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좋은 아버지 되세요

글/ 金慈英 (김자영 아나운서)

아버지 안 오시는 부모의 시간

내가 요즘 진행하고 있는 ‘부모의 시간’이라는 교육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아이들을 키우는데 필요한 정보들을 전문가로부터 전해 듣고 또 직접 부모들에게 상담을 해주는 교육 상담 방송이다.

프로그램 제목도 그렇지만, 방송 내내 ‘부모님’ 이란 단어를 입에 많이 올리게 된다. ‘부모님들께서 도와 주셔야겠군요’ ‘아이가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는 부모님들께서는 상담을 청해주시기 바랍니다’ 등등의 식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부모님이 아닌 어머니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어머니들이 주로 참여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어머님이 아이의 그런 면을 계속 잘 챙겨주셔야 하겠네요’ ‘그동안 어머니가 많이 힘드셨겠어요’ 식의 이야기들이 훨씬 자연스럽다. ‘부모의 시간’이라고 문패는 달았지만 방문해 주시는 아버지들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 이유야 긴 설명이 따로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또 그리 크게 드러내놓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내 나름대로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틈나는 대로 ‘어머님’ 대신에 ‘부모님’ 또는 ‘아버지, 어머니들’이란 표현을 골라 쓰려고 하는 점이다. 나 역시 아이를 거의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엄마로서, 자녀 교육의 공동책임에서 자꾸 뒤로 처지는 남편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아내로서 보이는 작은 몸짓이라고나 할까.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규정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한다. 내가 고른 단어, ‘어머니’가 아닌 ‘부모님’이라는 호칭을 통해 자녀교육에서 멀어져 있는 아버지들의 무의식 속에서 책임감을 일깨우고 싶은 욕심이기도 하다.

좋은 아버지는 자녀 친구 이름 기억한다

얼마 전 ‘부모의 시간’에서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임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이 단체들이 캠페인을 통해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작은 행동지침들을 제시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는 개인적으로도 평소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여겼던 내용이어서 퍽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특히 거창하지 않고,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조금만 생각의 방향을 틀면 실천하기 쉬운 몇 가지 제안들을 이 지면을 통해 나눠보겠다.

①자녀의 친구 이름을 기억한다. - 자녀가 어느 정도 크면, 아이에게 부모 이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존재가 친구일 것이다. 친구를 통해 부모가 근접하기 어려운 아이의 또 다른 세계를 노크하는 것이다. “영민아, 네 친구 승호는 아직도 컴퓨터 게이머가 되겠다고 하니? 너 걔랑 게임 붙으면 맨날 깨지겠다?” 이런 식으로 시작해서 내 아이의 일상사로 들어 가보면 훨씬 부드럽게 이야기가 풀리지 않을까?

②자녀의 장점을 이야기하기 - 어쩌다 아이 얼굴을 보는 아버지. 이때다 싶어 평소에 맘에 걸렸던 것들에 대해 쏟아 붓는다. 머리 모양새가 왜 그러니? 엄마가 그러는데 지난번 성적이 엉망이라며? 너 요즘 어디다 정신 팔고 다니냐? 서먹서먹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가 아이의 단점만 얘기한다면 당연히 관계는 악화될 것이다. 엄마는 좋으나 싫으나 아이와 부대끼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다. 잔소리도 많고 꾸중도 많지만 칭찬하고 격려해줄 기회도 엄마들은 충분하다. 아버지들이여! 우리 아이의 장점 세 가지 정도는 늘 마음에 담고 다니고 틈틈이 그것을 꺼내어 아이를 북돋아 주는 도구로 사용하라.

③자녀와 식사할 때 신문이나 텔레비전 보지 않기 - 나 역시 개인적으로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고 남편이 실천하도록 요구하는 부분이다. 온가족이 모이는 거의 유일한 시간, 가장 많은 이야기를 허물없이 나눌 수 있는 시간, 식사시간은 정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다. 만약 아버지가 식탁에서 신문을 들고 있다면 밥상머리에서 게임기에 머리 처박고 있는 아이와 다를 바 없다. 식사시간에 버릇처럼 텔레비전이 켜져 있다면, 이는 가정의 가장 신성한 시간을 모독하는 일이 된다.

자녀 앞에서 아내도 존중한다

④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녀에게 이야기해주기 - 옛날에는 아버지가 어떻게 노동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지 아이들이 가까이에서 다 보고 자랐다. 학교 다니기 꾀가 나고 딴 생각이 들다가도 아버지가 그 고된 농사일로 마련한 월사금 생각하면 마음이 다잡아지지 않았을까? 요즘은 아버지가 종일 나가서 뭘 하시는지 아이도 알려고 하지 않고 아버지 역시 ‘너는 몰라도 돼!’ 식이다. 부모자식 사이도 인간관계의 하나인데, 아버지가 자신의 쓴 맛 단 맛 나는 일 얘기를 들려주면 아이가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털어놓기가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의 실패담을 통해서 아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로 클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딸 가진 아버지들이여. 아버지와 가깝게 자란 딸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한 연구결과에 주목하시길! 더불어 우리 사회가 자녀들이 아버지들의 직장생활을 참관하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 어떨까 싶다.

⑤아내와 의견이 달라도 자녀 앞에서 아내를 존중하기 - 아이가 보는 앞에서 “오늘도 술먹고 늦게 들어오려면 아예 들어오지도 말아욧!” 하고 남편을 무시하는 아내. 하루 종일 아이의 뒤치닥거리를 혼자 도맡아한 아내에게 아이가 옆에 있는데도, “당신 점점 무식해져서 큰일이야. 그래서야 애들 교육이 되겠어?” 하는 남편. 극단적인 상황을 그려봤지만, 가만히 우리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서로 실수를 범하기 쉬운 부분인 것 같다. 적어도 아이들 앞에서는 아내를 여왕으로 모셔야 남편의 부재중에 가정의 위임통치가 가능할 것이다. 그밖에도 ⑥자녀의 잘못에 대해 서로 책임을 전가하지 않기 ⑦자녀의 선생님께 감사의 전화, 편지 보내기 ⑧지역사회의 교육환경개선에 관심 가지기(근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신도시 러브호텔 난립 문제의 경우를 보면 건축허가 과정에 개입한 분들은 대개가 아버지이고 반대운동으로 피켓을 들고나선 사람들은 대개가 어머니들이었다.) 등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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