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公益과 집단이기주의

시민사회 내부 조정력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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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李榮蘭(이영란 숙명여대 교수, 법학과)

이익집단 활동은 헌법상 기본권

요즈음 의사들의 집단휴폐업사태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면서 근래에 우리가 자주 목격하게 되는 이익집단행동에 대한 평가 즉 ‘이익집단행동을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사회에서 이익집단의 구성은 자연발생적인 것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개인주의를 본질로 하는 민주주의사회에서 각 개인이 제각기 백가쟁명(百家爭鳴), 백화제방(百花齊放) 식의 행위를 하는 것보다는 동일한 이해관련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연구하고 협의해서 공동으로 목소리를 내는 집단행동이 더 효과적이고 영향력을 미치는 범위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이익집단들이 건전하고 바람직한 활동을 하는 경우에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지대하다. 요컨대 이익집단의 활동 그 자체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실현의 바람직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익집단의 발생이 민주사회에서 자연발생적인 것이라고 해서 이들 집단의 행동이 모두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본질 어긋나는 행동

첫째 집단이기주의는 아무리 합법적 의견표출방법에 의한다 할지라도 민주주의의 본질에 반한다. 현대민주주의사회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개인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과 조율의 방법으로 서로의 의견을 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집단이기주의적 행동은 민주주의의 본질인 대화와 타협을 모색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앞세우고 자기이익만 극대화하려고 하고 자기이익과 상충되는 다른 이해관계가 있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본질을 해치는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집단이기주의는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익집단 상호 간에 얼마든지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 정부가 개입한다. 민주주의역사는 국가권력과 정부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의 확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시민들 또는 집단들 스스로가 사회불안요소를 가진 갈등을 야기함으로써 결국 정부개입을 자초한다면 시민사회 스스로 자율성의 확대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입장에서 보면 시민 스스로 해결해야 할 부분까지 정부가 개입해야 하므로 정부의 부담을 증가시켜 더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추진을 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특정집단행동이 집단이기주의인가 아닌가의 판단은 몇 가지 근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우선 법을 위반하는 집단행동은 일단 집단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법은 사회전체의 합의적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법을 어기는 것은 반사회적 행위로써 지탄받아 마땅하다. 이익집단행동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요즈음 우리 주변의 집단이기주의는 바로 법을 위반하고 법을 무시하면서 집단의 힘으로 자기이익을 관철하려는데 제일차적 문제가 있다.

시민이익 침해 집단행동은 반윤리

다음으로 법을 위반하지 않은 집단행동은 물론 형사처벌의 대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무조건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일 뿐이다. 따라서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하여도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가 있다. 성숙된 민주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개인이건 집단이건 민주주의의식을 가져야 하고 사회공동체에 대하여 가지는 윤리와 도덕을 지켜야 한다. 의사는 의사로서의 윤리, 변호사는 변호사로서의 윤리, 약사는 약사로서의 윤리, 경영자는 경영자로서의 윤리, 근로자는 근로자로서의 윤리가 있다.

즉 사회 각 분야의 서로 다른 직업들은 전체사회의 발전을 위해 순기능을 할 때 비로소 그들의 이익을 보호받을 수 있다. 각 직업이 가지는 윤리를 실천하여야만 공동체의 평화와 복지를 유지할 수 있으며, 특히 전문직종사자로써 사회지도층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집단은 더더욱 고수준의 윤리와 덕목을 지켜야 한다. 이러한 윤리를 외면한 채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그리고 과거의 잘못된 제도나 구조 하에서 누리던 기득권만을 고수하려 한다면 집단 상호간의 갈등은 물론이고 사회불안을 초래하게 된다.

또한 의견표출의 방법이 이익분쟁과 관련없는 다수의 시민이나 제삼자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자기집단이익을 관철하려는 행동으로 나타날 때도 집단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예컨대 교통체증이나 시민생활의 불편과 같은 공익의 침해정도가 행동하는 그 집단의 이익보다 크다면 그런 경우에 시민사회로부터 집단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의 창의와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복지국가를 이루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익집단을 건전한 방향으로 육성하고 의견표출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이익집단들은 자율적 조정기능이 약하고, 집단의견표출방법이 미숙하여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집단 간의 이익상충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갈등과 분쟁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으며, 어떻게 집단의견표출방법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이익분쟁 조정기구 필요하다

제일차적으로, 집단행동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이 합법적이고 무엇이 불법적인가를 분명하게 하고 법의 집행을 엄정하게 해야 집단들의 질서의식이 확립될 수 있다. 집단이기주의는 일차적으로 법질서의 부재에서 발생되는 사회현상이기 때문이다. 원칙이 없는 법집행, 그때그때 모면하기 위한 편의적이고 객관성이 결여된 정부의 법집행이 이런 문제를 자주 어렵게 하고 있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구조의 틀을 개선해야 하고,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개혁되어야만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번 의약분업정책결정과정을 보더라도 우리 정부의 의사결정구조의 틀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를 알 수 있으며, 일방통행식 의사결정과정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부부터 의사결정방식을 개선해야 하고, 집단의견을 진지하게 수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형식적 공청회, 형식적 의견수렴은 당사자들로 하여금 기대이익을 부풀리기 때문에 안하느니만 못하다. 이번 의료분쟁은 의료보험제도 시행초기부터 누적된 문제점이 표출된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의약분업제도 도입시에 의약분업을 하더라도 의료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겠다던가 너무나 불합리한 의료수가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의사들의 협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정부의 안일한 태도가 문제를 야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셋째, 조정을 위한 사회적 메커니즘을 형성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노사분쟁 뿐 아니라 여러 형태의 집단이익분쟁을 객관적인 제삼자의 조정에 맡기거나 제삼자의 분석결과에 의하여 조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정을 위한 절차와 관례가 확립되어 있다. 그래서 대학에 갈등조정학과가 있고 전문연구소도 있고 Conflict Resolution이라는 journal도 있다. 우리 학계도 학문적 연구를 통하여 조정을 위한 이론을 개발하여 제공해야 한다. 또한 권위있는 조정자를 양성하여야 한다. 조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정자의 권위를 요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권위있는 조정자, 조정기관이 없다.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조정자의 역할을 충분히 잘 수행하고 있음은 좋은 예이다.

정치가 갈등해소 보다 조장

넷째, 정치력부재의 우리 정치현실을 개혁해야 한다. 본래 이익의 구현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실현하는 것이므로 이익집단과 정치는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집단행동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현실에서 정치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무능국회, 무능정치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과거에는 그나마 정치인들이 이익집약·매개기능을 수행하려고 노력한 예가 있었는데 근래에는 여당은 여당대로 여소야대의 현실을 들어 책임회피에 급급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려질까 두려워하는 나머지 침묵하고 있다. 한국의 정당들이야말로 집단이기주의의 극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공정한 여론이 형성되어야 한다. 집단행동의 주체들은 언론과 시민이 모든 집단행동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한다고 주장한다. 또 특정집단에서는 언론이나 정부가 왜곡보도를 함으로써 여론을 오도한다고 불평한다.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일리는 있다고 본다. 실제로 언론이 올바른 사회적 기능 즉 여론의 향방을 대변하는 기능과 여론을 주도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시청률이나 판매율에 좌우되어 흥미위주의 보도나 여론몰이식 보도를 하는 면이 있다. 시민의식도 문제가 있다.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도 아니면 모,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오랜 전통의 이분법적 사고와 지나친 이기적 사고가 남을 배려하고 타협할 수 있는 민주적 사고로 개선되어야 한다. 언론이 이익집단 간의 갈등을 감정적으로 접근한다면 여론을 호도하게 되고 여론이 공정하지 못하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직업간 갈등 자율조정 아쉽다

어느 사회나 다양한 직업과 직종이 있다. 또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대학교수이건 미화원이건 사업가이건 노동자이건 간에 각 직업은 타직업이 침범할 수 없는 고유영역을 가지므로 모든 직업은 존중되어야 한다. 바로 이 원칙이 민주주의 공고화과정에 뚜렷하게 투입되어야 한다. 작금에 나타나고 있는 직업간의 첨예한 갈등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려왔던 의료계(의사, 약사, 한의사)의 갈등현상은 다수 시민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심리적으로 존재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다.

사회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전문직종사자들이 권위와 소득보장을 위하여 투쟁하는 모습을 보일 때 일반 시민들은 삶이 더 고달퍼진다. 전문직업인들이 혹시 그들의 오만 때문에 존경과 권위는 힘이나 제도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민주주의 공고화의 바람은 전문직업에도 예외없이 불어닥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의료사태의 본질은 의사집단만의 문제도 아니고 약사집단만의 문제도 아니다. 갈등이나 분쟁해결의 기제(機制, mechanism)가 발달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수준의 문제다. 무사안일한 정부정책, 무책임한 언론, 상호신뢰할 수 있는 조정자의 부재 등 헤아리기 어려운 한국사회환경의 산물이라고 생각된다.

시민들에게 불편과 고통을 주고 있는 의료분쟁당사자 들에게조차 피해의식이 가중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아직도 가라앉을 줄 모르고 매년 되풀이되는 노사갈등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지금 남북통일을 향한 거보를 내딛고 있다. 이제는 사회 각 분야가 더 슬기로워져야 한다. 이익집단들은 배타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분열적 관행을 근절하고 합리적인 타협과 자율조정을 통해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때다. 그래야 사회적 손실을 줄이고 역동적인 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

이익집단들은 그 목표를 단기적 이익을 확보하는 것에 두기보다는 미래지향적 가치추구에 둘 때 영속성을 가질 수 있다.

그동안 노정되어 온 노사분규, 의약분업갈등과 같은 시민사회 내부의 갈등은 시민사회 내에서 자율적으로 현명하게 해결되기를 바란다. 이런 바람은 일반시민들의 심리적 안정감 확보로 연결되어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한 사회의 평화적 접근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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