 관해서는 최상의 점수를 주고, 내정에 있어서는 낙제 점수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김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을 기반으로 민족화해와 한반도 긴장완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김 대통령이 이렇게 큰 업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대치정국과 현대의 자금경색과 함께 고유가시대의 진입과 반도체 가격의 하락으로 고조되고 있는 경제의 위기감 및 한빛은행의 외압대출부정사건과 의료대란 등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이 나라엔 정치도 없고, 통치마저 없다는 자탄의 소리가 높다.

16대 국회에서 처음 소집된 9월 정기국회가 개정휴업사태로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야당은 국회운영위에서 국회법을 날치기 처리한 것을 사과하는 동시에 원천 무효화를 천명할 것을 주장하는 동시에 윤철상 의원이 발설한 부정선거 축소의혹과 한빛은행 불법대출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권의 발동이나 특검제의 조사를 요구하며 등원을 거부, 장외투쟁까지 벌리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강한 여당’과 ‘국회법대로의 정치’를 내세우는 경직된 자세로 나오고 있어 꽉 막힌 정국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다. 김 대통령이 TV 3사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날 2년 반동안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한번도 여당이 과반수 안정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대목에서 정부의 오만과 경직된 야당관을 엿볼 수 있다.

문제가 된 윤 의원의 발설은 ‘단순한 실언’이고 1천억 가까운 부정대출은 지점장과 청와대 행정관의 단순 사기극이라고 수사종결을 했다.

지점에서 1억원의 여신만 일으켜도 본점 감사팀에서 빗발치듯 추궁이 오는데 하물며 수백억원의 여신을 본점의 승인 없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도려내라

박 장관의 측근이자 먼 친척벌이 되는 청와대 행정비서가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을 하나의 권력형 비리로 보는 측면이 있다.

박 장관은 신용보증기금 전 지점장 이운영씨에게 대출압력을 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장본인인 이운영씨가 다시 나타나 압력전화를 두 차례를 받았다면서 통화내용까지 자세히 공개하고 있으며 또 일부 신문에서는 최수병 당시 신용기금 이사장이 임원회의에서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이운영 지점장의 사표를 받아라”고 까지 지시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특히 수사가 진행중인 데도 해당 은행장과 집권당의 최고위원까지 나서서 박지원 장관이 무관하다는 것과 외압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당이 사건의 축소 은폐에 총체적으로 매달리는 듯한 인상을 줬다.

윤철상 의원의 선거비실사 축소발언도 마찬가지다. 동료의원의 호된 추궁에 화가나서 실언했다는 변명을 누가 믿겠는가. 지난 4·13총선거는 돈선거였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법정 선거비용만 쓰고 당선된 의원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어쨌든 윤 의원이 선거비용을 반만 신고하라고 교육했고 십여명을 기소되지 않도록 힘썼다는 발언은 무한한 폭발력을 지녔다.

적반하장격으로 한화갑 최고위원은 야당이 장외로만 겉돌면, 내분을 일으킬 것이라는 다분히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한 것이나 서영훈 대표의 단독국회운운의 발언은 정국 수습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썩은 곳은 도려내야지 감춘다고 추한 냄새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정부와 야당이 윤철상 의원의 부정선거 축소의혹발언과 한빛은행 부정대출사건에 대해 구린데를 감추고 어물어물 덮어버리려 한다면, 김대중 정권 후반기는 그 구린내로 골머리를 썩히게 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꽉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김경재 의원의 주장처럼, 국정조사권이나 특검제를 발동해서라고 국민도 의혹을 깨끗이 풀고 진상을 밝히는 것뿐이다. 그 결과에 따라서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당정을 쇄신해야 할 것이다. 결단의 시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있는가, 병날 자유도 없다

요즘 국민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석달 가까이 계속 되고 있는 의료대란이다. 물론 일차적으로 환자 곁을 떠나간 의사들에게 먼저 분노를 터뜨리지만, 반백이 넘은 의대 교수들 마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내팽개친 채 환자 곁을 떠날 때는 의료계가 이 지경으로 황폐화될 때까지 정부는 무얼 했는가 되묻게 된다.

환자에겐 ‘살 자유는 없고 죽을 자유밖에 없다’는 탄식이니 이러고도 정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부가 한 것이라고는 의료수가 올려 국민부담만 늘리고 의사에게 굴복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고도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의사와 약사들의 협조없이 의약분업은 성공할 수 없다. 강제로 의약분업을 밀어붙여 성공한 나라가 없다. 의약 체계가 동양과 서양이 다른데 서양에서 성공한 의약분업을 아무런 준비없이 빨리 해내려는데 문제가 있다. 일본도 처음에는 완전 의약분업을 실행해 봤지만 돈이 많이 들고 환자들이 불편해해서 결국 의사가 조제하는 약이나 약사가 조제하는 약 중에서 하나를 환자가 선택하도록 했다.

너무나 빨리 큰일을 해내려는 과잉의욕이 문제다. 모든 일은 독선과 오만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대화와 타협으로 접근할 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국민적 합의없이 국민연금제를 실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의약분업을 강행, 의료대란을 일으켰다.

국민의 동의 없이 의약분업을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국민 부담만 늘리고 의사도 약사도, 제약회사도 불만투성이인 꼴이 됐다.

김대중 정부의 효율적인 통치기간은 앞으로 1년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 세상 민심은 야박한 법이다. 아무리 화려한 외치도 국민 통합에 의한 알찬 내치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빛바랜 장미꽃처럼 무위로 돌아간다는 것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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