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국감은 정부감독의 핵심

글 / 李成春(이성춘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국정감시 의정활동의 꽃

정부를 감독하는 대표적인 장치인 국정감사는 대정부질문과 함께 의정활동의 꽃이다.

21세기의 첫해인 올해 357개 정부부처 산하지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국정감사가 10월 19일부터 시작되어 11월 7일까지 계속되면서 정부가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 1년동안 정부의 각 부처와 중요산하기관의 경영성적, 특히 잘못과 문제점들이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쏟아지면서 국회 안팎은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전 세계에서 입법부가 해마다 새해예산안심의에 앞서 행정부를 정기적으로 감사하는, 이른바 국정감사제도는 한국밖에 없다. 선진민주국들의 의회는 대신 국정조사제도를 각 분야별로 수시로 활발하게 운영한다.

국정감사는 모든 의원들이 참여하여 국정전반에 관해 살피는 것이고 국정조사는 일정한(특정한) 이슈 또는 사안을 중심으로 중점적으로 문제점을 파헤치는 것이다.

그런데 선진국의 의회는 국정조사제도만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국정감사 국정조사 제도를 모두 갖고 있다. 국정전반도 심사·감사하고 그때그때 발생하는 사안이나 특정한 문제에 대해서도 조사활동을 벌이도록, 제도자체는 일단 완비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52년전 단군이래 서구식 민주주의 민주정치에 대한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없었던 제헌국회의원들이 선진국에도 없는 국정감사제도를 고안하여 첫 헌법에 규정한 것을 생각하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53년이래 폐지, 부활의 국감사

국정감사는 1953년 2월 4일 국정감사법이 제정되어 의원전원이 참가하는 일반감사와 상임위 또는 특별위가 중심이 된 특별감사를 규정하여 제3공화국때까지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특별감사의 경우 1960년 후반 사학(私學)특감, 외자도입특감이 대표적이다. 사학특감때 대학들이 등록금을 마구 걷어 축재하고 멋대로 쓰는 영리행위를 한게 아니냐는 의원들의 호된 추궁에 당시 K대의 趙 모 총장은 “너무 억울하다”고 답변 대신 한동안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그러나 국정감사제도는 졸지에 폐지된 적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0월 유신체제를 선포, 유신헌법을 제정할 때 “야당이 국정감사제도를 악용하여 국정운영은 방해하고 있다”는 이유로 폐지했고 이후 전두환시대까지 계속됐다.

결국 국정감사제도는 1987년 여야합의개헌(改憲)으로 16년만에 부활하여 정부감시를 위한 국회의 큰 장치 큰 무기로 활용, 정착되오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얼마전 저명한 한 정치학자가가 신문기고에서 국정감사와 관련, 의원들이 수십건에서 수백건에 이르는 불필요한 자료제출을 요구하고 있고 공무원들은 준비와 수감(受監)으로 근 2개월간 소관업무를 중단해야 하는 폐단이 있으므로 폐지해야 된다는 주장을 읽고 놀란 적이 있다. 평소 공무원들은 매년 감사원 감사, 자체감사, 차상급(次上扱)기관의 감사, 청와대와 총리실의 암행(暗行)감사, 그리고 요즘엔 시민단체의 감시 등으로 감사가 잇따르고 있는데 국정감사까지 겹쳐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라며 국정감사의 폐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토록 여러 차례 중복감사를 받았으면서도 예산의 유용, 권한의 남용, 그리고 부정과 비리는 조금도 줄어들기는커녕 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껍데기 감사, 봐주기 감사에 불과했다는 얘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증인채택부터 여야대결

올해 국정감사는 70여일간 여야대치 정국교착과 함께 정기국회 공전 37일만에 정상화된 데다가 그동안 각종 중요한 이슈들이 부각되어 추궁하는 의원과 조금이라도 덜 밝히려는 장·차관·기관장들과의 뜨거운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감사의 주요이슈는 대북정책, 한빛은행 부정사건, 선거비용 실사개입의혹, 금융 및 대기업의 개혁과 공적자금 투입, 의약분업, 대우자동차 매각지연, 수도권난(亂)개발 등이다. 감사직전 여야는 증인채택문제로 대립하여 한나라당은 임동원 국정원장, 박순용 검찰총장, 박지원(朴智元) 전 문광부 장관, 황장엽(黃長燁) 전 노동당비서 등의 출석을 요구했으나 여당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남북관계가 급변(急變)하고 뜨거운 이슈들이 많아 감사시작 전후에 정부가 제출한 자료를 통해 놀랍고,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즉 그동안 금융권에 지원된 공적자금 중 무려 45조2천억원이 회수불능, 산자부산하 41개 기관의 부채가 80여조원, 광역의원들의 해외연수비가 처음보다 38배 증가, 국회의원 검찰 등 고위층인사 자제들의 병역면제율이 33?43%, 현정부 출범후 직무관련 비리공무원 2배이상 증가, 대북비료지원액(민간모금 4만톤) 기업체에 할당, 실업급여 무자격자 8천22명 적발, 국책은행 해외점포의 부실여신 2조원 육박, 학교급식 식중독자 5년새 8배로 증가 등이다.

失政(실정)추궁과 평화상의 대결

이번 국감에 대해 한나라당은 김대중정부 2년반 동안의 실정(失政)을 집중 추궁하고 부각시키기로 했는데 이는 남북관계의 급진전과 김 대통령의 노벨상수상에 따른 위상제고로 위축되는 야당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고려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민주당은 정책감사를 통해 국정운영의 문제점과 잘못을 지적, 바로 잡는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초·재선 소장의원들은 따질 것은 분명하게 따져야 여당이 국민의 신망을 얻을 수 있다는 자세인데 당지도부가 어느정도 이를 관장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국감은 우리의 의정이 52년 동안 키워온 정부감독·감시장치다. 짧은 기간에 모든 문제를 손댈 수는 없다. 바람몰이, 주마간산(走馬看山)식, 수박겉핥기식의 연례행사가 아니라 의원 각자가 국민이 궁금해하는 한가지 사안씩만이라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규명하는 자세가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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