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경영컬럼]

天職(천직)의식이 아쉽다

글 丁鍾得(정종득 벽산건설주 대표이사 사장)

은행, 상사 거쳐 건설회사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산업은행에 입행했다.

급여는 타직장에 비하여 좋은 편이었으나 그저 평범한 은행원으로 11년을 보내다 보니 변화가 없는 은행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차 70년 대부터 급속한 경제 개발로 기업체의 성장에 따라 인력 수요가 급팽창하다보니 금융권에서 기업체로 인력의 대이동이 있었고 은행원의 봉급이 깎여 금융 기관의 메리트가 상대적으로 떨어져 은행을 떠나게 되었다.

종합 상사에 6년 근무 후 상과 대학 출신으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건설 회사에 20년 가까이 근무하다 보니 사장 자리에 올라 7년이 흘러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렀다. 이것이 내 운명이고 팔자이려니 마음먹고 건설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을 다하면 이것도 인생의 보람이고 국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우리 주위에 보면 장·차관이나 정부 고위직을 역임하고 나서 그 나름대로 남은 인생을 뜻있게 보내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과거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한 번 그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서 정권이 바뀌어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신문에 열심히 글을 기고하고 무슨 연구소니 연구원을 만들어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려고 하는 모습은 정말 애처롭게 보인다.

교수출신 장관, 총리의 경우

대학교수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자기 분야의 학문 연구에 전념하는 것이 본분이다. 대학 교수라고 사회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요즈음의 세풍은 한심스럽다. 세미나 강의, 기업체 출장 강의, 신문기고, 관변단체의 위원 또는 자문위원, 기업체 고문, 사외이사, 시민단체 참여 등도 부족하여 정당 활동에 기웃거리는 교수도 있다. 교수가 본업인지 부업인지 알 수가 없다.

정부 수립 후 수많은 교수 출신들이 장관이나 총리를 거쳐갔다. 그 나름대로 학계에서 존경과 실력을 인정받는 분들이 관직에 들어갔다가 실패하고 오히려 이름을 더럽힌 경우도 많았다. 본인의 불행이요 국가적으로는 인재의 오용이다. 서울대학교의 총장이 문교부 장관에 거명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간다.

일본에서는 동경대 총장이 수상보다 더 명예가 있는 직책이라고 한다.

기업하는 사람도 그렇다. 기업을 창업하거나 경영자가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명예요 성공이다. 그런데도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딴 생각을 하는 기업인들이 많다. 기업 경영에 전념하여도 살아남기 힘든 경쟁 시대에 기업하는 사람이 정치에 한 눈을 팔 수가 있는가. 만나는 사람마다 명함을 받아보면 무슨 당의 부위원장, 재정위원, 후원회 회장 등 어찌 그리 정당 관계 직함이 많은지 모르겠다.

그것도 집권 여당이 바뀔 때마다 정당 명칭도 달라진다. 그렇지 않고는 기업을 할 수 없는 이 세상 풍토 때문인지 본인들이 그것을 이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두가 짜증나고 한심스러운 일들이다.

옛선비들은 落鄕(낙향) 후 書堂(서당)차렸다.

우리 선조들은 벼슬을 그만두면 낙향하여 서당을 차리고 후학을 가르쳤다.

시골집에서 농사도 돌보고 책도 읽으며 지방의 정신적 지주로서 부임하는 관리들이 함부로 백성들을 대하지 못하도록 목민의 감시자 역할도 했다.

프랑스의 지스카르 데스탱은 대통령을 그만두고 자기 고향에 내려가 시장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지방 자치제가 발전하려면 서울에서 활동했던 고위 관리나 사회 지도층이 또 한 번 감투를 쓰겠다는 미련을 버리고 시골에 내려가 고향의 발전을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오직 학문 연구에 몰두하고 그러면서도 교수다운 외고집과 자존심이 강한 그런 교수님을 만나고 싶다. 더듬는 말투, 반백의 머리에 낡은 양복을 입은 교수님이 그립다면 현실을 모르는 바보일까. 세상 물정에 닳고 닳은 언변이 좋은 말끔한 차림의 교수들보다는 시골 선생님 같은 교수가 더 존경스럽다.

언론인 정계변신의 경우

우리나라에도 훌륭하고 존경받는 기업인들이 많이 있으나 시장통의 장사꾼보다 못한 사람들이 기업체 회장이다 사장이다 하고 세상을 꾸정커리고 있다.

기업은 경쟁에 이겨야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돈을 버는 방법과 과정이 올발라야 하고, 번 돈을 좋은데 쓸 줄 알아야 한다. 미국의 프로테스탄티즘이 그렇다. 경영자는 기업이라는 사회적 공유 재산을 관리하는 공직자이므로 기업경영은 공인으로서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오늘 날 언론의 역할은 참으로 눈부시다. 사회 각 부문의 감시자로서 또한 여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선도자로서 그 중요성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부문에 종사하는 언론인들이 본업을 버리고 딴 직업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인들이라고 정치를 못하라는 법은 없다. 국회의원도 되고 기업에 참여하여 돈도 벌고 관직에 나가 벼슬도 하고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다. 외길 인생을 살아온 백발의 노기자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얼마 전 70이 넘어 백악관 출입기자를 그만 둔 미국 노여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미국이란 나라의 강한 점을 느꼈다.

나는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로타리클럽 활동에서 각계 각층의 사람들과 교유를 한다. 화가·배우·가수 ·디자이너·의사·변호사·교수 모두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우선 재미가 있고 모르는 분야를 이해하게 된다.

사회적 성공의 기준이 벼슬이나 돈이 아니고 명예를 제일로 치는 사회 어떤 직업이든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면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세상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우리 모두 자기 직업을 하나님이 주신 천직이라 생각하고 자기 일에 보람을 느끼고 분수를 알며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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