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선각자는 가고

세계화(世界化)에 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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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崔鍾賢(최종현) 자료집출간

국가경쟁력을 강조한 선각자

고 최종현(崔鍾賢) SK 회장은 한발 앞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누구보다 소리높여 강조한 분이다.

생존시 그는 “우리 스스로가 국가경쟁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과거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따라가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열심히 뛰었지만 지금은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후진국으로부터 추격을 받는 샌드위치와 같은 위치에 있다. 각국이 경제를 우선시하면서 경제전쟁이 시작되었으며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도 경쟁력 강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내용들은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 金珏中)가 최근 발간한 ‘故 崔鍾賢 전경련 회장 재임 자료집’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고인은 1993년부터 98년까지 3대에 걸쳐 전경련 회장직을 역임했다.

최 회장은 생전에 “우리는 세계화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또 국경이 없어지는 세계화 단계에서는 우리 상품을 파는 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세계화는 우리 내수시장도 개방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일찍이 설파했다.

그는 이미 산업계는 여건이 좋든 안좋든 맡은 분야에서 기술개발을 통해 경쟁에서 이겨나가자고 다짐하는데 혼자로는 안되다. 국민의식 교육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가격 품질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내셔널리즘에서는 국민들이 질이 안좋은 국산품에 대해서도 참고 견뎠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 실질적으로 품목 하나하나를 놓고 강약여부를 따지고 어떻게 튼튼하게 경쟁력있게 만드느냐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신발산업, 섬유산업이 다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학이 매년 불량품 생산한다”

대학교육에 대해서도 최 회장은 일찍이 개혁을 주장했다.

“기업입장에서도 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다. 대학교육은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기업입장에서 볼 때 낭비요인이 너무 많다. 대학졸업자를 받아들여 제대로 써먹으려면 재교육을 실시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우수한 장학생들을 매년 미국에 유학 보낸 적이 있다.

미국 교수들에게 평을 해달라고 했더니 “한국 유학생들은 자질이 아주 우수한데 그동안 교육받았던 방식에 아주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어느 교수가 사석에서 “기업에서 불량품을 만들면 안 팔리지만 지금 대학에서는 매년 불량품들이 나간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최 회장은 전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또한 “기업입장에서는 모든 문제를 자유경쟁체제의 시장원리로 풀면 쉽게 풀린다”고 생각했다. 공급과 수요를 자유롭게 하면 가격이 자연스럽게 결정된다는 것이다. 버스 등 대중교통요금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다보니 질이 떨어지게 됐다고 최 회장은 말했다.

우리 경제내부도 마찬가지다. 금리자유화를 한다고 하지만 공급은 정부가 쥐고 규제하니까 공급이 달리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교육개혁을 하려면 교육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최 회장의 주장이었다.

“정부가 개입해 모든 시험을 주관해야 하는가? 입시를 학교에 맡기고 기부금 받는 것도 역시 학교에 맡겨야 한다. 다만 개인이 챙기는 것만 정부가 막으면 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최 회장은 금융개방대책의 시급성도 강조했다.

“산업계는 그동안 개방이 많이 돼 나름대로 경쟁력있는 분야가 생겨났다. 문제는 금융계다. 금융시장이 더욱 개방되면 쌀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동안 은행 보험 증권 리스산업 등이 지나치게 과보호되어 왔다”

은행도 주인이 있어야 한다

기업으로서는 금융시장 개방문제가 농업문제보다 더 심각하다고 최 회장은 6?7년전부터 주장해왔다.

“금융시장이 개방되어 경쟁력없는 금융기관이 어려워지면 기업입장에서는 거래은행이 어떻게 되는지 걱정이다. 금융시장을 개방하면 기업들은 비싼 국내은행 돈을 안 쓰고 금리가 2?3%밖에 안되는 외국은행 돈을 쓰게 될 것인데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생산성이 가장 낮은 곳이 바로 주인 없는 기업과 기관임은 여러 차례 지적돼왔다. 따라서 금융기관도 주인있는 기관으로 만들어 주인이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10년 뒤에 회사가 망한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책을 만든다. 세계경제가 글로벌화해 자기 기업이 망할지도 모른다고 하면 지금부터 살아남기 위해 몇 개 품목을 세계 일등제품으로 키우기 위해 나설 것이다. 그러나 주인 없는 기업의 임원들은 ‘글세, 걱정이네요’하는 말만 되풀이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세울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 임기만 적당히 채우면 그만이니까”

최 회장은 아울러 국제경쟁시대에서 전쟁의 일선은 기업을 비롯한 경제계가 맡고 2선에서는 국민 모두가 뛰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터 가다듬고 국민 전체가 인식을 달리해야 한다. 글로벌리즘 즉 국경이 점점 낮아지거나 없어지는 시대에서는 과거처럼 내셔널리즘 차원에서 정치 경제 문화를 구상하던 때와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아울러 2천년대 무한경쟁시대에 경쟁우위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고유의 경영관리기법인 SKMS(SunKyong Management System)를 지난 79년에 정립, 경영도구로 활용해 왔었다.

SK는 SKMS를 실제 적용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탁월한 경영상의 노하우와 수펙스(SUPEX : Super Excellent)라는 독특한 실천기법을 통해 세계화시대에 일찍부터 대비해왔던 것이다.

경쟁력강화 1차 책임은 기업

우루과이라운드형상 타결로 경제계가 무한경쟁시대를 맞은 1994년초 최 회장은 여러 언론 대담을 통해 ‘경제전쟁시대, 경쟁력만이 생존전략’이라는 주장을 거듭 펼쳤다.

이현재(李賢宰)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전 국무총리)과의 대담에서 최회장은 국제화의 파고(波高)를 체질개선으로 극복하자고 강조했다.

“과거 내셔널리즘이 팽배했던 시절에는 공산품에 대한 관세장벽, 수입허가제 등으로 국내산업을 보호했다. 수출품에 대해서도 수출금리, 외한대부, 차관 등의 정부지원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진 만큼 기업입장에서 보면 생존의 문제가 달려있다. 기술개발과 처절한 시장개척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간파했다.

“G5, G7이란 것에서 알 수 있듯 가장 발달된 나라들이 하나의 시장으로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 G10, G15, 나아가 G20까지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선진국이 경제정책에 관해 내정간섭까지 서슴치 않고 있는데 이는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품, 자본,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에서 우리같은 개발도상국가들은 경쟁하기가 더욱 버거움을 최 회장은 일찍부터 간파해왔다. 하지만 경쟁력 강화의 1차적 책임은 기업에 있음도 강조했다.

당시 범재계 차원의 국가경쟁력 강화 민간위원회를 구성했던 것도 정부에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기업이 먼저 경영혁신을 통해 내부의 비효율요소를 없애 경쟁력을 강화해보자는 뜻에서 였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고금리, 고임금, 고지가, 행정 국제, 사회간접자본 미비 등 기업외적 여건의 개선도 시급함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고비용 개혁 보며 회상되는 분

고인은 SK그룹의 회장이자 재계의 총수자리에서 예상 밖의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정부에 대고 하고싶은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 분이었다. 배짱이기도 했고 어떤 자부심과 사명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SK그룹 경영에 앞서가는 신경영을 도입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업의 세계화를 이끈 공신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뜻밖에도 최 회장은 일찍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선각자는 빨리 떠나고 세계화는 늦게 시작되어 한참 골몰하는 형국이다.

개혁에 따른 비싼 비용을 물고 있는 지금 새삼 고인이 회상되는 것이 이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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