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과학기기로 그룹 축성]

외골수 기술 경영

DI그룹 朴基億(박기억) 회장

“봉사와 희생의 세월 감사”


朴基億 (박기억 DI회장)

중학시절의 과학기기 수입상

주식회사 디아이(DI) 그리고 디아이(DI)그룹이 꽤 유명해졌다.

경제기자경력이 제법 오래지만 과거엔 듣지 못했던 회사다. 창업자인 박기억(朴基億) 회장도 유명 경영인으로 소문이 났었지만 만날 기회가 없었던 분이다.

무슨 일로 최근에 들어 DI그룹이 화제에 오르고 박기억 회장의 경영이 평가되고 있을까.

경영대학원 동창모임에서 처음 만난 박 회장은 알고 보니 기억되는 분이다. 끈질기게 외통수로 살아온 그 분이 DI그룹의 얼굴임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학창시절 과학기재 수입상사로 알려졌던 동일과학(東一科學) 그리고 일선기자 시설 수출의 날 행사때 중견기업으로 수출상을 받았던 동일교역(東一交易)이나 동일상사(東一商社) 대표가 바로 박기억 회장이었다.

그러니까 DI그룹은 동일(東一)상사를 영문으로 표기했을 뿐이다. 세월이 바뀌고 기업규모가 커지고 방계회사가 늘어나 그룹으로 묶어 투자자들에게 기업을 설명코자 하니 영문표기 CI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박 회장의 경영이 주목받게 된 것은 IMF 이후의 새로운 기업환경과 관련, 일찍부터 투명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 왔기 때문이라 믿어진다.

올해로서 DI그룹이 창립 45주년을 맞았다. 오늘의 60대가 중학교에 다닐 때인 1955년 6월에 동일상사를 설립, 과학기기를 수입했으니 벌써 45년이 지났다.

그리고 동일상사가 수입한 과학기기로 공부했던 중학생들은 사회에 진출하여 필생의 직업을 다 마치고 이미 정년으로 퇴직했다.

DI그룹과 창업자인 박 회장 이야기를 취재한 소감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6·25 피난시절의 팔자개편

박기억 회장의 경력은 특이한 점이 많다. 1925년 평남 강서 출생이니 월남한 기업인이다. 6·25때 경남 마산으로 피난, 이것저것 생업을 찾다가 동일과학진흥을 창립하고 동일교역으로 무역업도 벌였으며 지난 96년 DI그룹으로 개칭하며 회장에 취임했다.

박 회장은 50년 2월 평양의대 약학부를 졸업하고 피난시절을 거쳐 약사시험에 합격(면허 408호)했으니 약사로 개업했어야 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전쟁통에 약사의 길이 아닌 과학기기전문으로 남다른 평생을 개척하게 되었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는 운명이었다. 피난지 마산에서 교사로 채용되어 교편을 잡고 있던 박 교사는 가내수공업으로 파리약을 제조했다. 위생상태가 불결했던 시절 파리약은 필수품으로 인식되었었다.

이 무렵 박 교사는 군의관으로 병역의무를 짧게 치렀다. 군의학교 소정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중위로 임관된 후 곧장 예비역으로 편입되었었다.

그 뒤 박 교사는 부산에 있던 한국곡산의 양조사업에 참여하여 전공분야가 아닌 과학기기로 팔자를 바꾸는 운명을 맞게 된다.

한국곡산 영업전무로 활동하면서 당시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는 10만달러의 외화를 배정 받았다. FAO원조자금을 배정받고 보니 뜻밖에도 과학기기분야로 용도가 제한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약사 박기억으로 하여금 필생의 외골수 길을 인도한 계기였다.

이때 한국곡산을 떠나 상경하여 독립한 사업이 오늘의 DI그룹 모태인 동일과학진흥 주식회사였다. 1955년 6월, 이 시절 상호에 과학을 붙여 장사가 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약사로서 기초과학분야의 관심과 지식이 풍부했던 터라 기기를 수입하여 고객을 찾아다니며 판매할 수가 있었다. 그 당시 지금은 은퇴하여 건강특강을 열심히 하고 있는 홍문화(洪文和) 서울약대 명예교수 등이 새파란 약학도였던 것으로 박 회장은 회고한다.

자산을 상속과 사회환원으로 구분

박 회장의 과학기기 수입사업은 발로 뛰며 고객을 발굴하고 애프터서비스로 고객을 감동시키는 사업이었다.

오늘의 DI그룹이 유명재벌은 못되지만 차근차근 착실히 성장한 배경이 그것이었다.

동일(東一)이라는 상호에 특별한 작명논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쉬운 말로 동양 제일이라는 말을 줄여 동일이라 붙였다고 한다.

동일상사가 자리를 잡으면서 무역에 눈을 돌려 동일교역으로 개칭하고 대일 수출을 목적으로 웅천 동일석재를 설립하여 70년대를 성장의 해로 보냈다.

그리고 80년대에 접어들어 계열사인 대한해양기기를 동일반도체장비주식회사로 개편하고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고 90년대에는 아주프라스틱을 인수하고 전자사업부와 CATV, 그리고 엔지니어링사업에도 참여했다.

이렇게 해서 DI그룹은 반도체장비, 무선통신장비, 환경 및 빙축열설비, 정보통신 등 과학기술분야 전문그룹의 지위를 구축하게 되었다.

DI그룹이 성장해 온 과정에는 조세의 날에 모범납세자, 무역의 날에는 수출유공자로서 훈포장을 받은 기록이 많다. 또한 96년 주식을 상장한 이후에는 사업영역을 미래성장분야로 확대하고 선진경영시스템으로 개편하여 투명경영, 정도경영으로 투자자의 신뢰를 쌓아 올릴 수 있었다.

경영체제는 모기업인 주식회사 DI를 전문경영인인 최명배 사장에게 맡기고 후계자인 장남 박원호(朴元浩) 부회장은 계열사를 통괄하도록 구분시켰다.

박 회장은 아들에게 일부 경영권을 이양하면서 재산의 일부 상속과 일부 사회환원의 원칙을 확립시켜 놓았다. 가족회의를 통해 재산분배를 논의할 때 교육가집안 출신인 맏며느리가 재산의 일부 사회환원 원칙에 적극 찬성하자 아무런 반대가 없이 통과되었노라고 소박하게 웃으면서 설명한다.

과학기술은 外道 안 통해

박 회장은 “길이 아니면 걷지 말라”는 생활신조를 실천해 왔다.

평생의 사업분야가 과학이고 기술이기 때문일까. 그의 사고와 행동규범에는 외도(外道)나 지름길이 없었다.

80년대 중반 강남구 논현동에 빌딩을 신축후 은행점포를 유치할 때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둘째 며느리댁인 유명은행가 송병순 행장의 요청으로 지점개설을 진행할 때 실무자들의 입을 통해 사돈댁끼리 특혜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게 되었다. 이를 뒤늦게 들은 박 회장은 당장 지점입주를 거절하고 다른 은행지점으로 바꾸고 말았다.

박 회장은 장학사업을 비롯한 사회봉사활동에 신바람을 느낀다.

평양제일공업, 평양통신전문학교 총동창회 회장을 15년이나 맡아왔고 새마을중앙협의회 이북5도회장, 평남장학회 이사장, 한국재활(再活)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고대경영대학원 서울대행정대학원을 수료한 후 교우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고대경영포럼대상을 받고 노인복지부문 국무총리상, 사회봉사부문 국민훈장 목련장도 받았다.

또한 사단법인 한국생화학회를 꾸준히 지원해 오다가 3년 전부터는 이 분야 최우수논문을 선정, 시상하는 동헌(東軒)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다.

박 회장의 로타리활동은 69년이래 30년을 헤아린다. 지금은 국제로타리 2540지구대회 RI회장대리에다 한국로타리 장학문화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다.

50만불 死後영구기금 기증

박 회장의 로타리활동은 유언에 의해 사후 영구(永久)기금으로 50만달러를 기증키로 소정의 법률적 공증절차를 마쳐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이는 RI재단의 사후 기부행위를 규정하고 있는 Beguest Society제도 창설이후 한국인으로서는 첫 번째 참여기록이다.

이같은 사실은 박 회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난 5월 방한했던 데블린 차기 RI회장 환영오찬회장에서 민병국(閔丙國) 재단관리위원의 공표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이 기금의 수익은 한국인출신 장애인의 재활사업에만 사용토록 규정에 명시해 놓았다.

민병국 위원도 사후 영구기금으로 10만달러를 기부하며 한국인출신 외국유학생의 장학금으로 용도를 명시했다.

박 회장은 지난 45년간 창업과 성장과정을 회고하는 자리에서 기업인으로서 성공과 실패를 당대의 경영지표로서만 평가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경기가 좋아 기업이 급속히 성장할 때도 있고 불경기로 기업이 위축될 때도 있는 법이다. 기업가는 호경기때 자만이나 과신하지 말고 불경기 때 쉽게 좌절해서도 안될 일이다. 기업이 영속적으로 발전하고 후계자에 의해 발전이 승계되어야만 책임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DI그룹의 경우도 오늘보다도 내일, 자신이 책임진 오늘보다 후계자가 책임질 내일의 DI가 국가와 사회에 다각도로 기여하는 기업으로 발전하기를 소망한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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