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1등이 1등답게 살라

글/ 趙烋偵(조휴정 KBS 라디오 프로듀서)

1등들은 지금,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며칠전 어떤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의례, 우리나라는 왜 이 모양인가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자리가 되기 쉽상인데 그 날도 여지없이 암울한 화제로 분위기가 몰아졌다.

그런데 한 사람이 다 지난 모 환경운동가 스캔들을 이야기하면서 전혀 엉뚱한(?) 해석을 하는 게 아닌가. 즉, 그런 사람이 이 사회의 지도층입네 했던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었다.

무슨 운동입네 하는 사람치고 명문 대학 나온 사람이 드물고 설사 좋은 대학을 나왔다해도 그 계통에선 성공을 못해서 울분이 많은 사람들이다, 자기 영역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이류들이 사회운동을 하니 뭐 제대로 하는 게 없다, 등등 듣고 있기가 낯 뜨거운 수준의 아전인수격 주장을 폈다.

그러면서 결론은 어찌 되었든 똑똑한 사람, 일류대학 나온 사람이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뭘 해도 해야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자리에 있었던 8명의 면면을 보니 나 빼놓곤 모두 최고 대학을 나온 탓인지 모두들 고개를 깊숙이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이어서 우리나라가 일류병에 걸렸다고들 난리지만 일류를 나온 사람들이 잘먹고 잘사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사’자 붙은 남자가 열쇠 3개 아니라 30개를 받으면 뭐가 어떠냐는 말도 나왔다.

평상시 봤을 때는 나름대로 인격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들이 누리는 기득권에 관해서만은 예외없이 똘똘 뭉쳐 있는 것을 보고 너무 실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래, 1등은 똑똑하고 잘난 것은 맞다.

그러나 과연 우리 사회에서 1등들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1등들이여, 제발 1등답게 살아라!

제몫찾기만 잘하면 다인가.

어떤 인터뷰 기사에서 우리 사회에서 두루 존경받는 성직자 몇 분이 한결같이 학교성적은 신통치 않았다고 고백하시는 것을 보았다.

부끄러울 것도 이상할 것도 전혀 없는 일이다.

공부를 잘 한다는 것과 인성이 좋다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뿐아니라 우리 사회처럼 극단적으로 공부에 치중하는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공부 때문에 다른 중요한 것들을 놓치기 쉽상이다.

늘 좋은 일을 하시는 어떤 종교지도자께서 들려주신 말씀 한가지.

내로라하는 무슨 고등학교 동문회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후원해주겠다해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찾아가 보면 으리으리한 식당에서 밥은 사주지만 그 밥값의 반의 반도 후원회비로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디어디에 돈을 좀 내놓은 것은 ‘구색맞추기’에 지나지 않는 셈인 것이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아와도 사진 찍기에 바쁘지 정작 어려운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펴보는 것조차 하지 않고 휑하니 가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반면 본인 먹고 살기도 어려워보이는 사람들은 평소 안먹고 안쓰고 모은 돈을 흔쾌히 내놓으면서도 늘 약소하다며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하기 힘든 자원봉사활동도 ‘전 돈이 없어서 이런 것밖에 못해요’하면서 땀 뻘뻘 흘리며 이불 빨래 다 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들 목욕시켜주고 뒷바라지 해주고 한다는 실제상황을 말씀해주셨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는 인재만큼 귀한 자원은 없을 것이다.

누구들 말대로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된 것도 똑똑한 사람들 덕분일지 모른다.

1등들은 외치지 않는가,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1%의 소수 엘리트라고.

그러나 정말 그럴까싶다.

의문이 드는 정도가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심각하다면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똑똑하지 못해서 좋은 대학도 못나오고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를 나쁘게 할 힘도 없고 1등들이 인정하는 바와 같아 그럴 머리도 없다.

그래도 1등이 비교적 적은 집단이어서 순진하게, 우직하게 우리 사회 좀 바꿔보자고 돈 없고 명예없는 일들에 몰리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를 망치게 하는 사람들이 어디 학벌이 딸려서 그러고 있겠는가.

결국은 인간 됨됨이가…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과연 우리 사회의 1등들은 조금이라도 공동체적인 삶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왜 그게 중요하냐고. 정말 몰라서 묻는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 환자가 아파도 그냥 거리에서 죽어가는 현실, 경제난, 교육문제, 환경문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모든 사건들의 핵심이 뭔가, 결국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 아닌가.

어떻게든 나누고 함께 살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바꾸자고 애를 쓰는 순수한 사람들을 마음껏 비웃으며 공부 하나 잘한다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누리고 받은 모든 혜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1등들.

단돈 만원도 기부할 줄 모르면서 그런 동정심이 세상을 바꾸면 얼마나 바꾸겠냐고 비웃지만 자기 자식 공부시키는데는 몇백만원도 껌값처럼 화끈하게 쓸 줄 아는 1등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꼭 일류대학 안나온 것들이 이런 글 쓴다고 어디 계란으로 바위를 쳐라, 배짱 두둑한 1등들이여, 제발 1등답게 살아라.

1등이기에 누렸던 환희가 밝고 화려했기에 그대들의 실패는 더욱 비참할 것이다.

영원한 권력이 어디 있으며 영원한 1등이 어디 있을까.

결국 남는 것은, 인간됨됨이라는 것, 이제 우린 알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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