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호]

[전통과 현대 잇는 校長선생]

“일 싫으면 먹지 말라”

가나안 농군학교장 金?鎰(김범일)

孝는 살아있는 시대정신

흙의 정신이 곧 무공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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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일 가나안 농군학교장>

글/申貞姬(신정희) 부장

흙의 正氣가 살아 움직이는 곳

가나안 농군학교가 결코 낯선 이름은 아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보고 들었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TV화면에서도 보았었다. 그곳에 이 시대의 상징인 엄격한 교장선생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 274번지에 위치한 가나안 제2농군학교는 서울서 2시간 30분거리다.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미처 시간을 내지 못했기에 처음 찾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편으로 1시간 30분,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다시 신림면 농군학교 앞까지 버스길을 합쳐 2시간 30분. 때마침 11월 초순이라 치악산 휴양림 단풍이 방문객을 포근히 맞는 기분이다. 가나안 농군학교에는 예순다섯의 젊은 노인 김범일(金?鎰) 교장이 있었다. 화면에서 뵌 할아버지 교장선생님이 틀림없었지만 악수하는 손목에 젊음이 넘친다.

마침 대구시 공무원들의 수료식을 준비하던 김 교장이 가나안 농군학교(www.2canaan.com)의 사상과 이념 그리고 지금껏 걸어온 발자취와 생활철학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해 준다.

가나안 농군학교 사람들은 흙과 함께 사는 이들이다. 그리고 흙의 정기(正氣)가 살아 움직이는 곳이 이곳 농군학교이다.

홍보과장 정기선(鄭基鮮)씨와 함께 가나안시설 곳곳을 살펴보고 느낀 소감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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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군학교 교정에 위치한 창설자 김용기 장로 흉상>

새마을운동의 발원지

가나안 농군학교를 이야기하자면 민족정기를 빼놓을 수 없다. “농촌이 잘 살아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이상촌(理想村)운동으로부터 가나안 정신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가나안 학교는 엄격하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가르친다. “먹기 위해 살기 보다 일하기 위해 먹으라”고 외친다. 모두가 잠자고 있는 민족정기를 일깨우기 위한 구호와 행동임이 물론이다.

가나안 농군학교 정신이 새마을운동의 뿌리였다고들 한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김용기(金容基, 1912?1988) 장로의 가나안 농장운동에 감명을 받고 새마을운동을 일으켰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김범일 교장도 가나안 농장이 새마을운동에 여러모로 참고가 되고 자문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이 시대 새 지도자를 양성하는 사회교육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기업체 임직원 등의 연수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가나안 정신이 널리 전파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나안 농군학교는 1973년 3월 3일 개교이래 “민족의 잠을 깨우자”며 줄기차게 외쳐왔다.

원주시 신림면의 제2농군학교를 비롯해 모두 15만평의 대지에 기도원과 교육장을 세워 특유의 개척정신을 가르친다.

주로 공무원, 기업인, 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은 2박3일에서 4박5일까지이며 교육비는 9만8천원에서 15만5천원이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교육효과는 즉각적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맑은 정신으로 돌아가 절제와 절약을 실천하게 된다고 한다.

실제 농군학교 식당에서 만난 중년의 수강생들은 입소때에 비해 수료식 무렵에는 모두가 눈빛이 반짝이고 활기에 찬 표정이라고 말한다.

손을 씻을 때 비누를 세 번이상 문지르지 않는 것이 가나안 학교 규칙이자 배움이다. 그리고 1백여명이 동시에 식사를 하지만 밥알 한 톨이 남지 않는다. 식사에 앞서 “우리는 일하기 위해 먹는다”고 외치는 구호가 씩씩하기 짝이 없다.

실로 살아있는 새마을운동, 새마음운동의 실천장임을 실감치 않을 수 없다.

피압박민족의 자활운동

김용기 장로는 1930년대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가나안운동을 시작했다.

일제가 우리 민족의 모든 것을 수탈해 가고 종교를 억압할 때 배고픈 민족은 독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열심히 일하여 잘살아보자는 농촌계몽운동을 펼쳤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고향인 경기도 양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15년을 지속했다. 해방뒤에는 삼각산, 6·25후엔 용인으로 옮겨 다니다가 1954년 하남시에 터를 잡은 곳이 제1농군학교로 발전했다. 지금은 원주시 신림면에 제2농군학교를 개교하여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교육기관으로 발돋움하기에 이르렀다.

오늘의 김범일 교장은 창시자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가나안의 기본 정신을 그대로 승계했다고 볼 수 있다. 김 교장은 가나안운동의 시발이 잠자는 민족정신을 깨우는 목적이었다고 설명한다.

“육체의 잠, 사상의 잠, 영혼의 잠을 깨우자는 운동이었지요. 육체의 잠이란 게으름을 깨우는 것이고 사상의 잠이란 이념의 대립으로부터 희생을 막는 것이며 영혼의 잠은 진리를 깨우쳐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같은 가나안정신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지금은 새로운 시대정신의 발현에 역점을 두고 농군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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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악산 국립공원내에 자리잡은 복민교육원 정경>

孝사상은 아직도 시대정신

김 교장은 농군학교 주인격으로 46년째 같은 일을 반복하며 수강생들에게도 주인의식을 가르친다. 누굴 위해서, 마지못해 일하지 말고 내가 주인이라는 자세로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전통과 현대를 연결한 효(孝)사상을 강조한다.

김 교장은 오랜 체험과 실천을 통해 너무나 피부에 닿는 가르침을 준다.

“밥 한 숟갈에는 2백50개의 쌀알이 담깁니다. 그리고 한 공기에는 5천개의 쌀알이 담깁니다. 만약 4천만명이 쌀 한 톨씩 아낀다면 무려 8천명의 한끼 식사가 해결됩니다”

정확한 계산이겠지만 무섭게 들리는 가르침이다.

밥 한 숟갈 들면서 쌀알이 몇 개라고 계산하다니 너무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작은 일부터 실천하자는 그 뜻을 누가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효(孝)사상에 대한 김 교장의 신념은 곧 신앙으로 느껴진다. “인간관계의 기본이 효입니다. 효사상이 국가에 적용되면 충성이 되고 가정에 적용되면 화평(和平)이며 자녀에게 적용되면 올바른 인성(人性)교육입니다. 효는 질서와 사랑을 일깨우는 우리의 전통사상이기도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시대정신으로 적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김 교장은 효사상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효사상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기본이라면 주인정신은 일의 보람이라고 풀이한다.

“주인정신과 삯군정신으로 일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납니다. 참주인은 처음부터 책임을 지고 일하며 중도포기가 없는 법입니다. 집을 지어도 주인정신으로 지으면 튼튼하지만 삯군이 지은 것은 벽이 갈라지고 천정에 물이 새기 쉬운 법입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틀린 구석이 없다는 소감이다. 특히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온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감히 사족을 달 수 있을까 싶어 그냥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흙은 인간 삶의 터전

교장선생님 말씀은 훈시(訓示)로 들린다.

“작은 일부터” “할 수 있는 일부터”하라는 말씀이 곧 훈시다. 그나마 “내세우지 말고, 완전하게“하라는 당부이다.

김 교장은 시사문제에 관해서도 정확히 진단하며 결국은 나랏일 하는 이들이 주인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경부고속철도나 인천공항의 부실공사가 왜 말썽이겠습니까. 내일이 아니라고 적당히 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노사문제가 계속 말썽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정신이 부족하여 공사는 부실이고 노사관계는 싸움판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청소년 문제에 관해서도 김 교장은 뚜렷한 기준을 제시한다.

가정을 바로 세워 자기 자신이 책임지면 사회문제가 생길 까닭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자식 잘못 키운 가정문제를 사회와 국가문제로 내팽개치고는 청소년문제가 심각하다고들 떠드니 말이 되느냐는 뜻이다.

그사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치부(致富)와 허영에 젖어 자식교육에는 소홀한 세태를 꾸짖는 말이다.

김 교장은 광복 55년에 물질은 풍부해졌지만 삶의 질은 좋아진 것이 없노라고 지적한다.

“일생에 무엇을 소유했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평가돼야지요. 하늘을 나는 비둘기나 까치를 보세요. 부모로부터 유산 받을 것 없고 학벌이 없어도 주어진 삶에 행복해 보입니다. 인간도 자연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워야만 합니다”

가나안 농군학교가 땅과 흙을 중시하는 것이 바로 자연이 인간에게 베푼 삶의 기반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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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 가나안 농군학교 부설 복민 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은 기업체 사장 및 임원진들>

농어촌 투자는 곧 국토방위비

김범일 교장의 농촌사랑은 당연하다고 믿어진다.

“농촌은 생산기반이 무너지면 살려낼 방도가 없습니다. 수입농산물이 싸다고 농촌을 외면하면 삶의 터전이 망하는 것입니다. 농업을 단순한 경제논리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김 교장은 YS정부시절 대통령자문기구인 농어촌발전위원장을 맡았었다. 이때 농어촌발전계획을 건의하여 부분적으로 정책에 반영된 적이 있었다.

“나라가 무엇입니까. 땅과 국민과 주권으로 이뤄지는 것이 나라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 중 생산기반인 땅, 즉 농촌을 피폐하게 만들어놓고 무슨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까”

김 교장은 국방(國防)의 개념으로 농어촌발전대책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국방비를 편성한다는 자세로 거의 국방비 수준의 예산을 농어촌에 지원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가나안 농군학교는 5만여평의 농장을 운영한다.

여기서 무공해 쌀을 비롯하여 허브 야콘 등을 재배한다. 김 교장은 농사란 농민만이 짓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무공해, 저공해 농산물을 생산하자면 도시와 농촌이 함께 농사를 짓는다는 관계가 형성돼야 수입농산물 피해를 방지하고 건강한 식탁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울러 가나안 농군학교의 창설이념이 국토를 방위하는 육해공군 외에 농촌을 지키는 농군(農軍)을 양성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실로 귀에 쏙들어오는 말이다.

풀향기 속의 복된 삶의 터

제2가나안 농군학교는 1997년 9월 치악산 국립공원 안에 부설 복민(福民)교육원(www.blessed.or.kr)을 설립, 영성(靈性)훈련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농군학교에서 승용차로 5분거리에 있는 교육원에는 각종 세미나실과 사무실 그리고 숙소와 식당이 갖춰져 있다.

이곳에서 독일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홍명희 부원장 지도아래 목회연구세미나, 내면성장학교, 청년·장년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

복민교육원이란 복된 삶의 터라는 뜻이다.

치악산의 맑은 물, 풀벌레소리, 풀향기,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그리고 산바람이 멈췄다 가는 이곳에서 지치고 피곤한 일상을 접어두고 자연과 호흡하자는 의미라고 한다.

교육원은 경건, 노동, 대화, 자연, 건강이 모토이다. 영성훈련의 목표라고 설명된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특징 중 하나인 생활복음과 현장선교가 이 교육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일반일들도 1박2일에서 5박6일까지의 교육을 개인이나 단체로 받을 수 있다.

내면성장학교란 자신에게 감추어진 내면(內面)세계 즉 과거 현재 미래를 탐방하고 스스로를 재발견하게 도와주는 교육프로그램으로 시행된다.

또한 부부모임 교육은 두 사람이 살아온 길을 함께 점검한다는 의미에서 많은 대화의 주제를 제공함으로써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복민교육원은 평생회원제로 가입비 50만원이면 매년 가족과 함께 5박6일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교육원 생활은 아침체조와 구보로 시작한다.

그리고 새벽강의 후 오전에는 밭일도 하고 자연도 거닐며 혼자만의 침묵시간도 가질 수가 있다.

국가와 사회 및 해외봉사의 인생

김범일 교장은 폭넓은 봉사활동의 명사이다.

나라와 사회가 고달프고 매듭이 풀리지 않는 일이 생길 때 김 교장은 초빙된다. 김 교장은 몸 아끼지 않고 이에 참여한다.

한국농어촌선교단체 협의회 회장, 한국농업전문학교 운영위원장, 필리핀농군학교 교장, 방글라데시 개발협의회 이사장, 국제농어업의원연맹 고문 등 가나안 농군학교 운동과 연관된 대외활동이 눈부시다. 또한 국방정책 자문위원, 제2건국추진위 상임위원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김 교장은 “우리나라보다 더욱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나라들에 농군학교 정신을 전파해야 할 때”라고 보고 방글라데시 필리핀 중국의 연변에 가나안 농군학교를 세웠다고 밝힌다.

또한 미얀마에도 학교설립을 추진중이며 아라파트를 두차례나 만나 팔레스타인 농군학교 설립도 구체화되고 있다고 소개한다.

필리핀은 가나안 농군학교 창설자인 김용기 장로가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인연이 있는 나라다. 그리고 가나안정신이 이웃사랑, 흙사랑이라는 점에서 동남아 각국에 학교를 세워 가나안정신을 전파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김 교장은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수강생들과 조깅 20분으로 시작, 아침 강의, 외부행사, 농장 일로 하루를 보낸다. 자녀 2남1녀 중 장남은 서울농대 졸업 후 미 콜롬비아대학에 유학중이고 딸은 이대 졸업후 사회봉사가, 차남은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김 교장의 자녀교육은 곧 “건강한 가정이 건전한 자녀교육장”이라는 교훈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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