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경제팀 너무 빨리 흔든다

글 / 閔丙文(민병문 내외경제신문 주필)

경제각료의 언론피해 의식

진념 재경부장관의 고뇌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왕 경제팀을 맡았으니 최선을 다해야 하겠으나 흔들어대는 사람이 너무 많다. 기획예산처장관 시절 후학을 가르치고 싶다던 입버릇처럼 진작 학교로 갔으면 편했을 걸 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실제 그는 개각 며칠 전까지 명문 K대 교수로 내정이 돼있었다.

한글날 저녁 5시 30분경 그는 국회에 나가 있다며 필자와 통화했다. 이날 아침 10시경 사무실로 전화했었으니까 7시간 30분정도 지나 리턴 콜이 온 셈이다. 그에게 말했다. 내일까지 리턴 콜을 안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하니 진 장관은 펄쩍 뛰었다. 또 어떻게 쓰려고 그런 생각을 했느냐는 것이다. 일종의 언론피해의식을 농담식으로 말했다.

문득 반성의 느낌이 들었다. 실제 리턴 콜을 하지 않던지, 2, 3일 지나서 왔다면 진 장관이 막강한 재경장관이 되더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는가보다라고 친구들에게 말했을지 몰랐다. ‘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말라’는 격언이 법조인 등 권력층에 해당된다고 믿고 싶었는데 언론인도 예외가 아니지 않는가.

지난 9월 29일 한국언론학회가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한국신문 경제보도 기사의 발전 방안’ 토론회의 사회를 맡았었다. 일종의 공격수로 이 자리의 토론자로 나온 심재철 고려대 교수,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 이두원 연세대 교수, 안민호 숙명여대 교수의 날카로운 경제기사 비판에 방패역인 조선일보 김광현 경제부장, 중앙일보 손병수 경제부장은 자성과 함께 업무의 과중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이날 관심은 우병동 경성대 교수의 주제발표 내용중 일부였다. 최근 경제적 어려움이 IMF 위기 이후 경제보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생겼다는 비판이었다. 이 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반론이 얼마든지 가능하나 그런 측면이 농후한 점 역시 부인키 어렵다. 다행히 박영상 한양대 교수가 언론학회장 임기를 10월 14일로 마치면서 조용히 진행하고 싶어한 토론회라 일반에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내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그냥 타올랐었다.

비판전문교수의 장관교체 주장

진 장관은 사석에서 업무의 30% 정도는 대 언론관계에 쓰이는 것 같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느냐고 공박은 했지만 그게 한국적 현실임을 어쩌랴. 그런 언론이 10일자 일부 논평들을 통해 진 장관을 또 꼬집었다. 내년부터 시행키로 한 예금부분보장제를 진 장관이 ‘1월 1일부터’가 아닌 ‘내년 중’으로 해 말장난을 한다는 요지다. 공직자의 말은 천금과 같다. 그만큼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는 곧 정부 직제개편안에 따라 부총리가 될 신분 아닌가. 비판받을 것은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원래 비판 기능을 주요 사명으로 하는 언론보다 한술 더 떠 새 경제팀을 흔드는 세력이 있다. 그 중심에 정운찬 서울대 교수가 있다. 정 교수는 과거 산업은행 자문위원을 같이 하면서 몇 번 얼굴을 보았었다. 점잖고 정통적 학자로서 아이디어가 풍부하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특히 이 정부 들어서면서 한국은행 총재를 제의받고도 거절했다는 소식에 자못 감동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런 정 교수가 지난 9월 25일자 동아일보에 ‘구조조정만이 주가 살린다’ 제하의 컬럼을 통해 정부 경제 정책을 통렬히 비판, 경제팀의 교체까지 주장했다. 그동안 대우차, 한보철강 등의 해외매각에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국민 마음을 대변한다는 시원함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최근 일어난 경제난관들은 이미 전에 발동이 걸려 누적이 되온 것이다. 새경제팀은 8·6개각으로 들어서 겨우 두달이 됐다. 이 사람들 보고 왜 경제정책을 잘못하느냐고 나가라면 다음에 누가 들어와 수습을 할 것인가. 벌써 경제팀장인 재경장관은 DJ정부 집권 2년8개월여에 네 사람째다. 이규성, 강봉균, 이헌재 장관이 파죽이 되어 보따리를 쌌다. 이헌재 장관은 자신을 육체 노동자라고 했다. 그만큼 챙길 일이 많은 것이다. 진념 장관은 이를 받아 요즘 막노동자를 자처한다. 그런 사람들한테 일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나가라면 사람 갈다 세월 다 보내는 것 아닌가.

경제팀 설 자리가 좁아보인다

정 교수는 지난번 개각 때도 주요 포스트를 맡기려고 정부가 여러모로 애썼지만 본인 고사로 거품이 됐다고 한다. 정말 문제의 본질을 잘 안다고 자부하면 기회가 있을 때 직접 경륜을 펴는 것도 국가와 민족에 봉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김병주 서강대 교수가 힘들게 맡은 금융구조조정의 핵심인 은행평가위원회 위원장직을 수락해달라고 정 교수에게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진 장관의 말(동아일보 9월 30일자)이 거짓이 아니라면 이제 막 업무를 익혀가는 경제팀을 윽박지르기만 할 수는 없다. 훈수꾼은 원래 책임이 없다.

정치쪽의 경제훈계는 웃기지도 않는다. 지난 5일 긴급당정회의에서 같은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관료 보신주의를 질타한 것은 격에 맞지 않는 느낌이다. 물론 잘해보라는 격려 차원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약분쟁, 한빛은행 사건, 선거사범 축소 수사 등으로 꼬이는 정국과 야당의 장외투쟁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거기다 대통령까지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니 경제팀 설 자리는 좁다. 차라리 경제팀장을 1주 1회 독대해주면 힘이 날 것이다. 위임하고 힘을 실어주는게 순리다.

환란위기의 책임을 물어 감옥살이까지 한 YS정부의 마지막 부총리인 비운의 강경식씨는 그의 저서 ‘환란일기’에서 97년 11월 19일 개각을 “불끄는 도중에 소방수를 바꿨다”고 표현한다. 97년 3월 임기 1년도 안남은 정권에 레임덕 현상을 감수하고 이미 한보사건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식물정권이 마지막 부총리로 입각한 소감을 ‘경제에는 임기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경제에는 임기만 없는게 아니라 완벽한 처방도 없다. 여러 변수를 고려한 최선의 방안을 찾는 것이 경제학자와 경제팀의 할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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