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국민투표와 연방제

글 / 南時旭(남시욱 언론인· 고려대 석좌교수)

결국에는 정치쟁점화

최근 정가에서는 ‘국민투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 문제가 예민한 정치쟁점이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10월 9일 여야영수회담에서 통일문제를 이야기하다가 불쑥 “어쩌면 국민투표에 부칠 상황이 생길 것”이라고 말하여 파문을 일으키더니 이틀후인 11일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총재단회의에서 “청와대에서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환영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어떤 형태의 연방제 논의든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발언하여 통일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김 대통령은 최근 들어 김정일 위원장이 3대 양보를 했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미군철수, 연방제, 국가보안법개정 주장의 포기라고 했다. 그는 북측의 연방제 포기 근거로 바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들고 있다.

그렇다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진짜 연방제가 아니고 김 대통령이 제시한 연합제와 비슷하므로 적당한 모양만 갖추면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투표가 필요하다는 추론이 나오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적어도 이 총재는 분명히 그렇게 해석하여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 전에도 국민투표 언명했다

김 대통령의 국민투표 언급을 언론들은 ‘느닷없이’ 나왔다고 보도했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국민투표 이야기는 돌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야당 시절인 1994년 2월 기자회견에서 이미 그의 3단계 통일방안 중 첫 단계인 남북연합제가 1년 후인 95년까지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3개월 후인 5월에는 남북연합제를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제의한 바 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만약 김 대통령이 말한 연합제를 앞으로 남북협상에서 북측이 받아들인다면 바로 이것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 것인가. 남북연합은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지만 당장 이에 합의하고 통일단계로 진입하는데는 만만치 않은 많은 문제들이 뒤따른다. 우선 남북이 상당 기간 동안의 화해협력기간을 거치지 않고 비록 연합이라고 하더라도 곧바로 통일과정으로 들어가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통일은 반드시 실현해야 하지만 후회 없는 통일을 원한다면 결코 서둘 일이 아니다.

우리 정부의 공식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화해협력단계-연합단계-완전통일의 3단계로 되어있다. 그리고 평양정상회담에서 사실상 사문화 시킨 91년 12월의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와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잠정적인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합리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 경과

그러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과연 진짜 연방제가 아닌가. 그리고 연합제와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이것을 받을 수도 있는가. 이 안은 남북간에 분명히 서로 다른 체제를 인정하고 지역정부에 당분간 외교-군사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는 연합제와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이아몬드와 유리 색이 비슷하다는 정도의 유사성에 불과하다. 연합제는 2국가 2체제인데 비해 ‘낮은 단계의 연방’은 어디까지나 1국가 2체제로 그 품질은 완전히 다르다.

지금과 같은 두 개의 이질사회가 아무리 낮은 단계라 하더라고 하나의 연방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성이 없을 뿐 아니라, 두 체제의 인정이라는 합의 역시 일단 연방이 되면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낮은 단계의 연방’ 안이 지난 6월 평양정상회담에서 비로소 나온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중대한 무지이다. 또한 이 회담에서 이 안과 연합제의 접점이 나왔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남측의 연합제는 이미 89년에 나왔고,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같은 해에 문익환 목사와 조평통과의 공동성명이후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91년의 신년사에서 “잠정적으로 지역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고 했고, 그해 5월 윤기복 노동당 서기는 IPU(국제의원연맹) 평양총회 때 기자회견에서 “남북 2개 정부가 일정 한도 안에서 잠정적으로 외교-군사권을 보유하는 방향으로 연방제를 수정할 수 있다”고 세계를 향해 언명했다. 그 후 북한 학자들은 해외세미나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연방정부 구성방식의 함정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연방기구 구성방식에 있어서는 1980년의 고려민주연방제의 내용 그대로다. 이 안에는 남북한 같은 수의 대표와 해외동포로 최고민족연방회의를 만들고 상임기구로 연방상설위원회를 만들어 연방 업무를 본다고 했다. 이렇게 선출되는 단일기구가 합의를 도출하자면 현재의 대한민국 국회보다도 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연방이 제대로 기능 할 수가 있을까.

원래 연방이란 미국처럼 대통령은 국민이 직선하고 하원은 인구비례로 뽑고 상원은 각주가 같은 수를 뽑아야 연방정부가 기능 할 수가 있는 것이지, 북이 제안한 중앙정부로는 정상적인 절차로 의사결정을 하기가 어렵다. 결국 북한이 이런 내용을 내놓은 것은 통일전선전략이라는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간과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주권국가간의 연합제와 공통점이 있다고 말하거나 이런 연방제 구성내용을 무시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은 진짜 연방의 포기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은 남북사이에 진정한 의미에서 화해협력을 깊게 할 때이다.

그러나 북한의 최근 행동들을 보면 여전히 통일전선전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통일단계 진입은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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