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부패와 관료주의 근원

글 / 金潤坤 편집위원(김윤곤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열심히 일하고도 욕먹는 나라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는 90개국 중에서 48위라고 국제투명성기구(TI-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최근 발표했다. OECD 회원국이라고 하면서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해를 거듭해도 우리나라의 부패는 전혀 개선될 조짐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기업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인, 전문가들은 관료주의를 언제나 우선적으로 꼽는다.

관료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상관에 대해서는 무조건으로 아부하고 아래 사람에 대하여는 권력을 미끼로 하여 포악한 짓을 자행하며 전체적 획일적 비밀적인 정책을 쓰면서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선적인 행동을 하는 등의 관료정치에 따르는 관료들의 나쁜 태도를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춰 쉽게 설명하자면 좋은 자리에 앉아 있는 관료가 돈 안 갖고 오면 업무처리를 미루며 애 먹이고, 돈 생기면 도장 찍는 풍조를 일컫는다. 그래서 관료주의는 부패를 낳고, 부패는 관료주의를 살찌운다.

부패와 관료주의, 바로 이 두 가지 때문에 우리나라는 우수하고도 일에 욕심이 많은 인적자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 대열에 진입하지 못하고 싱가포르나 스위스처럼 작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나라로 다듬어가지도 못한다. 부패만 일소하고 관료주의만 타파하면 살맛 나는 나라 만들기는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모두가 알면서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그것을 풀기 어려운 숙제로 미루어오기만 했다.

왜 그랬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부패일소가 구호에만 그친 것은 무엇보다도 역대 최고 정치 지도자들이 돈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했기 때문이고, 관료주의 타파가 구두선에만 맴돈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통치제도에 기인한다. 권위주의 정권은 그렇다 치고, 민주화의 화신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두 지도자의 교대 집권은 이 두 가지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호기였으나 우리는 그것을 두 번이나 놓쳤다.

권위주의 정권 스타일 답습

YS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앞으로는 돈을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이제야 부패 없는 세상이 오는가 보다 하는 기대를 걸게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남이 과거에 돈 받은 것을 건드리면서 자신이 과거에 받은 돈은 모두 깨끗한 것이었다고 우기는 바람에 앞으로 한푼도 받지 않았던 것마저 빛을 내지 못했다.

DJ 역시 정략에 따라 남의 정치자금을 수시로 들추면서, 자신은 불법으로 받은 돈은 한푼도 없다고 강변함으로써 냉소적인 반응만 얻었다. 만일 DJ도 YS처럼 취임에 제하여 앞으로는 돈을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공약하고, YS의 실패작을 교훈 삼아 과거에 받은 돈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체 불문에 붙이는 대신 앞으로 받는 것은 엄벌에 처하겠다고 경고해놓고 그것을 엄중히 지켰더라면, 지금쯤은 어떠할까 하고 무의미한 역사의 가정을 해본다.

그리고 관료주의 병폐도 YS나 DJ나 자신들이 그토록 축출의 타깃으로 삼았던 권위주의 정권을 흉내내지 말고, 권위주의 정권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국정을 리드했더라면, 지금쯤은 많이 사라졌을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관료주의 역사는 먼 옛날에까지 거슬려 올라간다. 하지만 현대판 관료주의는 박정희 대통령(PP) 때부터 국정을 정상적인 국가 행정 조직으로 운영하지 않고,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주변의 강력한 기구 기능으로 장악하려 함으로써 심화되어왔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혹은 특별보좌관들의 끗발이 행정부처 장관들보다 더 세고, 그밖에도 막강한 권력기구와 비선(秘線) 조직들이 정상적인 기획-집행 체계에 옥상옥(屋上屋)으로 군림함에 따라, 대통령의 통치력은 절대적이었으나 내부적으로는 갈등과 알력으로 효율이 떨어졌고, 그 사이에 관료주의와 권력형 부패는 심화되었다.

PP가 그렇게 한 것은 독재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화신들이 독재의 통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세계 어느 민주국가에 대통령 혹은 수상의 비서진 직급이나 끗발이 우리나라처럼 높고 센 유례가 있는가?

관료주의 타파해야 민주화

YS나 DJ는 PP가 절대권력을 안정적으로 휘두를 즈음 쿠데타적으로 대권 도전을 선언했던 인물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의 꿈을 실현한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금 분석해보면, 그들은 PP형 독재가 잘못되었다고 보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도 PP처럼 한번 되어 보고싶은 권력욕에서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PP가 만들어놓은 권력기구의 틀을 기본적으로 그대로 유지하면서 PP의 통치스타일을 흉내내는 그들의 민주화 정치철학의 한계는 너무 좁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개혁! 개혁!’ 하면서 왜 정치의 틀을 민주정치 지도자의 스타일로 바꾸지 못하는가? 이제 임기 2년여를 남겨놓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은 늦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국정수행은 정상적인 국가 행정 기구를 통해서 수행하면 훨씬 더 능률적이고 투명해질 수 있다. 미국에서는 장관이 비서라는 뜻의 secretary이다. 총리를 주례보고에서나 접견하고, 장관을 한달에 한번 정도로 통화나 하는 먼 거리에 두지 말고, 수시로 불러 지시하고 보고 받고 의견 물어보는 가까운 거리에 두고 부려먹는 민주주의 본연의 체제로 돌아가야 부패도 일소하고 관료주의도 타파하여 선진으로 나갈 수 있다.

DJ는 혹시 그렇게 하면 금방 레임덕이 될 것을 우려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차피 레임덕은 오게 되어 있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허구이고 가식일 뿐이다. PP의 통치체제를 유지해도 PP처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라는 것을 알았다면, 후임 대통령부터라도 정말 민주정치의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놓고 나가는 것이 철학 있는 대통령의 역사적 임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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