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돈 없이는 못 살아

글/ 김동길(연세대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

나라밖으로 길을 떠난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여권(패스포드)이다. 해외에 나갔다가 여권을 잃고 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여행자에게 있어 여권 다음으로 꼭 필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돈이다. 요새는 어느 나라 어떤 가게에 가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니 비자니 하는 카드가 통용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금 아니고는 통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대개 지갑을 도난당할 때 크레디트카드도 함께 잃게 되는 것이므로 지갑을 도난 당하는 사람은 돈을 쓸 수가 없게 되는 수가 많다.

‘돈’이라는 낱말의 어원을 나는 모른다. 영어로는 ‘머니’라고 하는데 그 말의 뜻은 잘 모른다. 그런데 한가지 확실한 것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도 돈은 소중한 것이었다. 왜? 돈은 금이었기 때문이다.

화폐제도를 두고 금본위제(金本位制)라는 것이 있었는데 아마도 요새 젊은 사람들은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폐를 태환권(兌換券)이라 하여 그 지폐를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 그만한 값어치가 나가는 양의 순금을 준다는 약속이 지폐마다 적혀있었다. 그러나 그런 성가시고 까다로운 제도는 모두 폐지된지 오래고 돈이란 한 나라의 경제적 실력의 심볼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IMF를 겪으면서 한국의 원화는 가치가 뚝 떨어져 환율이 2000 가까이 치솟았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 달러는 확실하고 가치도 있다. 요새는 잘 모르겠지만 10여년전 브라질에 갔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장사하는 한국인들은 장사해서 번 돈을 저녁이 되면 모두 달러로 바꾸어 금고에 넣어둔다는 것이었다.

어떤 한국인가게에 강도가 들었다. 강도는 주인을 향해 3천달러가 꼭 필요해서 그러니 그 액수만 달라면서 권총을 내밀었다. 총을 본 주인이 깜짝 놀랐지만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이라 우선 침착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오늘은 달러가 없습니다. 내일 이맘때 오시면 3천달러를 준비해두었다가 꼭 드리겠습니다” 하였다.

강도도 어지간히 순박한 사람이었던지 사실이냐고 몇 번 묻기에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럼 내일 이맘때 꼭 올 것이니 그 돈을 틀림없이 준비해 두시오”라고 호통을 치고 강도 일행은 그 가게를 떠나려 하였다. 출입문을 향해서 나가던 강도 한 놈이 그 가게의 큰 금고를 보고 “이 금고 좀 열어볼 수 있소”하였다. 주인이 몇 번씩 아무 것도 없다고 대답하였다. 강도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한번 안을 들여다 보고 싶다는데 보여주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요”

그래서 주인은 어쩔 수 없이 금고의 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그 금고 속에는 몇만불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 뿐 아니라 다이아몬드, 진주로 만든 반지, 귀걸이, 팔지, 목걸이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걸 보고 강도는 놀란 것이 아니라 격분하였다. 그리고 강도들이 격분한 까닭은 딴 것이 아니었다. “왜 우리들을 속였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달러를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왜 없다고 했느냐며 사정없이 가게 주인들 두들겨팼다. 거짓말을 한 것이 괘씸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강도들은 달러 뭉치와 귀금속을 몽땅 가지고 도망갔다.

그런데 돈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브라질의 한국인 가게 주인만은 아니다. 한국에도 그런 사람들은 많다.

공직자 재산공개라는 것이 있다. 공직에 앉는 사람은 대통령이건 국무총리이건 국회의원이건 모조리 동산·부동산을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법으로 제정되어 있다. 그런데 공직자들이 과연 정직하게 재산을 공개하는 것일까. 매우 의심스럽다. 지방에서 당선돼 올라온 국회의원 한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자기는 갖고 있는 현금의 액수를 그대로 공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은 재산공개대상이다. 그러나 그가 현금 몇억이 있다는 걸 선거구에서 알면 반드시 찾아와서 “우리 아들의 사업이 부도 위기에 놓였는데 5천만원만 돌려주시면 죽을 고비를 넘기겠고 곧 그 원금을 갚아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유권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만일 한번 문을 열어 놓으면 유권자들이 줄을 지어 찾아와 비슷한 도움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부탁을 들어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당장 그 유권자의 표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직자는 재산공개를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돈없이 못사는 인생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게 돈을 긁어모아 치부하는 공직자가 있다면, 그리고 있으면서도 없다고 버티는 그런 자가 있다면 그가 장차 브라질의 그 사람처럼 봉변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돈 때문에 나라가 이렇게 어지럽다. 달러 때문에 세상이 온통 제 정신이 아니다. 요새 우리나라에서는 “왜 우리 경제도 어려운데 자꾸 이북 사람들에게 돈과 식량과 비료와 의약품을 자꾸 사보내는 거요”라며 볼멘 소리르 하는 사람들이 차차 많아지고 있다. 또 북에다 이미 준 돈이 얼마나 되며 앞으로는 얼마나 더 퍼부어야 하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데도 당국자는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안하니 이것이 어찌 될 일인가.

돈 없으면 못산다. 우리 경제가 먼저 살아야 북쪽 사람들 경제도 도울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무조건 우리 돈을 무작정 건네주다 보면 우리 경제는 파탄이 날 것은 뻔한 노릇이다.

그리고 나서 김대중 대통령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김 대통령 자신도 통일이 앞으로 30년은 걸릴 것이라는데, 김정일도 통일이 앞으로 40년은 걸릴 것이라는, 앞으로 30년?40년 남한의 달러가 북한으로 쏟아부어지면 우리는 정말 동전 한푼 없는 가난뱅이가 되겠구나. 돈 없이는 못 사는 세상인데, 이 일은 어쩌면 좋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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