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공직자여 분노하라 ⑫]

예산낭비 말이 되나?

욕 먹을 일 스스로 막아야...


글 / 崔同燮(최동섭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회장, 전건설부 장관, 동아그룹 회장)

민선단체장 善心은 안돼

정기국회에 상정된 법안 가운데 공직자와 나라경영에 관에 민의(民意)가 반영된 법률안이 눈에 띈다. 재경부 소관 법안인 ‘예산 집행직원의 책임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이 그것이다.

국가예산을 멋대로 지출하거나 낭비하는 경우 단체장에게 변상책임을 지운다는 내용이다.

이 개정안은 회계관계 직원에게 상급자의 부적절한 예산집행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고 끝내 상급자에 의해 예산이 집행될 경우 변상 책임을 상급자에게 묻게 규정했다.

개정안은 회계관계 직원에게는 상급자의 부적절한 지시에 대해 그 이유를 명시하여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그 대신 상급자의 책임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현행 규정상에는 예산전용이나 낭비의 경우 상급자가 연대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지만 지금껏 한차례도 문책된 사례가 없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회계관계 직원 등의 책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려는 정부방침은 지방자치단체장을 비롯하여 정부투자기관장이나 중앙부처 기관장까지 예산낭비를 강력히 억제하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부적절하거나 편법 또는 불법지출이 적발될 경우 기관장이 개인 돈으로 변상해야 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책임지며 권한 행사하라

왜 이 같은 법률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을까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정부 예산은 국회만 통과되면 주머니 돈처럼 쓴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민선 지방자치 단체장의 경우 회계관계 직원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선거공약을 위한 선심용으로 과다지출하는 사례가 자주 지적된다.

예산 전용도 문제이고 물자구입이나 토지보상비지출 등의 경우에도 선심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시가보다 월등히 높은 토지보상비나 물자구입비가 다음 선거를 위한 민선단체장의 홍보용 지출이 아니냐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법률개정안은 민선단체장이라 해도 예산의 부당지출에 따른 재정손의 변상책임을 지워 나랏돈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규제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실제 변상의 판정은 감사원 감사에 의해 내려지며 판정에 불복할 경우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다.

지금껏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집행에 관한 정기적인 감사가 있었지만 민선단체장의 고압적인 거부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개정안에 대해서도 지방자치제의 기본정신을 훼손시키지 않느냐는 반발도 예상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혈세를 부담하는 국민의 입장에선 너무나 타당한 개정안이 아니냐는 소감이다.

기관장 책임 입법화 환영할 일

새해 예산요구액이 무려 1백조원을 넘어섰다고 보도되었다.

앞으로 예산국회가 얼마큼 성실히 심의해줄는지 알 수 없지만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

여야간 정쟁(政爭)에 시간을 보내다가 막판에 가서 적당히 합의하여 통과시키고 말 것이다.

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나 예산안의 반영에는 신명을 다 바치지만 막상 국회를 통과하면 쌈짓돈처럼 헤프게 쓴다.

예산삭감을 주장하는 국회의원들도 내막으로는 지역구 사업비 증액을 위해 예산당국에 압력을 행사하여 전과를 올려야 다음 선거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경기와 상관없이 정부예산은 늘게 되고 국민의 세부담은 어김없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문제는 예산확보에 혈안이 되었던 사람들이 집행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자체감사가 있지만 대수롭지 않고 중앙감사가 엄격하다고 하지만 이런저런 규정을 원용하며 변명하면 그만이다.

예산집행이 불가능하거나 여건변동으로 유보된 사업비를 반납하는 경우가 없다. 억지로 예산을 낭비하고자 멀쩡한 도로를 파헤치고 보도블럭을 갈아치우는 것이 지방자치단체들이다.

관련업자들이 예산항목을 짚어가며 조기집행을 독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들 한다. 예산이 확보되면 벌써 수혜자가 지정되고 지출이 준비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딱하고 속쓰린 것은 국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감사원이 감사를 통해 절실하게 생각했던 기관장에 의한 예산낭비의 변상책임을 제도화하려는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환영하는 것이다.

지방의회나 단체장이나…

명예적으로 출발한 지방의회 의원들의 세비(歲費)문제가 도마위에 올라있다. 경조사비용이 많고 활동비도 소요된다는 주장이다. 지방의회 의원들도 국회의원처럼 세비를 지급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지방의회가 주민들의 고충을 지방자치행정에 반영시키고 예산집행을 견제하는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손바닥만한 나라의 지방자치제에 세비를 지불하는 의회가 필요한가는 의문이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생업을 영위하며 명예직으로 지방의회를 구성한 경우가 많다고 듣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껏 지방의회가 어떤 인상을 남겼는가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여의도 국회를 흉내내려는 행태나 무더기 집단외유로 말썽을 되풀이하면서 세비마저 받겠다니 국민은 동의하기 어렵다.

자치단체의 예산낭비가 지적되고 무모한 사업으로 지방재정 적자가 심화되고 있을 때 지방의회가 얼마큼 견제기능을 발휘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니 아직은 세비를 거론할 것이 아니라 의회의 기능 활성화를 위해 지혜를 짜야 할 때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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