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中産層(중산층)의 불안심리의 불안심리

글 / 李東和(이동화 전 서울신문 주필)

韓國에서 일하고 美國에서 산다

지난 10월 초 미국 여행 중에 L.A.에서 필자와 비슷한 연배의 탤런트 K씨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인사를 나누다보니 그는 그곳에서 집을 얻어 살고 있었다. 최근에도 텔레비전을 통해 왕성히 활동하는 것을 보아온 터라 깜짝 놀라 “언제 은퇴했느냐”고 물으니 “그런 것이 아니고 드라마나 CF 등 일이 있으면 한국에 나가서 일을 하고 오지요”라는 대답이다. 일은 한국에서 하고 미국에서 산다는 것이다.

이 만남을 계기로 잘 살펴보니 한국에서 일하고 미국에서 사는 사람이 꽤 많고 특히 최근에 많이 늘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두 집 살림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 일반 사람은 엄두조차 못 낼 일인데도 왜 이렇게 늘어날까. 어쨌든 미국에 한국사람이 크게 늘어난다는 사실은 교민들의 몇 가지 얘기를 듣고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고교 동창의 얘기. 가까운 친척 여인이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을 조기 유학을 시키겠다고 데려와 L.A.의 學群이 좋다는 곳에 집을 사고 취학을 시켰다. 며칠 후 아들의 학교를 방문했던 이 어머니가 깜짝 놀라 달려와 하소연한 사연은 이렇다. “갑자기 한국 학생이 늘어나 학급마다 50%가 한국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영어를 제대로 배우기는 다 틀렸다. 다음 학기에 한국 학생이 적은 곳으로 옮기겠으니 도와달라”. 그러나 최근 갑자기 늘어난 한국으로부터의 유입 인구 때문에 학군 좋고 한국 학생 적은 곳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 그의 고민 섞인 결론이었다.

다른 한 친척의 얘기. L.A. 코리아타운에 업소 7개를 가진 조그만 상가를 소유하고 있는 그는 임대수입이 늘어났다고 싱글벙글이다. 최근 이곳에 가게 얻기가 어려워져 임대료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요는 수요가 많고 공급은 한정되어 있으니 올라갈 수밖에 없고 그 수요는 한국으로부터 밀려든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곳의 한국이민 취급 변호사들의 업무도 크게 활발해졌다는 현지 한글신문의 보도도 눈에 쏙 들어왔다.

불안 부른 不透明性(부투명성)과 저자세

왜 이렇게 한국인들이 미국에서 살려고 모여들까 하고 생각해보니 한국에 사는 것이 뭔가 불안하기 때문에 도피성 이전을 하는 것이라고는 쉽게 생각이 미쳤다. 그러면 무엇이 불안한가.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부문에 불안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허점 속에 급속한 진전을 보이고 있는 남북관계가 다른 불안 요인에 부채질을 한 것이나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귀국했다.

그리고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니 초중등학교에 다니던 자녀를 미국은 물론 캐나다 호주 등지에 유학시키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미국에 이런 저런 이유로 집을 사놓은 사람도 있었고 누가 봐도 조국에서 뼈를 묻어야될 사람이 곧 이민수속을 하겠다고 해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中産層이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 여러 사람이 늘어놓은 ‘결심의 辯’은 역시 남북 관계의 진전에 대한 불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 요점은 북한 주도의 통일이 될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이는 화해와 협력에만 초점을 맞춘 최근 국내 언론의 보도 흐름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사실 이들에게는 걱정을 할 현실적 사례와 流言蜚語가 뒤엉켜서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北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일은 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호언을 한다든지 평양방송이 “대전역 광장에 ‘통일대통령 김정일 영수를 받들어 통일정부를 세우자’는 유인물이 뿌려졌다”고 해도 南에서는 찍소리 한마디 못하고 저자세로 일관할 뿐 아니라 노동당 창건일에 축하단이 가고 학원 가에 노동당 旗가 나타났다는 것은 이러한 북한의 호언과 의도가 먹히고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어느 전직 대통령이 ‘김정일이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으며 DJ는 총리도 못 된다’고 까지 비아냥 어린 지적을 했으니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은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도 잠재울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대북 드라이브는 가속이 붙고 불안은 심화될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DJ는 북한의 환심 사기에 바빠서 쌀 60만t이나 보내는 합의를 한 뒤 이를 발표조차 못하고 쉬쉬하더니 국회의 동의 절차를 피하는 편법을 찾기에 급급하면서도 국민의 세금을 더 거둘 궁리에 골몰하는 등 떳떳하지가 못하다. 결국 그 부담은 중산층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게 된 것이다.

가진 이가 해외로 빠져나가니…

이 같은 사태 진전을 ‘중산층 죽이기’의 시각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진보세력이 ‘기득권 세력’이라고 부르는 계층이 사실 우리나라 중산층의 주요한 軸을 이루고 있었으나 이들 중 다수는 몰락했거나 불만 세력이 되었다.

이들은 정권이 바뀌면서 사회적 지위에서 축출되었고 저금리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다. 財테크를 한답시고 증권투자를 하다가 벌기는커녕 외국인 배를 불리는 역할을 하는 가운데 중산층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스스로의 기준으로 보아 불안을 가중시키는 일에 더 많은 돈을 내면서 살고싶지는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여기에 김정일 ‘통일 대통령’ 얘기는 심리적으로 雪上加霜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돌파구로서 적절한 방법이 이민이나 해외 이주일수도 있다. 그러나 가뜩이나 엷어진 중산층이나 경제적으로 ‘가진 자’가 해외로 빠져나가 더욱 엷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중산층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안정되고 건강하다는데 염려되는 바가 크다.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앞선 정권 때 보다 3분의 1이나 줄었다는 통계가 나온 바 있는데 다시 이렇게 중산층의 해외 도피 바람이 분다면 국가의 장래와 후손들을 생각할 때 매우 불행한 일이다. 사실 이 문제는 남북문제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과 정부 의회 모두 중산층의 재건이라는 과제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아야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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