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교수컬럼]

환경무시 망국(亡國)정부

큰 도둑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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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宋復 (송부 연세대 교수)

도토리 줍는 신혼댁과 입씨름

매일 아침 7시 반이면 만나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학교 숲을 마구 뒤지며 도토리를 줍는 신촌의 할머니급 아주머니들이다.

“아주머니, 그 도토리 주워가면 다람쥐는 뭘 먹나요”

“사람이 먹어야지, 무슨 다람쥐 생각은 그리해요”

“다람쥐가 굶어 죽으면 사람도 죽어요”

“말도 아닌 소리, 다람쥐 죽는데 왜 사람이 죽어요”

“다람쥐도 못 사는 세상에 사람은 어떻게 살아요”

“우리가 안 주워가도 다른 사람이 죄다 주서가요”

“적어도 대학 교정에 드나드는 사람이면 그 정도 교양은 있어야지요”

이 신촌의 도토리 줍는 아주머니들과 싸우느라 가을도 제대로 만끽 못한채 보내고 있다.

다람쥐 밥이나 훔쳐먹고 사는 아주머니들, 그러고도 뚱뚱해지지 않는다면 그건 신촌 아주머니들이 아니다. 낭만에 좀 젖어 보라. 다람쥐와 노는 천진한 마음을 가져 보라. 그 아름다움을 느껴 보라. 어째서 비곗살이 그토록 붙겠는가. 아무리 산보를 해 봐라. 아무리 체조를 해 봐라. 그 살은 안 빠진다. 아무리 발광을 해도 그 살은 그대로 붙어 있다. 도토리 줍는 아주머니들만 보면 입에서 독설이 술술 나온다. 자제하려 해도 나온다. 온 가을 내내 나온다.

살은 욕심만큼 찐다. 혈압도 욕심만큼 오른다. 남의 것 훔쳐먹는 것만큼 붙고 오른다. 최고의 도적은 자연도적이다. 자연을 훔치는 도적이 가장 큰 도적이다. 남의 집 물건 훔치는 것, 그건 큰 도적이 아니다. 금은 보화는 이 집에 안 있으면 저 집에 있다. 내 집 네 집에도 안 있으면 그 집에 있다. 어디 있으나 있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건 상실도 아니고 파괴도 아니다. 있는 장소만 옮겼을 뿐이다. 물건의 소유주만 바뀌었을 뿐이다.

도토리 주우면 다람쥐 죽는 법

그러나 자연의 도적은 없애는 도적이다. 상실의 도적이고 파괴의 도적이다. 무악에서 도토리를 주우면 무악의 다람쥐가 인왕으로 장소를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무악에서 없어져 버린다. 무악에서 생명을 거두어 버리는 것이다. 인왕에서 도토리 주우면 인왕 다람쥐가 북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인왕에서 죽어 없어진다. 북악에서 도토리를 주우면 북악 다람쥐가 죽고, 노적에서 도토리를 주우면 노적 다람쥐가 죽는다.

이건 굉장한 상실이고 굉장한 파괴다. 이것을 상실이고 파괴로 생각하지 않는 것, 거기에 인간의 무지가 있고, 거기에 인간의 몽매가 있다. 거기에 인간의 잔혹이 있고, 거기에 인간의 학정이 있다. 거기에 인간의 비인간이 있다. 마침내 거기에 인간의 몰락이 있다.

자연을 훼손하는 도적, 자연을 마구 파괴하는 도적, 그 도적만큼 염라대왕 앞에 큰 벌을 받아야 할 도적은 없다. 작은 나뭇가지, 풀 한 포기, 돌맹이 하나라고 우습게 여기는 사람, 그 사람도 큰 벌을 받아야 한다. 하물며 국민의 재산을 생각한답시고 그린벨트를 풀어주다니, 그 사람들은 어떤 벌을 받을까. 미상불 무간 지옥의 떨어짐보다 더 무서운 벌이 내려질 것이다. 환경을 생각지 않는 정부만큼 망국의 정부는 없다.

自然도둑 李泰根(이태근)의 경우

주말의 북한산은 사람으로 붐벼서 사람 때문에 몸살을 한다. 그 붐비는 사람 중에 하재(何在) 이태근(李泰根)이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의 유머와 위트는 타고난 것이어서 산 가운데(山中)를 늘 웃긴다. 그야말로 이백(李白)의 시귀대로 소이부답(笑而不答)이며 심자한(心自閑)이다. 그 유머에 구태어 화답할 필요없이 웃으면 되고, 그 위트에 별다른 마음 기우림 없이 그냥 편히 그냥 한가로이 들으면 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바도 자별했든지 何在라는 호 의미도 ‘왜 사노’이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 기벽(奇癖)이 있다. 그것은 산에 오면 꼭 담배를 몇 가치 태우는 기벽이다. 산에서 담배를 태우는 것이 무슨 기벽이냐고 물을 것이다. 그야 물론 ‘담배 몇 가치쯤이야’ 정도로 쉽게 생각하는 사람에 한에서이고, 산을 사랑하고 산을 아끼는 사람들에겐 담배를 한 가치 태우나 두 가치 태우나 모두 기벽에 속한다. 산이 아니라도 ‘금연구역’만 찾아다니면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언필칭 기벽의 버릇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산은 전체가 금연구역이다. 특히 북한산은 국립공원지대여서 담배한대에 벌금을 적어도 30만원이상 물어야 하는 엄격한 금연구역이다. 이 엄격한 금연구역에 들어서기만 하면 담배를 태우는 사람은 사실은 도토리 줍는 아주머니들 이상으로 자연파괴자며 자연도적이다.

담배도 금연하면 전향자

이 자연도적인 내 친구 何在에게 염라대왕이 나중 큰 벌을 내릴까 두려워서 담배만 꺼내면 제발 태우지 말라고 간청한다. 그러면 으레 하는 소리가 “너는 옛날 담배 안태웠어”하는 반격이다. “태웠지, 그러나 끊은지가 20년이 넘었어”라고 답하면, 그 다음 기필코 내뱉는 말이 “전향자가 더 지독해”이다. 그래 나는 전향자(轉向者)다. 하루에 담배를 3갑이나 태우다 끊은 단연(斷煙)으로의 전향자다. 그러나 그때도 산에서는 태우지 않았다. 산에서 담배를 태우는데 관한 한 나는 결코 전향자가 아니다.

옛날 태우다 지금 안태우면 전향자다. 옛날도 산에선 안태우고 지금도 안태우면 정해진 방향으로 처음부터 정향(定向 orientation)된 정향자(定向者)다. 정향자(定向者)의 소리는 ‘지독한 것’이 전혀 없는 꼭 들어야 하는 소리다. 그럼에도 이 친구 何在는 절대 들으려고 하지 않고 거침없이 산에서 담배를 태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질책하는 사람이 나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징벌하는 사람은 더 더욱 없다. 공원관리자들도 벌금만 공고했지, 관리하거나 감시 혹은 처벌하는 일이 절대로 없다. 담배 피우는 등산객을 보아도 그냥 지나친다. 조금 성의 있는 관리자는 스스로 민망했던지, 담배와 성냥을 내 놓으라고 하다가 듣지 않으면 그냥 가버린다. 왜 잡지 않느냐고 오히려 등산객이 닥달하면 픽 웃어버린다.

큰 도둑은 왜 안 잡아, 못 잡아?

모두가 자연도둑이다. 분명히 법 위반한, 그것도 금은 보화의 절도범보다 더 큰 것을 위반한 큰 도적인데도 아무도 잡지 않는다. 대도불포(大盜不捕) - 너무 큰 도적이라서 잡지 못하는가. 법의 그물이 너무 쏘물어서 멸치 같은 작은 도적만 잡히는가. 그럼 법은 왜 있는가. 왜 법을 공포하는가, 국가로서의 구색(具色)을 갖추기 위함인가. 왜 국민은 그 많은 세금을 내서 경찰을 두고 검찰을 두는가. 왜 국회의원을 뽑고 대통령을 뽑는가. 그 모두가 허영이며 허구인가.

대한민국이야말로 ‘도적공화국’이다. 큰 것을 위반하면 할수록 잡지 않는다. 아니 큰 것과 작은 것을 혼동한다. 작은 것이 큰 것이고 큰 것이 작은 것이다. 자연만큼 큰 것이 없다. 그런데 그것을 가장 하찮은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만큼 좋은 자연을 가진 나라도 없다. 반대로 우리만큼 자연을 소홀히 취급하는 나라도 없다. 마음대로 짓밟고 마음대로 파괴해도,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국립공원관리자도 자연을 찾는 등산객도 모두 말이 없다.

후손에게 물려 줄 것은 저 산이며 강이며 나무며 바위며 물이다. 다람쥐며 토끼며 노루며 여우며 늑대 호랑이… 그런 것이다. 다른 것은 물려주어도 가치가 곧 변한다. 영원무궁토록 그 가치가 간직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자연이다. 더 이상 ‘자연도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도적공화국’ 만세를 불러서는 안 된다.

문득 김남조(金南祚)님의 시(詩)가 떠오른다.

일찌기/ 이름을 버린/ 무명용사나/ 무명성인들 같은/ 나무들/ 바위들/

……… 편안하여라/ 따뜻하여라.

사람이 죽으면/ 산에와 안기는 까닭을/ 오늘에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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